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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무궁전 Oct 06. 2023

트라우마의 발견

평범한 사람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을까?

트라우마란 아주 강력한 사건으로 겪는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야 있었지만 아주 강려크한 사건은 없었기에, 나에게 트라우마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방 도시에서 공무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에게서 둘째로 태어난 나는 아주 평범하고도 무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에 대학을 다니면서 타지생활을 시작했지만 한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지금도 본가는 같은 동네에 있다.

주말이면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는 신실한 천주교인 부모님과 전교권에서 놀다 인서울 명문대에 들어간 모범생 언니.

이런 평범하고 평화로운 가정에 트라우마가 있을 리가.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면 그들에겐 아주 절망적인 고난과 역경이 꼭 등장한다.

엄청난 빚, 부유했던 집안의 몰락, 부도,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거나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음, 불치병, 폭행, 테러, 재난…

나에겐 그런 고난과 역경이 없는데 어떻게 성공하지?

영웅의 대서사시 같은 거 이런 작고 귀여운 우물 안 개구리가 만들어낼 수 있나?




그런 나에게도 트라우마의 그림자를 피할 순 없었나 보다. 강력한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가량비에 옷 젖는다 하지 않았나.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하고 불안하며,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고 모두 부질없는 비관적인 생각에 휩싸이는 것. 이것은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해당되는 증상이다.

오랜 나의 짝꿍과 핏대를 뿜으며 싸울 때면 더 이상 나쁠 것도 없는 나의 밑바닥의 민낯을 발견한 것 같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정말 심한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귀여운 고통이기 때문에, 트라우마보다는 발작버튼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런 나날들이 한 해 두 해 쌓이고 쌓여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긴 터널이 되었다. 물론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언제 곤 다시 기본 상태인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 존재하는, 투명한 막으로 된 터널이었고, 나는 어떤 상황이든 가리지 않고 트리거가 발동되면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 울음이 터져 나오는 홍당무 울보였다.


어느 날 짝꿍과 또 싸우면서 비슷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싸우는 데에는 여러 가지 패턴이 있었지만, 이것은 짝꿍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에도 적용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바로 피드백이었다. 보통 우리의 싸움은 이런 패턴으로 일어난다.

1. 내가 만든 결과물 혹은 생각이 너무 멋져 기분 좋게 짝꿍에게 공유한다.

2. 짝꿍이 이건 별로고 이건 이게 더 낫다 등등의 피드백을 한다.

3. 동조하지 않는 짝꿍의 반응에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4. 더 좋은 방법이 보이는 짝꿍의 눈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5. 나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 나름의 주장을 한다.

6. 4번과 5번이 반복되면서 점점 서로 목소리가 커진다.

7.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싸움이 점점 커진다…ㅋ


나는 내가 한 행동과 결과에 대해 누군가 한소리를 하면 몹시도 기분이 나빴다. 물론 칭찬을 들으면 좋았지만, 짝꿍은 현실적인 조언이 애정표현이라 주장하는 T였다. 일을 할 때는 피드백과 수정이 일이었으니 겉으로는 표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너 T야?”라는 말이 유행이 될 만큼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나는 유독 이 부분에 대해 저항이 컸다.

나는 왜 이렇게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저항이 높고 분할까?


싸움의 패턴을 발견하고 나의 어린 시절을 탐색해 본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 큰 이유일 것 같다.

혼다 놀기를 좋아하고 소수의 한두 명과 친구를 맺는 내향적인 성격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내향인들이 피드백에 상처받지는 않을 터,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어렸을 적, 매일 엄마와 싸우고 화나던 포인트들이 생각난다.

엄마의 잔소리에 나는 항상 불만족스럽고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못마땅한 존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아주 먼 오래전 일들이라 에피소드는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비교적 최근에 집에 있을 때 있던 일이다.

아빠가 나갔다 들어오시면서 귤 한 박스를 사 오셨는데, 약처리를 해서 뺀질뺀질 윤기가 났다.

엄마는 이런 귤은 안 좋다고 이런 걸 사 왔냐고 한소리를 하셨는데, 기분 좋게 귤 사 왔다 쿠사리를 들은 아빠가 뿔이 났다.

아주 사소한 다툼이지만 비일비재한 이런 식의 다툼.

당연하게 나도 빤질빤질한 약처리한 귤을 사 온 아빠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작은 잡음이 스트레스가 되어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들은 친구는 아빠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빠는 가족들 주려고 기분 좋게 귤 사 오셨을 텐데, 엄마가 너무하셨네. “

내가 당사자가 되어 들을 땐 기분 나빴던 잔소리였는데, 제 3자가 되었을 땐 엄마의 입장이 되어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 친구들은 더한 옷도 입고 다니는데,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옷이어도 옷이 그게 뭐냐는 엄마의 잔소리.

우리 집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물어진 입과 닫힌 마음.

부족하고 못마땅한 못난 이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내가 너무 미웠던 날들…




트라우마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였구나 하고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괴로웠던 거구나. 툭하면 주르륵 나오는 나의 눈물은 그동안 쌓이고 쌓인 나의 화였구나.


이렇게 나의 트라우마, 발작버튼을 발견하고 지금은 마음 챙김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언가 가슴이 탁 막히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화, 분노가 있다면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너무 사소해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재능처럼, 트라우마라 하기엔 너무 사소해서 알아채지 못한 걸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트라우마는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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