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서서히 '나'의 존재를 갉아먹는 어두운 그림자 -'가스라이팅’

by 지지아나

직접 만난 ‘가스라이팅’ 가해자


살면서 그런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동안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사람’이란 바로 타인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가스라이팅’ 가해자를 말한다.


‘가스라이팅’이란 심리학 용어 중 하나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 등을 조작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어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피해자는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에 대한 의심을 키워가고 결국 가해자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보인다.



처음 나는 '나'라는 존재로 오롯이 존재한다.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조직에 잘 적응하고 일로 인정도 받고 싶다.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향해 다가오지만 안타깝게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직 나는 조직의 일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어두운 그림자는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완전히 덮친다. '나'라는 존재가 지속해서 부정당하면서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가 만든 틀 속에서 춤추는 꼭두각시로 움직일 뿐이다. 나는 매일 그의 기분에 따라 옥상으로, 회의실로 불려 가 그동안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의 사소한 행동들에 대해 지적받는다. 대화는 몇 시간 동안 이어진다. 잘못한 게 없지만 죄송하다고 말해야 겨우 상황이 종료된다. 출근 전이든, 근무 중이든, 퇴근 후든, 주말이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내 마음은 점점 황폐해진다.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뭔가 억울하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또 회의실로 불려간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그의 일방적 주장에 지쳐 포기하고 만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벗어날 수 있을까. 최후의 수단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본다. 이럴 수가. 그들은 그가 이상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방법이 없다며 결국 외면한다.


사람들의 외면 속에 또 다른 새로운 피해자가 생긴다.



위 사례는 조직에서 벌어지는 '가스라이팅'의 한 예다. 사회생활을 계속할수록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합리한 상황이 가스라이팅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입사 초, 어떤 선배는 대화 끝에 늘 “나 같은 선배가 어디 있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돌아보면 조언이랍시고 나를 불러낸 그 선배가 한 행위는 권위를 앞세운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일 뿐이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2가지 방법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 어떤 선배 덕분이었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와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나도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음 2가지 방법을 터득했다.


1. 관계가 끝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이 관계 때문에 인생이 괴롭고, 힘들게 입사한 회사까지도 그만둘 생각이라면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그 관계로부터 도망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잘 매듭짓지 못한 마음속 상처는 애써 꼭꼭 숨겨둔다고 해도 평생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언젠가는 나를 공격하는 칼날의 끝이 될 수 있다.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대화가 통할 리 없다.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기에 눌려, “그래, 내가 잘못했어.”라는 문장을 내뱉고 말 것이다. 이때 필요한 건 상대가 뭐라 하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다. 매번 순종하던 내가 강하게 의견을 쏟아내면, 상대도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한번 목표로 삼은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한 마리의 맹수와 같다. 먹잇감을 통해서만 자기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오로지 이것만 명심해야 한다.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너 없이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당당한 태도. 그때야 ‘너는 내가 갖고 놀 수 있는 먹잇감이 아니구나.’하고 포기한다. 통화를 한다면 내 주장을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려야 하고, 대면하는 상황이라면 바로 뒤돌아서서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내 의견만 말하고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꽤 오랜 시간 무관심, 무대응으로 대응했다. 한마디로 뻔뻔해졌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비정상적인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기 어려운 존재라면, 남보다는 ‘내’가 변하는 쪽을 택하는 게 좀 더 쉽지 않을까? 타인을 내 기준과 가치관에 맞게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도 변하지 않는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가해자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변하지 않는 가해자와 내가 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은 사람이다.
모든 결정을 내릴 때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학교와 달리 사회에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없다. 자신 있는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 나를 노출하고 이를 극복해 가면서 배우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아픈 경험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럼 나쁜 경험을 조금이라도 피할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어떤 선택을 할 때 항상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사람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연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이건 아닌데’ 하는 상황 속에 나를 가둬놓는 일이 줄어든다. 혹시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면 내게 맞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넓디넓은 이 우주에서 매우 좁은 땅덩어리 한구석 어디쯤이라는 것이다. 대개 가해자는 나보다 권위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딱 계단 한 칸만큼만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를 괴롭히는 그 인간, 사실 별거 아닐 때가 많다.


제대로 된 회사(라는 가정하에)의 일반적인 구성원이라면,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인격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피해자를 도울 방법을 찾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도움을 요청하고 손을 내밀자. 만약 회사에서 찾을 수 없다면 외부의 힘이라도 빌리자. 그러나 그런데도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몰려있다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반드시 탈출해야 한다. 탈출에도 무한한 용기가 필요하기에, 나는 그런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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