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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아래 모두 거짓이었던 한 남자의 세상 :트루먼쇼

by 설렘책방



요즘 제 취미는 달빛 아래에서 걸으며 명상을 하는거에요. 지난 여름부터 거의 매일 집근처 학교 운동장을 걷습니다. 처음엔 마음이 답답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뛰는 그 느낌이 좋아서 취미가 되었습니다. 걸을 때는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걷습니다

.

사람들의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하늘에 뭐가 보이냐고 하겠지만 매일 다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걷다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정말 떠오르는 건지 내가 만드는 건지 모르지만 굳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피하기보다 그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봅니다. 소중한 추억도, 아픈 기억도, 현재의 불만도, 미래의 희망도 있습니다.

밤을 걷던 어느 날 달무리가 너무 이뻐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했습니다. 조명 같다는 댓글을 보고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1998년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 입니다.

저는 25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 상영관에서 봤었는데요.아직도 당시 느꼈던 놀라움과 감동이 생생합니다.



개봉1998.10.24.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장르코미디, 드라마, SF

국가미국

러닝타임103분








1. 줄거리


트루먼이 살고있는 평화로운 섬 씨 헤이븐은 사실 거대한 셋트장입니다.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프가 트루먼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기획하고 정교하게 통제하여 전 세계에 방송하는 거대한 리얼리티 쇼였습니다.

트루먼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고용된 배우이고 트루먼이 자신의 삶을 의심하지 않게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연기를 하는 가짜 삶이었습니다. 자연도 모두 가짜이죠. 밤하늘에 떠있는 아름다운 달은 이 가짜 세계를 지휘하는 제작진들의 컨트롤타워입니다.


30년간 꿈에도 이 사실을 모른채 살아온 트루먼은 현재 직장을 다니고 결혼도 해 소위 말하는 평범한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세계가 수상쩍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조명기가 떨어지고,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나고,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동이 라이브로 중계되고, 낯선 빌딩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배우들이 분장하고 있는 대기실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신한 트루먼은 첫사랑 실비아가 있을지도 모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았던 곳 피지로 떠나야겠다고 결단을 내립니다. 첫 눈에 반해 설레임으로 눈빛을 주고받고 도서관에서 뛰쳐나와 바닷가에서 입맞춤을 나누던 순간 누군가에게 끌려가며 이 세상은 가짜라고 소리치던 실비아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트루먼에게 가장 진실한 눈빛을 건넨 사람이 실비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로 물을 무서워합니다. 물론 그것은 모험가가 꿈이었던 트루먼이 이 섬을 떠나지 못하도록 조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진짜 삶을 되찾기 위해 트루먼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피지를 꿈꾸며 끝없는 항해를 이어가던 그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오던 세상, 씨 헤이븐의 끝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처음으로 크리스토프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바깥 세상도 다르지 않아. 같은 거짓말과 같은 속임수.

하지만 내가 만든 공간 안에서는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트루먼의 꿈은 모험가였습니다.

두렵지만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바깥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2. Romance 쇼팽피아노 협주곡 BGM


실비아와의 짧았던 만남을 떠올릴 때 흘러 나오는 음악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 2. Romance (Larghetto) 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고 쇼팽은 영혼의 친구 티투스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새로 작곡한 협주곡의 느린 악장은 세게 연주하면 안 돼.
그보다는 낭만, 고요함, 우수를 살려야 하는 곡이야.
마음속 천 가지쯤의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곳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맑게 갠 봄날, 달빛 아래 명상하는 느낌이 드는 곡이지.”


천 가지쯤의 소중한 추억, 첫사랑과의 기억을 회상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곡이 있을까요?





3. 마그리트의 ‘달빛 아래의 건축’


씨 헤이븐 세트장의 계단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초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달빛 아래의 건축'을 오마주했습니다.

마그리트는 더페이즈망 기법으로 유명한 화가인데요. 더페이즈망은 우리말로 '추방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낯익은 물체라도 그것이 놓여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어 내어져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이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게 됩니다. 초현실적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한치의 의심없이 익숙한 세상이 가장 낯선 곳임을 깨닫는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했지요.






4. How's it going to end?


결말이 어떻게 될까?

실비아의 뱃지에 적힌 문구입니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아직 그 결말이 궁금한 영화입니다. 쇼가 아닌 진짜 세상에 발을 들인 트루먼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도 어쩌면 스스로 만든 씨 헤이븐 속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면 자신의 삶을 흔들어 보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견뎌야 진짜 세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은 이내 사라지겠죠.트루먼 쇼가 끝나자 금세 채널을 돌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청자들처럼 말이죠.


트루먼과 우리의 해피엔딩을 기원하며 인사드리겠습니다.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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