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짝꿍은 공책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연필을 끄적거렸다. 짝꿍의 옆얼굴은 숱 많은 단발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짝꿍의 두꺼운 모발을 쥐어잡아 다시 한번 그 표정을 보고 싶었다. 내게 보였던 그 표정. 대체 무슨 의민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반 애들이 나가질 않아 보는 눈이 많았고 무엇보다, 멸치 대가리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는 건지 짝꿍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이쪽을 보고 있는 건 확실했다. 멸치 대가리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이쪽을 보고 있는 멸치 대가리를 눈치챘다는 나의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허둥지둥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심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이 모든 순간들이 다 한심해서 지루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내게 흥미를 주는 건 멸치 대가리의 멸치 대가리와 짝꿍과 멸치 대가리의 관계였다. 이것들마저 사라진다면 난 아마 지루해서 죽은 목숨이겠지. 하나하나 분리해서 해체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지루함이 가실까?
귀가 준비를 하면서 짝꿍과 멸치 대가리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앞에서 멸치 대가리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짝꿍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미 눈치는 챘을 텐데. 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는 걸까. 눈치가 빠르다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일까. 멸치 대가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안도감. 곧바로 흥미를 느꼈었지.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한 흥미. 인간의 탈을 쓰지 않은, 멸치 대가리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닌 존재. 인어. 언뜻 봤던 인간의 얼굴. 다시 멸치 대가리의 얼굴. 그리고 짝꿍. 아,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껏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딱히 나를 골리기 위해 속인 것도 아니고, 본인만의 사정이 있어 내색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을 테고, 애초에 짝꿍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내가 역정을 내고 있는 걸까?
아,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눈치 빠른 년을 싫어하는데, 얘는 기척을 숨기고 살았으니 어쩌면 나 모르게 내 생각이나 감정들을 눈치챌 수도 있었겠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들켰다, 하는 생각.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잠깐 얘기 좀 할까?
가방을 메는데 옆에서 불쾌한 숨이 얼굴에 맞닿았다. 짝꿍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짝 숙이고 제발이라며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당당하게 대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듯한 몸짓이 어처구니없었다. 아니. 난 할 말 없는데. 짝꿍은 내가 거절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벙찐 얼굴이었다. 벙찌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나? 아무튼 멸치 대가리와 삼인방과 짝꿍을 무시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아들이 스트레스를 받나. 꼴이 영 말이 아이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수족관을 살펴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어, 왔나. 손 씻고 방에 들어가라.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아 일부러 가게 쪽으로 돌아서 왔던 건데. 엄마가 통로를 막아선 채로 이리저리 어항을 둘러보고 있는 탓에 시야가 거슬렸다. 학교에서부터 겨우 억누르고 있던 인내심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이상하네, 참 이상해. 개의치 않다는 듯 엄마는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물고기들을 살펴봤다. 그러다 멈칫하더니, 아휴, 또 누고.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엄마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으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경박한 통화소리가 여기까지 가볍게 울렸다.
엄마는 거실과 붙어있는 작은 가게를 사서 몇 년째 수족관을 운영했다. 손님도 없고 오는 거라곤 구경만 하다 가는 초등학생뿐인데 접으려는 생각도 않고 물고기들만 관리하며 빚을 더 늘리고 있었다. 아빠는 옆 동네 수산시장에서 생선 손질을 했다. 수족관 소득이 없자 등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이었다. 처음엔 나도 이에 별 불만 없었다. 다만 가게와 분리되지 않은 공간 때문에 수족관의 비릿한 냄새가 집 안까지 풍겼다. 엄마도 아빠도 근처에 가면 언제나 비릿한 냄새가 났다. 어쨌든 엄마가 언제 또 전화를 마치고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얼른 내 할 일을 해야지. 물고기와 눈을 맞추며 수족관에 손을 집어넣었다. 소매가 촉촉이 젖어 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팔딱팔딱. 물고기처럼 심장이 뛰었다.
팔딱팔딱. 손이 근질거렸다. 물고기는 계속해서 내 손안에서 튕겨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팔딱팔딱.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줄곧 힘주고 있던 손아귀를 펼쳤다. 뻐끔뻐끔. 내 손 안에 안착한 진짜 생명체. 마음이 안정되면서 동시에 흥분됐다. 나는 이 작은 생명체가 몹시도 귀여웠고 물도 없는 육지에서 물고기는 물을 찾으며 산소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점차 팔딱거림이 미약해졌다. 숨이 멎기 전에 서둘러야지. 컷팅 매트 위에 물고기를 뉘어놓고 커터 칼을 찾았다. 팔딱팔딱. 심장이 뛰었다. 통이 얇은 집게를 물고기 옆에 두고 수술실을 집도하는 의사라도 된 것마냥 눈을 감고 마음을 다 잡았다. 물고기가 내지를 비명이 내 뇌 속에서 경쾌하게 울러 퍼졌다. 눈을 뜨고 물고기를 내려다봤다. 해체 분리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