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흑막을 닮은 새로운 흑막들이 왔을 때 기존의 여흑막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내 귀가 가려웠던 것을 보니 분명 내 이야기를 한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흑막은 벌어진 나의 입을 살려보기도 하고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어떤 결심을 했는지 종이무더기를 한참을 보기도 하고 손 안의 상자를 열심히 두드리기도 했다. 항상 그랬듯 이런 상황 뒤에는 나에 대한 변화가 뒤따르곤 했다. 그래서 난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한 맘으로 지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는 최근에 혼자서 앉을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여흑막은 내가 괘씸했는가 보다. 여흑막은 얼마나 부지런한지 어디서 구해온 온 시꺼먼 물체에 물을 붓고 가루를 넣어 작동시켰다. 그 물체에서는 신기하게도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흑막은 그 물체에서 허여멀건한 액체를 퍼서 투명한 유리그릇에 옮겨 담았다. 남흑막은 그 유리그릇을 받아 들고 평평한 종이를 막 흔들어 한동안 그곳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남흑막은 준비가 완료됐는지 나를 내 몸에 딱 맞는 곳에 앉게 했다. 그리고는 노랗고 딱딱한 것을 내 목에 둘렀다. 차갑고 갑갑한 느낌에 난 인상을 찌푸렸지만 남흑막은 아랑곳하지 않고 흑막들이 협업해서 만든 것을 가지고 왔다. 그것은 놀랍게도 음식이었다.
지금까지 난 어둠 속에서 나왔을 때부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음료는 아주 중독적이었다. 중독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음료는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했다. 음료는 여흑막의 몸에서 생산됐는데 나오는 즉시 내가 마실 수 있으니 이것보다 신선할 수는 없었다. 비록 여흑막이 꼼수를 써 병에 담아서 나에게 먹이기도 했다. 나도 처음엔 당연히 신선한 음료를 마시기 위해 거부했지만 흑막들은 내 입에 조금씩 다른 병들을 가지고 와 내가 마실 때까지 시도했었다. 난 이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고 그나마 나에게 맞는 병이 나에게 물렸을 때 음료를 마셨다. '내가 봐주는 거야. 알겠지.' 비록 내가 배고픔에 굴복했지만 난 자존심을 굽히진 않았다.
이 음료는 내가 처음으로 먹어본 유일한 음식이었다. 흑막들은 치사하게도 여러 가지를 차려서 먹곤 했는데 난 음료만 마시게 했다. 하지만 흑막들의 품속에서 편안히 누워 마실 수 있으니 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다고 생각됐다. 흑막들은 앉아서 음식들을 먹었는데 불편해 보였다. 그런 불편함을 나에게도 느끼게 하려는 사악한 계획이 실행되고 있었다.
남흑막은 기다란 막대의 둥그런 부분으로 허여멀건한 액체를 떠서 나의 입 속으로 넣었다. 난 생전 처음으로 먹어본 액체의 맛이 생소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이 음식은 보기완 달리 고소했다. 꿀꺽꿀꺽 마셨던 음료와 다르게 입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있어 난 쪼물딱 쪼물딱 입을 다셨다. '이게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난 앞에 있는 남흑막의 존재도 까맣게 잊고는 막대를 향해 조그마한 새처럼 입을 뻐끔뻐끔 벌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 이상 남흑막은 나의 입에 막대를 내밀지 않았다. 유리그릇은 벌써 다 비워져 있었다. 난 입가에 음식을 덕지덕지 묻히고는 멍하게 '언제 내가 다 먹었지?'라고 생각했다. 남흑막은 그런 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음식은 대체 뭐야?'
최근 여흑막은 내 입 안을 보면서 "이가 나오려나 봐."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도 최근 때때로 잇몸이 간지럽기도 아프기도 해서 뭔가 내 잇몸에서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여흑막은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채고 이 음식을 준비했으니 혹시 이 음식의 이름은 "이"가 있어야("有(유)") 먹을("食(식)") 수 있는 "이""유""식"이 아닐까? 여흑막이 분명 "초기 중기 후기 이유식"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나처럼 남흑막이 "이""유""식"같은 엄한 생각을 여흑막에 이야기했을 때 혼났었다는 기억이 있는 것은 왜일까? 왠지 남흑막이 혼나는 행복한 모습에 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웃었다. '방긋 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