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_7
라도형이 내려간 지 나흘이 되었다.
첫날 전화 와서 잘 도착했고 사흘쯤 후에 올라간다고 했으니 오늘이 그날이다.
저녁이 다 되니 궁금도 하고 전화를 하는 것이 행여나 자신을 못 믿어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봐 적당한 핑계를 생각 중이다. 뭐라고 하면서 전화할까. 폰을 잘 못 눌렀는데 신호 가는 김에 목소리도 듣고 하려고 그냥 들고 있었다고 할까? 아! 어머니는 좀 어떠시냐고 물어야겠다. 두호도 그게 좋겠단다.
휴대전화를 해본다. 뚜~ 뚜~ 전화를... 안 받는다.
아직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고, 돈이 부족해 여러 명이 쓰는 다인실에 입원 중일 테고 그러니 옆 환자를 배려해 전화기를 진동해 놓았을 테고 그래서 잘 몰랐다거나, 마침 화장실에 간 사이에 전화를 했나 보다 생각했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전화를 해보니 이번엔 통화 중이 걸린다. 조금 불길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통화를 하는 것 같으니 급한 상황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어 그날 저녁에는 더 전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정오쯤 전화를 해보았다. 역시 안 받는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런데 잠시 후에 전화가 울린다. 받으니 라도형이다. 하얘진 머릿속이 다시 뭔가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일이 잘 안 돼서 시간이 더 걸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보고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한다. 나잇값 못 한다는 소리 듣는다고. 원래는 전화를 안 하는데 내가 너무 착해서 전화 걸어준다고 했다. 착하다고 말해주니 고맙다고 했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릴 수도 있으니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지내라고 한다. 알았냐고 묻는다. 알았다고 했다. 그러니 끊는다. 잠시만! 언제 올 것 같냐고 물었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다고 한다. 그러고는 진짜로 끊었다.
다시 머릿속이 하얘진다. 두호가 나를 쳐다본다.
“뭐라대? 언제 온다대?”
라도형, 아니 이 판에 형은 무슨, 라도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수건 한 장에 셔츠 바지 한 벌, 우리 당구장에서 쓰던 야스리 한 개, 어디서 훔쳤는지 주웠는지 핑크빛 여자 팬티도 한 장 고이 접혀 있다.
머릿속이 하얘지다 못해 빛이 날 지경이다.
“두호야 라도 글마 내 돈 떼묵었나보다.”
“뭐? 설마. 그 행님 안 글켔던데.”
“시발노마 여 함 봐라. 처 맽기논 가방 꼬라지. 변탠갑다. 지집 빤스는 와 넣어 댕기노. 니... 니가 전화 함 다시 해볼래?”
그래도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두호가 전화하는 모습을 쳐다본다.
“전화기 꺼지 있는데?”
백만 원 두 다발이 하늘로 한 쌍의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다.
카드 현금 서비스 이백. 그거 어떻게 메꾸냐.
“그라모 그 행님 인자 여 안 오나?”
“야이 시발로마 넙떡한 그 변태 새끼 내 돈 떼묵고 도망갔다니까. 글마 했다는 당구장 이름부터가 JB, 그게 당구장 이름이 되나? 보지 거꾸로 한 거지 이 빙씬아.”
다음 날 라도가 말했던 아파트 공사장에 갔다. 노가다하는 일꾼들은 노란색 헬멧을 썼는데 그들 중에 회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흰색 헬멧이었다. 아무래도 관리직 같아 물어봤다.
“저기예, 여기 철거회사에서 나온 사람들 있습니꺼?”
“철거회사? 무슨 철거?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그러니까 여기 짓기 전에 있던 건물 철거한 회사”
“아. 그런 거 없다니까? 여기 산 깎아서 짓는데 무슨 있지도 않은 건물을 철거해요.”
“그럼 산 깎은 거 철거하는 철거회사, 용마건설이라고....”
“여기 공사장에 다른 회사 들어온 거 없어요.”
“용마건설 박 부장이라고....”
“거 참 젊은 친구가 말귀를.... 철거 일 하려고 그래요? 그런 일은 없고 잡부는 구하니까 저기 현장사무실 가서 물어보던가.”
예상은 했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와보기는 했는데, 그래도 확실히 아닌 것이 밝혀지려고 하니까 참 허전하고 서글프다.
‘베란다에 염산물 아직 남았던데 그 개새끼....’
공사장 현장사무실에 가서 잡부 일을 물어봤다. 일당 오만 원이고 좀 어려운 보직을 맡으면 1.5배라 한다. 마침 잡부가 부족하니 내일부터 일 나와도 좋다고 한다.
오는 길에 전라도한테 전화를 다시 해봤다. 전화기는 꺼져있다. 아마 좀 있으면 결번이 될 것 같다. 참 나쁜 새끼다. 차라리 벼룩이 간을 빼 처먹지.
“두호야. 내 낼부터 노가다 할란다. 니 혼자서 가게 좀 봐라.”
“피곤해서 하것나?”
“우짜겠노 카드빚은 메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