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고 종이 울려서도 멸치 대가리는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던 모습은 어디 가고 멸치 대가리는 그 왜소한 몸을 어디에 숨겼을까. 그리고 짝꿍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을까. 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설마, 그러겠어? 그렇지만 보통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던데. 멸치 대가리와 짝꿍을 떠올렸다. 둘의 공통점을 대라면 둘 다 친구가 없고 고지식하고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뿐이었다. 아, 그리고 못생겼다.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이에 보답하듯 멸치 대가리와 짝꿍이 나란히 교실에 들어왔다. 둘은 아무 말도, 아무런 시선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우연히 마주친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머리에 피가 돌았다. 둘이 같이 있었나?
어디에 있다 왔어?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평소 같으면 짝꿍이 뭘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알고 싶어 혈안이 났다. 억지로 들어 올린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평소에 웃는 연습 좀 많이 해둘걸. 호흡도 불안정했다. 심장이 제멋대로 빨리 뛰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고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짝꿍은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보지만 말고 대답이나 해. 홧김에 말이 터져 나올 뻔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냥, 만났어. 앞에서.
시발, 개 같은 년이. 지금 누구 앞이라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거지? 짝꿍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새 입가에는 경련을 울려대던 미소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거친 눈빛만 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지금 누구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웃기지 마. 거짓말하지 말라고. 너 그거 거짓말이잖아. 짝꿍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뭐야 그 표정은. 지금 무슨 뜻으로 그렇게 보는 거야? 눈 감아. 보지 마. 그렇게 보지 말라고. 눈알 파버린다. 손에 연필을 쥐자마자 소란과 함께 앞문이 열렸다. 다들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연필을 쥔 손이 부들거렸다. 오늘따라 훼방꾼이 많았다. 아, 기분 좆같다. 다들 왜 이러는 거지?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냐고. 짝꿍은 아무렇지 않게 교과서를 펼치고 공책도 펼치고 연필을 끄적였다. 짝꿍의 오른손이 조금 떨리는 듯했다.
근데, 내가 멸치 대가리와 어디서 만났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짝꿍은 그걸 어떻게 알고 대답을 한 거지? 짝꿍의 옆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봤다. 내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면 지금쯤 짝꿍은 녹아내린 피부와 함께 간드러진 광대뼈를 훤히 드러내고 숨이 멎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픽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그저 어디에 있다 왔냐고 상냥하게 물은 것뿐인데. 짝꿍은 순식간에 내 질문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아, 그렇구나. 이 녀석, 눈치가 빠르구나.
눈치 빠른 년과는 이상하게도 상성이 맞지 않았다. 십이면 십, 그들도 나를 싫어했고 나도 그들을 싫어했다. 아니, 무서워했다. 무서워할 게 뭐가 있지?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대부분 나를 무서워했다.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얌전한 척 가식을 떨더니, 속으로는 이것저것 다 재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이가 갈렸다. 이제 짝꿍이 눈치 빠른 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짝꿍이 뭘 하든, 한 수 앞을 두는 것. 혹여나 내가 멸치 대가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짝꿍이 눈치채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나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더군다나 멸치 대가리에게 여자 생물 친구가 생긴다는 것이 싫었다. 그냥 멸치 대가리 주변에 나 이외에 인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속이 뒤틀렸다.
문득 전에 짝꿍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후회하게 돼도, 나는 몰라.'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내가 후회하게 될 만한 일이 뭐가 있지?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 웃겼다. 내가 후회하게 될 일은 추호도 없다. 아마 짝꿍이 후회를 하게 되겠지. 짝꿍이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 나는 얘가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저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고등생물이라 착각하는 하찮은 동물일 뿐이다. 짝꿍은 분명 참견하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