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두호는 얼마 전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얼마 전 앞까지는 L전자 A/S 맨이었다.
길고 긴 백수 생활을 접고 직업훈련원에서 두 달간 직업교육을 받더니 한 달 남짓 일하고 그만두었다.
여관에 TV 수리하러 나갔다가 옆방 TV랑 바꿔치기한 것이 들통이 나자 이튿날 부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옆방 TV를 그랬냐고 물었더니.
“내 사수가 그래 하라더라고, 잘 안 고쳐지면 일단 바꿔놓고, 담에 또 A/S 들어오면 부품 미리 준비해가 다시 가서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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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가 다시 백수 된 바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간략히 말해 둔 바 있으나, 외전의 형식을 빌어 그의 주옥같고 절절한 하소연을 옮겨보자.
참고로.
주로 구어체로 쓰인 것으로 비속어가 더러 혼재하니 이 점 유의해 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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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당하는 구역에 완월동이 있어. 들어본 적 있지 않냐? 대구 자갈마당, 서울의 미아리, 텍사스촌 등에 견주어 비교 우위라 자신할 수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사창가. 자랑스럽게도!
난 말야, 20대까지만 해도 이곳 지명이 만월(滿月) 동인줄 알았어. 그래서 지명이 우째 이리 운치 있으면서도 사창가스러운가 하고 탄복하기도 했단다.
그렇다 치고.. 여하튼 완월동은 사창가답게 여관이 참 많아.
A/S 경력이 짧아 뭐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없었지만 그나마 센터에서 주는 일이 TV수리인데.
이 동네에 넘치는 것이 여관이고, 여관마다 넘치는 것이 방이니, 방마다 있는 TV도 역시 넘치지 않겠어?
그러니 고장 난 TV도 넘쳐서는 사나흘에 한 번꼴로 이 동네를 들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거지.
햇살이 따사롭고 그림자가 짙은 버얼건 대낮이었어.
밤이 되면 취객이 어슬렁거리고 짙은 화장을 가면으로 대신한 아가씨들의 호객이 있고 또 흥정이 오가겠지만,
낮의 이 거리는 그냥 조용한 주택가 일 뿐이었어.
그 거리를 걸어 오늘도 고장 난 TV를 고치러 어느 여관방에 들어갔는데 한 아가씨가 들어앉아 있는 거야.
아하... 이방은 이 아가씨 전용방인가 보다 했지.
"TV수리하러 왔습니다. 고객님."
아가씨 분냄새가 살짝 나는 것이 아랫도리에 신호가 가는 거야.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내가 TV 고치러 온 거 아니면 이 방에 떡 치러 올 일 밖에 더 있겠어?
"네. 아저씨 빨리 좀 고쳐주세요."
TV를 분해해서 몇 가지 자주 나는 고장에 대한 테스트를 해보았지. 근데 이게 오늘따라 폼 안 나게, 어디가 고장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거야.
"아저씨 고장 많이 났어요?"
"아, 아니요 콘덴서가 나갔나, 냉납인가...."
일단 잘 알아듣지 못할 소리부터 시전해 놓고.
"아저씨 못 고치면 절대 안 돼요~"
"예?"
"고쳐줘야 내가 일을 하지. 손님 비디오 틀어줘야 하거든. 쌕쌕이"
"아... 몇 시부터 일하는데요?"
"좀 있다가. 오빠야가 첫 손님 할래? 지금부터 일할까?"
아저씨가 오빠야가 된 거야. 귓불이 빨개지더구만.
나란히 벽 쪽을 향해 앉아 아가씨는 화장을 고치고 나는 TV를 고치고, 거울에 비친 아가씨랑 눈도 여러 번 마주치고.
좁은 방에 청춘남녀가 같이 있으니 이거 근무환경이 점점 난해해지는 거야.
꼴려서 집중이 안 돼서 그런지 TV는 더 안 고쳐지대.
그냥 센터로 들고 갈까 하다가도, 그랬다가 쌕쌕이 못 틀어줘서 아가씨 영업하는데 심각한 지장을 주 면 어쩌나... 하는 오빠 같은 배려심이 생기는 거야.
"저기 아가씨."
고객님이 아가씨가 되었지.
"이 TV 금방은 안 고쳐질 것 같은데 급하면 옆방 TV 하고 바꿔놓을까 일단?"
"그래요? 그래도 되나?"
"아가씨가 급한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가끔 선배기사들 그럴 때도 있다 하더라고...."
"그럼 오빠야가 알아서 해줘."
그래서 특별히 신경 써주는 것처럼 하고 TV를 옆방 꺼랑 바꿔놓아 줬지. 그리고 담에 놀러 오면 꼭 아가씨를 찾아오겠다고,
그땐 잘해 달라고 몸과 마음의 소리도 함께 전해놓고.
근데.
그다음 날 여관주인한테서 전화가 온 거야.
우리 센터로.
고장 난 TV 안 고쳐주고 옆방 꺼랑 바꿔치기한 좆같은 기사새끼 바꾸라고 욕을 해대면서 말야.
센터소장이 묻데. 니 바꿔치기했냐고. 전후사정을 말할 새도 없이 일단 그러기는 했다... 까지만 대답했는데,
더도 안 묻고 나더러 TV 두 대값을 갖다 주던지 두 대를 사다 주던지 하라고 하는 거야.
그 여관주인이 전에도 몇 번 이렇게 한 것이 분명하다며, 전직 양아치에다가 현직 포주의 직책까지 겸한 깡패의 아우라로 좆을 입에 물고 쌍욕을 해대니까 우리 소장이 그렇게나마 절충안을 낸 것이겠지.
내가 돈이 어디 있겠어. 겨우 한 달 일한게 다이고 그나마도 수습기간이어서 월급이라 해 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걸.
소장더러 나올 급여에서 까라고 했지.
그리고 담날부터 출근 안 했어.
짜다리 연락도 없더라.
센터에 있는 TV 주고 해결보고 나니, 거기서 까인 급여는 줄 것도 없을 테고 그러니 기본 안된 기사새끼는 안 나오는 게 오히려 나았던가 보지.
여하튼 그래서 그만뒀어.
씨부랄. 월급도 못 받고 직장 짤리고.
국 쏟고 보지 딘다더만 그 짝인 거야.
내 딴에는 신경 써 줄라고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