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최선은?

- 샌 가브리엘 미션 화재

by 김 스텔라

우리는 왜 역사에 관심을 가질까?

세계와 개인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 미래는 다가올 오늘'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확실하게 동의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이 이어지는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어제의 오늘'인 역사는 어제를 반추하고 내일의 방향을 잡게 해주는 유익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수치를 매일 갱신하며 인종 차별의 화약고가 나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서 '샌가브리엘 미션' 화재 사건이 일어났다. 인종차별 시위의 여파로 '식민주의 역사 청산 운동'으로까지 전개된 이 운동 가담자의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들이 식민주의 상징으로 보고 동상을 파괴한 대상이 캘리포니아 21개 미션의 창시자인 후니페로 세라 신부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부를 식민주의의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 인종 차별 철폐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러 미션을 여행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미션이 문화적 차이로 인디언들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초기에 미션을 세운 신부들은 순수한 선교 목적으로 캘리포니아 땅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이 땅에 묻혔다.

샌 가브리엘 미션 화재로 인해 엘에이시의 출발이자 249년 된 건물이 소실되어 아까운 것도 있지만 사실 역사적인 건물의 화재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 역사 가운데서 일어나는 흔한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 청산이라는 이슈는 다르다. 과거의 역사가 잘잘못을 가려서 잘라낼 수 있는 것이라면 개인에게도 힘든 과거는 뇌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 버릴 수 있다고 하는 뜻으로 여겨져서 동의할 수가 없다.

역사의 원리는 개인의 역사의 원리와 통한다.


IMG_1794.jpg 불타버린 본당 건물


스페인의 식민지 정복 정책으로 미션을 통한 인디언 지배가 이루어졌다는 결과로써 미션의 목적이 인디언을 지배하기 위해서였다고 단정 한다면, 개인의 현재 삶은 그 사람이 목적한 결과라는 논리인가? 그렇지 않다.

수도사들이 살았던 그 시대 스페인은 그들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세계였고, 그 속에서 최고의 정신적인 세계를 가치로 삼아서 대서양을 건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의 한계 속에서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결과가 지금 좋지 못하다고 해서 과거의 목적과 동기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과거의 삶의 태도를 다 청산하라고 하면 억울할 것이다. 또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선택하고 결정 내리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하루하루 순응하면서 살 것이다. 대서양 같은 건 건널 꿈도 못 꾼다.

좋은 동기는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 둘 다를 가져올 가능성에 열려있다.

그러나 좋은 동기가 없으면 좋은 결과에 대한 가능성은 닫혀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숙고해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과거에 매이지 않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를 사용할지언정 청산할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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