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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임 Nov 10. 2024

수업을 마치고 나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교과서를 가방을 넣으면서도 여전히 멍한 상태를 유지하며 멍하니, 멍하니, 또 멍하니 있었다. 뇌가 고장 났는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어제 꿈을 꿨었나……?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일이……. 여자애가 있는 쪽을 뒤돌아봤다. 여자애와 단발머리가 나란히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여자애가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세상에!) 눈인사를 했다. 심장이 덜컥 움직여서 나도 모르게 발작을 일으켰다.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내게 관심이 있는 걸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근데 그게 아니고서는 왜 내게 웃어주겠어? 어제도! 어제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도 내게 말을 걸어왔고, 다가왔고, 심지어 싱긋 웃기까지 했다! 말도 안 돼.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혹시 이게 그거일까? 이게 바로…… 나와 사귀고 싶다는 신호일까?



말도 안 되지. 학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 마, 이제 학원, 에, 가요. 버스는 덜컹덜컹,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급 브레이커를 밟았다. 창밖으로 빨간 신호등이 보였다.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돼. 내 인생에 그렇게 지대한 일이 생길 리가 전무했다. 그래,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고작 멸치에 불과한 내가 무슨…. 애들한테 멸치새끼라고 놀림이나 받는 내가 무슨……. 자책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삼인방과 점심시간 때 있었던 그 일이 떠올랐다. 이제는 울분이 치밀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이딴 식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창피했다. 사는 게 괴롭고 답답해요!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버스 안에서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털레털레 힘을 빼고 발걸음을 옮겼다. 학원 상가 건물을 올려다보니 한 차례 또 숨이 막혔다. 나왔다, 마왕의 성! 공주를 구하기 위해 사나운 드래곤과 맞서 싸우는 용맹한 기사! 가 될 순 없겠지만,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으며 건물 안으로 용감하게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내디뎠다. 계단에 올라갈수록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배는 아프고…. 뱃속에서 거품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앞을 향해 전진했다.

휴우.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열어 내부로 들어갔더니 익숙한 단발머리가 보였다. 어라, 이상하다. 도서실에서 봤던 그 뒷모습 같은데. 단발머리에 가려진 원장님도 눈에 띄었다. 새로운 학원생이 왔구나. 분명 이 애도 마왕성에 잡혀온 게 분명하겠지. 원장님과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단발머리에 애써 눈길을 돌렸더니(얼른 자리에나 앉자) 원장님이 날 보고 부담스럽게 아는 체를 하셨다. 어, 거기. 너도 학교에 다니지? 네? 네에……. 마침 잘 됐네. 얘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데. 같은 친구끼리 친하게 좀 지내. 아, 네에……. 원장님은 새로운 학원생과 나만 두고 자리를 떠버렸다. 뭔가, 뭔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하, 너도 여기에 잡혀 온 거니? 아냐, 이건 아니야…. 안녕, 같은 친구끼리 잘 지내보자! 아냐, 이것도 아니야….



너도 이 학원에 다니니?



인사말을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새로운 학원생이 말을 걸어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도 여기에 다니게 됐어. 잘 지내보자. 단발머리가 도서실에서 들려줬던 차분한 음색으로 내 귀를 흔들어 놓았다. '잘 지내보자.' 잘 지내보자고…? 그렇단 말은 친구가 되자는 건가? 그런 건가? 야호, 나도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친구가! 부담 없이 말을 건네오고, 나도 부담 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단발머리의 그 한마디 말에 나는 평범한 10대 남자애처럼 귀가 두근거렸다. 친구, 친구….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첫, 여자, 인 친구. 아! 그런데 만약 단발머리가 내 친구가 되기 싫어하면 어쩌지?



뭐 해? 들어가자. 나도 너랑 같은 반이야.



그래, 친구야. 속으로 대답을 하며 단발머리를 따라 학교를 벗어난 또 다른 교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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