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와 느끼는 내가 충돌할 때 오는 고통을 성장통이라고 하겠다.
누구보다 이 성장통을 힘들게 앓으면서 끝까지 자신과 화해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가
늘 나와 갈등하면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헤세는 29세에 발표한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수레바퀴처럼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현실에 저항할 힘이 없는 한스에게 자신을 투사했다. 세상과 맞지 않는 자신과 불화하고, 이해받지 못하거나 이해받기를 거부하며 고립되고, 규율을 따르지 못하면서도 반항하지도 못하는 한스는 버릴 수 없는 나의 한쪽이기도 하다.
헤세는 사회가 요구하는 나와 자신으로 살고 싶어 하는 나와의 사이에 끼여서 점점 쇠약해지는 한스이면서 동시에 한스의 친구,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던 헤르만 하이너 이기도 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부적응자로 사느니 차리리 꿈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우리에게 헤세는 "나도 그래, 그래도 포기하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겠니?"라고 한다.
헤세는 42세에 발표한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가까워지고 있다. 아브락사스를 먼저 경험한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스스로 자신이 되어가는 길을 가도록 안내해 준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세계로부터 나올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멘토가 내 안에 있는 자신 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내면을 가지고 전쟁과 같은 현실 앞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몰라서 쩔쩔매는 나에게 헤세는 "아브락사스! 너 자신이 선택하라"라고 한다.
헤세는 53세에 발표한 소설 '나르치스와 골든문트'에서 자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도 너무 다른 두 개의 인격이 갈등하면서 화합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헤세는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모르는 내가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은 진리 안에서 안식을 얻고, 진리는 사랑으로 인해 즐거워한다. 되고 싶은 내가 되지 못하고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나에게 헤세는
" 너는(self)은 자신(Self) 안에 있다" 고 한다.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자아인식을,
'데미안'에서 자아발달을,
'나르치스와 골든문트'에서 자아와 자신의 화해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