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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Aug 27. 2021

종이와 판에 나를 새깁니다. 판화가 김가슬 님

작가의 손길이 들어가는 판화 한정으로,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 종이작품이 그리고 판화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망원동의 판화가에게 던진 무례한 진심어린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판화 작품들과 어우러진 식물들로 가득한 '더 판' 판화 스튜디오 문을 열자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공기 속에서 선묘같은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김가슬 작가님과 스튜디오 '판'


*‘예술'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시작됩니다. 일정한 과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숙련된 능력 또는 활동으로서 ‘기술’을 의미하지요.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기까지는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과 셈할 수 없는 시간들이 새겨집니다. 무용가의 몸짓, 음악가의 소리처럼 자기만의 도구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만난 김가슬 님은 '판화'라는 뿌리깊은 역사를 지닌 예술장르로 그의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의 성경표지부터 현대의 티셔츠까지 판화는 생활 곳곳 인류의 시간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기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판화'의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가슬 님을 통해 들어보려고 합니다.

*출처 : 콘셉트커뮤니케이션 사전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판화작가 김가슬입니다.



'가슬'이라는 이름이 예뻐요. 이름의 뜻이 궁금해요.  

‘아름다울 가 푸른 구슬 슬’이에요. 제가 일란성쌍둥이거든요. 동생 이름은 ‘가실’이에요. 사실 원래 제 이름이 ‘가실’이었고, 동생 이름이 ‘가슬’이었는데 주민등록 올릴 때 공무원분의 실수로 제 이름이 ‘가슬’이 됐어요. 열매와 구슬의 대결이랍니다.  



한국에서 회화작가로 꾸준히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미 하고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미술을 하고 계셨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연히 미술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밌어서라기보다는 하다 보니까 그나마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미술이었고, 집안의 반대도 없었던 터라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걸 하고 있었어요.

사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다 보면 사람이 자존감을 어필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하면 다른 여러 가지 선택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림 가지고 어릴 때부터 평가를 받다 보니 '이거를 잘하면 또는 계속하다 보면 나는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 하는 상태가 되더라고요. 물론 이게 부모님의 압박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제게 '너네 부모님 미술 하신다며, 그럼 당연히 그림 잘 그려야 하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성취감을 단계별로 느낄 수 있는 게 그림이고,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나름대로 연습하면 체계적으로 늘 수 있는 분야잖아요? 저도 어느 정도의 성취감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결국 다른 직업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대학원 졸업할 쯤에. 그런데 제가 성격이 긍정적이지 않아서 제일 좋은 것을 찾기보다 제일 할 수 없는 것을 지우다 보니까 이걸 계속하는 선택지 밖에 없더라고요.

이제는 제일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렇게는 되지 말자!’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말씀하신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는 게 어떤 건가요?  

생일잔치 같은 작업하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아요. 저희 아버지가 젊을 때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한번 불태우신 적이 있어요. 짐 정리할 겸. 타오르는 캔버스를 보면서 '그림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 같아.'라고 하시는 데 너무 슬펐어요.' 미술계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면 너무 쓸쓸하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물론 유명해지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지만, 그게 제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안 되고 싶은 모습만 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 가족이 있으니 그런 고충이 있으시군요.

가장 가까운 가족한테 듣는 이야기는 (저는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시가 안되더라고요. 저희 이모님께서 프랑스에서 작업을 하시는 데, '네가 하는 건(판화) 그냥 종이 쓰레기야. 몇 백 년 전에 하던걸 이렇게 하다니. 너는 전 세계 미술사에서 빠져주는 게 미술사를 위한 길이야.'라고 하시면서 '네가 하는 건 예술도 아니고, 종이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얘기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 어느 한구석에 남아 있더라고요. ‘기술을 특화시키는 것은 예술이 아닌가? 뭔지 모르겠는 걸 하는 사람이 예술가 인가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작년에 개인전 때 큐레이터 분과 인터뷰하는 데, 그분이 그러셨어요.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다 모순'이라고. 굉장히 사회통념에 안 얽매이고 싶어 하면서 엄청 그런 거에 얽매여있다고. 그때 이모 얘기를 내가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솔직히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아요. 제가 과연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기술자인지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인지.


김가슬 작가의 작품


가슬님은 작품을 만들 때 주로 어떤 생각들을 하시나요?

저는 작업할 때 어느 정도는 즉흥적이에요. 작업 스타일이 말이나 이론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하는 게 안 되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하고 싶은) 이미지 작업을 하고 작업이 30, 40개가 쌓이면 어느 순간에 '아 나 이런 거 하고 싶었구나.' 윤곽이 잡히거든요.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에요.

사실 요즘 기획이 탄탄한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잖아요. 기획 전시 지원이나 공간 지원, 나라 지원 사업 같은 경우는 기획서가 엄청 중요한데..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어요.(웃음) 이미지로서 하고 싶은 건 있으나, 어느 정도 작업량을 뽑은 다음에 저도 (제가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아는 타입이어서. 그런 지원하는 부분에 있어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어요. 지원서를 쓰잖아요. '나는 여기를 지원할 거야.'하고 지원서를 작성한 걸 보면 억지로 구겨 넣은 느낌이 있어요. '이러니까 떨어지지.' 해요. (웃음)



작품이라는 것이 '나'를 배제할 수없는데, '나'를 확립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제 작업은 그래서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바로 계획서 안 써지는 내용인 것 같기도 해요. 그 이야기를 겨우 말로 설명해야 이해해 주시는 내용이어서 글로 작업 내용을 전달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여러 지원 사업에 제출해야 하는 기획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글로 전달하는 게 어렵다고 하셨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각종 지원이 있었잖아요. 예술 계통은 책정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뭔가 '증명'같은 걸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개인전 때 받은 지원액은 도움이 됐어요. 물론 한번 지원받으면 몇 번 못해요. 매번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예술인 활동 증명도 받고 내가 이제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식 경력 증명을 한 상태에서 지원 신청을 하는 거거든요. 현금으로 받는 거니까 실질적인 도움이 굉장히 많이 돼요. 그런데 어떤 것들은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 같은 경우에는 ‘예술가들이 생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어요. 몇 개월 동안 미약한 프로젝트를 하는 사업 같은 경우는 기존의 생업과 병행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 활동들은 직업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상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제적으로) 힘들죠.



판화작가를 주변에서 뵙게 어려우니 아무래도 판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판화는 에디션이 여러 개라 대중성을 확보한 대신에, 가격적인 면에서 좀 떨어진다.'라고 인터뷰하신 걸 봤어요. 복제는 판화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데, 그 부분을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그래서 지난 개인전 때 에디션을 제작을 아예 안 했어요. (판화는 하나의 판을 만들고 여러 장을 찍어내서 에디션의 개념이 있다.) 판만 만들어놓고 그냥 단일 작품으로. 저희가 왜 드로잉 할 때 모양 자를 쓰잖아요. 그 모양 자를 판 하나라고 상정하고, 모양 자를 써서 다른 원을 여러 개 그려서 배치를 다르게 하면 그건 똑같은 모양 자를 써도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서로 다른 그림이 되잖아요. 그것과 동일하게, 판은 동일하게 사용해도 어떤 식으로 모아서 찍느냐, 종이 위에 어떻게 배치되고 어떤 판끼리 만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다른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상태에서 에디션 없이 그걸 드로잉으로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걸 지난 전시 때 했었어요. 그것들은 에디션이 존재하지 않고요. 

복수성에 대해서는, 저는 '복제'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디까지나 작업물은 작가의 손길이 그래도 들어가야 제 안에서는 성립이 돼요.

요즘에는 미디어 작업이나 입체 작업하시는 분들도 많은 데, 그런 분들 중 일부는 계획을 세워놓고, 외주로 작업을 진행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그런 스타일이 맞는 거고. 저는 제 손길이 닿아야 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제가 완벽한 프린터가 아니기 때문에 제 작품은 다 달라요. '비슷한 쌍둥이 친구들이다'라는 느낌이 들뿐. 전부 다 다른 작품으로 보여요.

작품 구매 요청이 들어와도 제일 잘 찍은 작품은 남겨 놓아요. 제 안에서 작품의 순번이 정해져요. 그런 식으로(작품의 퀄리티에 따라서) 에디션을 내보낼 때도 있어요. 원래는 작업 순서에 따라서 에디션의 넘버가 매겨져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의 어떤 판화 가도 그걸 지킬 수 없어요. 왜냐하면 몇 장 찍다 보면 순서가 섞이기 마련이에요. *1, 2도로 작업을 하면 모르겠지만. 많이 찍을 때는 50도까지 찍는 경우도 있는데, 12장을 만들면 중간에 실패하는 일이 생기고, 12장 중에 8장 남게 되고 그러다 보면 순서를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작가의 손길이 들어가는 판화 한정으로,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색을 쓰면 1도, 2가지 색을 쓰면 2도 인쇄라고 한다.



선의 쓰임이 깔끔한 가슬님의 작품을 보면 가슬님과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선은 조금만 어긋나도 그게 금방 드러나잖아요.  

확실히 선을 좋아해서 판화를 계속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판화는 그 무엇보다도 선이 가장 두드러지는 매체이기 때문에. 판화는 플랫하고 고운 선의 작업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아요. 그게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왜 페인팅 안 하세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요즘에는 판화 하면서 페인팅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너는 왜 페인팅 안 해? 페인팅해봐.'라고 얘기하는 선후 배분들이 있는 데, 페인팅에 생각이 없는 게, 저는 선이 좋기 때문이에요. 선을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판화를 두고, 페인팅 작업을 하면 저는 그 (판화의) 깔끔한 느낌과 (페인팅의) 거친 느낌의 선을 둘 다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페인팅 쪽으로 관심이 안 가는 것 같아요.  


No.8 (Intaglio Printmaking, 15x20cm, 2019)


가슬님 분야인 동판화를 하시는 분이 요새는 거의 없잖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꾸준히 묵묵히 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제 친구들 다 전멸했어요. 시설 문제, 비인기 분야라는 것 때문에요. 사실 실크스크린은 공방이나 인터넷 클래스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비교적 초기 기법이 간단해서 배워서 다른 클래스를 차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많이 알려지고 있는데. 동판화를 선택하시는 분들은 성향이 비슷해요. 공예 성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동판화를 작업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참고하지만 그런 걸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실크스크린을 더 좋아하는 것 같고요. 동판화는 성향에 따라서 즐겁고 안 즐겁고 가 차이가 많이 나요. 그리고 색을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올드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판화의 대중성을 확보하고, 판화만의 특수성을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판화로 회화 느낌을 낼 수 있을까?’라는 걸 제일 많이 고민하면서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작업했어요. 에스키스는 손으로 하는 거니까 회화적인 느낌이 나잖아요. 이걸 어떻게 하면 '판에 그대로 옮길 수 있을까?' 이건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게 맞긴 하죠. 작가라면 내 원화를 판에 그대로 구현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 이상한 부분이 회화적인 느낌은 회화로 하면 되잖아요.  

물론 판화 작품으로 졸업 작품에 내면 통과를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서, ‘판화로 회화 작업 느낌을 내야 하는 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판화는 판화대로, 페인팅은 페인팅대로 그 느낌을 내면 되지 않을까? 왜 우리는 페인팅에 지지 않아, 우리도 페인팅 느낌 낼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판화과가 회화과 안에서 어떤 독립된 기법으로 떨어져 나와서 독립된 과이기 때문에, 미대 전체 중에서 교직 이수가 안 되는 과였어요. ‘우리는 왜 이렇게 회화과의 부속처럼 인식될까?’ 생각했어요. 나는 이게 좋고, 즐겁고 이걸 하면서 마음의 안정도 얻고 (물론 불안도 얻지만.) ‘저 판화 작가예요.’라고 하면 ‘아 고무 그거?’라고 해요. 보통 판화라고 하면 전문적인 느낌을 받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판화가 좋고, 재밌다는 걸 더 알리고 싶었어요.



 대중의 판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러고 싶어요. 다행스럽게도 실크스크린 덕분에 많이 바뀐 것 같긴 해요. 재밌는 걸 많이 알리고 싶어요, 같이 재밌어하면 너무 좋잖아요.  


벽 한 가득, 클래스 수업의 작품들.


와, 이런 가슬님의 작업이나 삶을 살아나가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요?      

다른 사람이 제 삶의 루틴을 보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유흥도 즐기지 않고 맛집, 영화 같은 밖에서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즐기는 편이 아니에요.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실크스크린 하고 놀아요.'라고 대답해요.(웃음) 심심하면 에코백에 실크스크린 찍어서 주변에 나눠주고 놀아요. 정말. 이게 걱정될 때가 있는데, '내가 너무 안 놀고 사람들을 안 만나봐서 그게 점점 즐겁지 않아 지고, 이렇게 나의 범위가 좁은 건가.'  사실 ‘어느 정도 감각을 원천으로 하고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으로 너무 편협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기도 해요. 이미 이런 사람이 되어버려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누가 그러더라고요 스무 살 후반에 ‘너 이제 안 받아주니까 클럽에 한번 가 봐.’ 그런데 ‘세간에서 말하는 즐길 거리를 이제 와서 즐기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에 배우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요. 도예나 금속, 스탠드 글라스요. 도예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꼭 배워보고 싶어요. 저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놀아도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면 헤어지고 집에 올 때 헛헛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뭔가를 만들면 그게 남아 있잖아요.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때 가장 행복하신 거예요?

음.. 엄청나게 행복할 때는 길가는 골든 리트리버를 봤을 때.  



마지막으로 종이 매체가 줄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판화가 지속 가능한 형태로,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기한 게. 돌고 돌잖아요. 저는 물성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종이 물성으로 살아남을 것 같아요. 텍스처가 주는 느낌을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제가 산 호크니 동판화 집도, 저 그렇게 몇 만 원짜리 책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닌데, 인터넷에 검색해서 봐도 그 느낌이 절대 안 나는 거예요. 종이에 인쇄된 하드커버와 글들과. 이 느낌이 전혀 안 나서 결국 사게 됐어요. 반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어요. 결국 종이는 종이로 갈 것 같아요. 영화도 상업적인 영화, 어릴 적에 봤던 기억에 남는 영화. 이렇게 층위가 나뉘잖아요. 그런 식으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절대 사라 지지 않을 것 같아요.  


+판화작업실 '판'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ul3704


 No.40 (Intaglio Printmaking, 20x15cm, 2019)


No. 35 (Intaglio Printmaking, 20x15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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