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친 현안에 대처하기 급급하고
앞날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다 보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유익이 있는 한편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모임, 여행, 사업, 결혼, 출산, 취업...처럼 단어 뒤에 '계획'이 들어가는 일들이 제한받으면
삶은 메말라지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캘리포니아의 연중행사와도 같은 산불이 태양을 가리고 재를 날리면서
기본적인 외출마저도 자제해야 하는 날,
며칠 동안 계속된 폭염에 타버린 텃밭의 상추와 국화꽃을 물끄러미 보면서
'메마름 종합 세트'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이스크림 차가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음악을 울리며 지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는 얘들도 없는데 누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고...' 하다가
날리는 재 때문에 칼칼해진 목을 시원하게 해 줄 아이스크림이 하나 먹고 싶어 졌다.
모든 것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을 때,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하고 실질적인 해갈은
시원하고 달콤한 꿈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메마른 때를 지나도 상하거나 피폐해지지 않는 비결이 꿈에 있는 것 같다.
꿈이 현실과 동떨어진 신기루 같은 이유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꿈을 꾸지 않고 본다면 어떨까?
보면 이루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보는 Dream을 vision이라고 부른다.
'레미제라블'에서 팬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은 꾸는 꿈이고,
마틴 루터 킹이 외쳤던 'I have a dream'은 보는 꿈이라고 하겠다.
꾸는 꿈은 현실의 어려움으로 메말라 가다 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처럼 남는 게 없다.
계속 다른 꿈만 꾸다 끝날 수도 있고
닥치는 현실을 해결하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꿈은 비전이어야 한다.
바라보는 그림이 있어야 힘든 현실에서도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방향을 잡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내게는 보는 꿈이 절실하다.
보는 꿈은 하나의 밑그림을 가지고 부분의 작은 그림들을 그려가는 연역적 방법이 있고
계획하고 이루어 가는 꿈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귀납적 방법도 있다.
숲을 배경으로 나무를 그리든
여러 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그리든
나무와 숲을 다 태우고 있는 산불 시즌에
그래도 그린 꿈을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