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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광환 Sep 15. 2022

[단편소설]  친구의 유산

그는 말 수 없는 친구였다


1

나는 어려서부터 인생을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현명하게도 나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꿈같은 걸 가져본 적도 없다. 어차피 무슨 꿈을 갖게 되던 이루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남들처럼 적당히 살면서 그저 삶을 즐기면 그게 인생이라고 나는 결론내린 바 있다.

대학을 나왔을 때 또래의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입사시험을 치렀는데, 최고 회사답게 경쟁률이 높았다. 그나마 학교 때 성적은 우수했으므로 서류 통과는 별 일 아니었다. 나는 연극배우처럼 에너지 넘치는 인물 연기를 피나게 연습한 결과 마침내 면접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회사 입사가 내게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입사한지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을 때, 안타깝게도 나는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살 체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나는 자신에게 자문했다.

‘그럼 체질에 맞는 일이 뭔데?’

진지하게 생각해본 나는 그 해답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도 해보지 않은 나는, 군대를 다녀온 것 빼고는 회사가 첫 사회생활이었다. 내 생활의 즐거움과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이 사회 어느 구석에 있는지, 그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사회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얼굴을 대면할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영악하게도 사회를 알기 위해 다니기 싫은 회사를 3년 동안이나 참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가 굴러가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 속엔 나를 구속시키지 않을 사업거리가 존재한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당장 직장을 때려치웠다. 그러고는 집에 틀어박혀 자료수집에 매달렸다. 어차피 세상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돌아간다. 어디서 무엇이 필요하고, 그 필요를 어디에서 충족시킬까. 

한동안 전 세계 시장을 실눈을 뜨고 뒤져본 나는 가죽이라는 상품에 주목했다. 가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가죽제품시장을 석권하고 있기 때문에 그 거대한 나라엔 가죽가공물량도 엄청났다. 그러나 최고의 가죽가공기술자들은 모로코에 있었다. 수백 년간 이어온 모로코의 수제가공기술자들은 아직도 오래 된 방법으로 가죽을 가공했다. 그들의 품질은 어디서도 따를 수 없었지만, 생산량은 소규모였다. 거기에 좀 더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운다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 사업에 대해 혹시 무언가 잘 못 된 것은 없는지 검토해 보았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내 집 앞에서 피켓을 들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그들의 구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가축은 죽으면서 가죽을 남기게 돼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며 인간은 가죽제품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아마 천년 후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가죽사업을 하기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서는 확실하고도 치밀한 사업계획서가 필요했다. 꼼꼼하게 사업계획서를 쓰고, 고치고, 또 쓰고 있는데, 회사 있을 때 팀장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의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술이나 한잔 하면서 그 사업구상 좀 듣고 싶은데, 괜찮겠어?”

누군가 내 할 일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그게 빈 말이라도 고마운 법이다. 팀장을 만난 술자리에서 나는 마치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 심정으로 내가 구상한 사업을 피를 토하듯 설명했다. 그는 의외로 진득하니 들으면서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에 그는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이 사람한테 한 번 연락해봐. 내가 볼 때, 그 정도 사업계획이면 아마 투자해줄 가능성이 커 보여.”

회사에 입사해서 내가 조직생활에 회의를 갖게 된 건 팀장 때문이었다. 그는 성격이 온화한 것 같으면서도 일에 임하는 자세는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그 앞에서 일 할 땐 뭐든 자로 잰 듯 반듯해야 했다.

‘이런 식이면 차후가 불투명해져. 우리가 바라는 건, 분명한 성과가 보일 수 있게 그림을 그려야 되는 거야. 다시 차분하게 만들어 봐.’

축구선수처럼 모든 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적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성과라는 골인에 집착해야 되는 숨 막히는 분위기. 팀장은 그 팀원들이 비집고 들어가야 할 곳으로 신통하게 잘도 몰아대던 사람이었다. 

‘장래 사장감이야.’

회사 동료들은 팀장을 한결같이 그렇게 평가했다. 그런 팀장이 건네준 명함. 투자해줄 가능성이 크다는 그 명함. 결국 나는 그 명함의 주인이 넉넉하게 투자해준 자금으로 모로코에 가죽공장을 세웠다. 기계는 가죽제품 전문기계업체로 유명한 독일 회사에서 가져왔다. 얼마 안 가 모로코에 거의 자동화 된 현대식 가죽공장이 완성 됐다. 그런 다음 파격적인 보수뿐만 아니라, 수익에 따른 두둑한 보너스까지 제시하면서 모로코의 최고 장인들을 모아 가죽생산에 들어갔다. 인구보다 가축이 더 많다는 호주는 가죽이 넘쳐나는 나라다. 가죽조달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가져간 가죽샘플을 본 중국인들 치고 눈이 커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최고급 가죽이라는 걸 그들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공급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었다. 광저우와 하이닝의 가죽상인들은 가격을 얼마든지 쳐줄 테니 가죽공급만 약속해달라고 매달릴 정도였다. 나는 어느 새 그들의 귀빈으로 떠올랐다.

회사 경영은 별 거 아니었다. 서울 사무실에서 호주로 가죽 발주를 넣고, 모로코의 생산현황을 살펴보면서, 중국의 주문서와 동시에 따라오는 송금 확인만 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서울에 앉아 모로코공장의 어느 기계, 어느 부품을 갈아 끼워야 하는 것 까지 한 눈에 파악하고, 독일의 기계회사에 부품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공장의 수많은 카메라가 세세한 곳까지 비춰주었다. 공장 기술자들은 최대한 열심히 일했다. 지난날의 열악한 환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깨끗한 환경과 좋은 보수, 거기에 그들에게도 보너스로 돌아가는 수익금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업에 따른 수익은 기대 이상이었다. 세상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내게도 특별히 문제 될 것 없는 사업이었다.


최고의 가죽장인은 모로코에 있었다


2

이제 겨우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문은 고향동창들 사이로 금방 퍼져나갔다. 그들은 언제부턴가 나를 만나면 우상처럼 대했다.

“어이, 박 사장. 그 회사, 사람 안 구해?”

친구들이야 상상도 못하겠지만, 나는 직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을 나 혼자 처리해도 시간이 남아돌아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해, 고향 동창 모임에 강경식이 나타났다. 그는 말끔한 베이지 슈트차림에 울긋불긋한 넥타이를 매고 다크그레이 롱코트까지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넥타이핀과 와이셔츠 소매를 고정시킨 커프스단추엔 같은 쌍이 틀림없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신사차림이었지만 키가 큰 경식이에겐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거기에 파나마모자까지 썼다면 타이타닉호의 일등객실 손님이 느닷없이 살아 돌아온 모던적 신사로 착각했을 것이다. 

경식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본 적이 없던 친구였다. 별로 말 수 없는 성격인 그는 졸업 후 다른 친구들과도 교류가 없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뒤 판교에 있는 작은 IT회사에 들어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 더 이상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는 친구는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경식이가 다가와 물었다. 경식이는 나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주욱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였다. 

“사업을 좀 하고 있어. 너는 어떻게 지냈어?”

“나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오랜만에 나타나 준 경식이가 반가워 내가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이젠 자주 좀 보자. 앞으로 나이 먹으면 남는 거 뭐 있겠어. 친구 밖에 더 있겠냐?”

“하긴, 나도 그래서 온 거야.”

경식이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대인기피증 환자처럼 굴던 친구였다. 누가 뭘 물어봐도 대답을 듣기 어려웠다. 설사 그가 가까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얼굴에 홍조부터 어른거렸다. 그는 친구들의 눈도 자꾸만 피할 정도로 심하게 부끄러움을 탔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전혀 다른 경식이 모습이었다. 

동창들과 헤어질 때 경식이가 말했다.

“나 차 없어. 서울 갈 거면 나 좀 태워 줘.”

그는 서울에서 렌터카를 타고 와서 고향 도시에 반납했다고 했다.

“너랑 같이 올라가려고.”

예전 부끄러움을 타던 시절처럼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이젠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은 타오르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출발한 직후에 어디선가 나타난 벤츠마이바흐가 크롬범퍼를 번쩍이며 쫓아왔지만 나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경식이에게 내 명함을 주었더니 자기는 한국명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명함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한국에선 명함 사용할 일이 없어.”

“그럼 외국 명함은 있어?”

“그거라도 줄까?”

그는 금박 입힌 낯선 재질로 만든 명함을 꺼내 건넸다. 경식이 명함엔 영문으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Soulless Investment Company 

CEO  Alex Kang 

Mobile, +356-7900-3685-4450

“영혼 없는 투자회사 대표, 알렉스 강? 이거 네 회사야?”

“응, 내 회사야.”

“국가 코드가 356번이면, 여기가 어느 나라야?”

“몰타라는 데야.”

“지중해에 있는?”

“그래. 맞아.”

대화를 나눌수록 그에 대한 궁금증은 자꾸만 증폭되었다. 도대체 뭐하겠다고 몰타까지 가 있는 걸까. 그리고 요즘 젊은이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차림새는 뭘 의미하는 걸까. 게다가 투자회사를 한다고? 이 친구가? 어릴 때 경식이를 생각하면 IT회사에서나마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토록 소심한 성격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지 않은가. 그런데 지중해의 낯 선 섬나라까지 가서 뜬금없이 투자회사를 한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경식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통제하기 바쁜 내가 이해된다는 듯 말했다.

“3년 됐어. 투자회사 시작한지. 아무래도 투자 상대라는 게 전 세계잖니. 그래서 여러 가지로 움직이기 편한 그 쪽에다 자리 잡은 거야.”

지중해 그 작은 섬이 전 세계를 향해 움직이기 편한 곳이라는 경식이 말을 이해하기에도 내 상식으로는 불가능했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각인 된 그곳인데 말이다. 삶의 목적이 분명하면 시야가 트이는 법이다. 갈 곳이 정해지면 눈 감고도 그 길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곳을 향해 어떤 속도 또는 어떤 의지로 가느냐가 문제다.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경식이는 자기 가는 길에 확신을 가진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의 눈빛이 갈 곳 모르고 방황하던 예전과는 확연이 달라진 것이다.

“근데 영혼 없는 투자회사는 뭐야?”

세상에 무슨 갖다 붙일 이름이 없어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그렇게 상상력이 없어서야 어떻게 사업을 한다고 그러는 건지. 그렇다고 나는 경식이 앞에 대 놓고 지적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친구 아닌가. 오랜 만에 만난 친구.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어. 영혼 없다는 의미. 근데 네 명함에 적혀 있는 이 전화번호는 모로코 국가코드 같은데? 모로코에서 사업하는 거야?”

“공장이 거기 있을 뿐이야.”

“자주는 가?”

“가끔 일 있을 때만 가는데, 이번 토요일에도 일이 있어서 가봐야 될 것 같아.”

“왜, 하필 토요일에 출장을 가?”

“그래야 일요일 날 푹 쉬고 말짱한 정신으로 월요일부터 일을 볼 수 있잖아. 거기 가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돼서 말이야.”

“비행기 예약은 했어?”

“아직 안했어. 내일 하려고.”

“나도 어차피 몰타로 가니까,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데려다 줄게? 내가 경식이를 쳐다보니 그도 마주 보았다. 표정 없는 그 얼굴에서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눈은 똑바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일말의 농담이라든지, 또는 흰소리로 치부할 만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랜 만에 만난 경식이는 뭔가 알지 못할 수수께끼를 안고 돌아왔다. 경식이가 말했다.

“사실, 널 만나고 싶어서 한국 들어왔어. 회사 그만 두고 사업을 한다는 소식은 들었거든.”

우리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지만 특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친하고 싶어도 경식이 마음속으로 들어가기엔 그 빗장이 견고했다. 경식이는 사람들 옆에 있는 걸 불편해했다. 그는 항상 외톨이였어도 오히려 그에겐 그게 평화로워보였다. 경식이는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았고, 누구의 접근도 환영하지 않았다. 그는 시골에서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그런 사실도 중학교 때 처음 알았다. 경식이가 학교를 결석한 날, 담임이 가까운 동네에 살던 내게 그 친구 집엘 다녀오라고 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심한 독감에 열이 펄펄 끓는 경식이 이마를 짚으면서 내가 울상을 지었던 기억과 함께, 경식이 어머니가 문병을 와줘서 고맙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고 경식이가 나한테만이라도 마음을 열어준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홀로 떨어져 있는 경식이를 멀찌감치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경식이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닫아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나를 보고 싶어 했다니. 오히려 그 이유 또한 무엇인지 궁금증이 밀려올 따름이었다. 하지만 경식이는 거기에 대한 어떤 해명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게 경식이다운 행동이었다. 나는 그런 경식이를 이해했다. 원래 그는 그런 친구였으니까. 서울에 도착해 경식이를 내려주려고 차를 세웠다. 그 때 그가 말했다.

“비행기 예약은 하지 말고, 토요일 날 아침에 그냥 김포공항으로 와.”

“거긴 왜?”

“내가 아프리카로 데려다준다니까.”

“김포공항엔 거기 가는 비행기가 없잖아. 인천공항에...”

“와 보면 알아.”

경식이가 내 차에서 내려 뒤 쪽으로 가더니 벤츠마이바흐에 올라타는 것이 백미러로 보였다. 그 차가 나를 지나쳐 어느 사이 도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쨌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김포공항엔 국제항공 노선이라 봐야 동경의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노선 밖에 없었다. 그 외엔 모두 국내 노선이다. 더구나 저 벤츠마이바흐는 또 뭐야? 그 차는 분명 고향에서부터 뒤를 따라왔다. 그런데 경식이는 일부러 내 차를 타고 온 것이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식이가 나한테 무슨 사기 칠 일이 있나? 경식이가 예전과 사뭇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변했지? 그렇다고 남을 속이면서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그런 심리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건 하늘이 두 쪽 나도 경식이에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어쨌든 경식이는 나를 보려고 한국엘 왔다고 했다. 물론 그 이유뿐만 아니라, 10년 만에 다시 본 경식이 내면이 어떻게 변화했을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3

나는 몇 번을 망설였지만 토요일 날 아침 결국 김포공항으로 갔다. 그렇다고 경식이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내가 모로코 공장엘 가야 하는 이유는 어차피 당장 바쁠 일 없는 기술자 문제기 때문이었다. 기술자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산업재해보상금을 요구했다. 나는 기술자에 대한 처우를 최대한 해주고 있었고, 병이 들었다면 거기에 따른 보상은 충분히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청구한 보상금은 과도한 금액이었다. 그가 작업환경 때문에 병이 들었다 해도 필경 이 전의 열악한 환경에서 얻은 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죽 가공을 위해 건강 보호시설도 돼있지 않은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화공약품을 다뤘을까. 이제 2년밖에 안 된 내 공장에서, 그것도 이 전의 그들 환경보다 철저하게 개선 된 환경에서 병이 들었다는 말을 수긍하기 어려웠다. 나는 현지 변호사에게 이 일을 법적으로 검토하도록 맡길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굳이 오늘 가지 못한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내일 가면 되니까. 그렇기에 경식이에게 속는 셈 치고 김포공항으로 나갔던 것이다. 어떤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경식이가 데려다준다는 호의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마음을 보이고 싶었다. 

오랜 만에 들어가 본 김포공항청사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저 쪽에서 경식이가 다가왔다. 경식이 차림은 와인색 와이셔츠에 다크골덴로드 슈트, 거기에 샌디브라운 머플러를 두른 위로 피치퍼프 코트를 걸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렌지레드 빛의 입체적인 무늬가 들어가 있는 넥타이에 꽂혀있는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 역시 영롱한 황색 보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희귀하기로 이름난 컬러다이아몬드일 것이다. 그런 경식이 모습은 아직 이른 봄이었지만 벌써 꿈에 홀린 봄날의 아지랑이를 마음 속 가득 품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솔 잎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바람처럼 차분했다. 경식이는 내가 끌고 있는 여행용 가방을 빼앗듯 낚아채더니 앞장 서 걸어갔다.

“어디로 가는 거야?”

“그냥 따라 와.”

아침의 김포공항청사는 그리 붐비지 않았다. 대부분 국내 여행객들인 그들은 서두를 일이 없는 것이다. 청사로비를 벗어나 어느 복도로 들어가더니 경식이는 탑승게이트와는 상관도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꺾어 들어갔다. 앞으로 열려있는 긴 복도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무언가 물어보고 싶어도 성큼성큼 걸어 저 만치 앞서 가는 키 큰 경식이를 따라가기도 숨이 차올랐다. 경식이가 다시 복도를 꺾어 들어가기에 따라가 보니 거기 복도가 끝나는 곳에 열려있는 문 위로 SGBAC(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경식이가 그 문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따라오는 나를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둘이 함께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텅 빈 넓은 홀이 나왔는데 그 안쪽 끝에 몇몇 공항직원들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우리가 다가가자 그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우리에게 달라붙어 두 사람의 출국수속을 해주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향해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길고 긴 동굴을 지나 갑작스레 환한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 경식이는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냥 앞만 보며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문을 지나가자 어느 새 우리는 넓은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곳엔 청아하면서도 묵직한 소음으로 꽉 들어찬 공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소형제트기가 계단 문을 내린 채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격납고였고, 묵직한 소음은 비행기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제야 경식이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자가용 비행기 격납고는 이곳 김포공항밖에 없거든. 저게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야.”

나는 군용 전투기만한 작은 비행기가 번쩍이는 빛을 발산하는 것을 보며 정신마저 아득했다. 경식이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 성큼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 때 비행기에서 남자 둘과 젊은 여자 하나가 내려와 계단 앞에 다소곳이 선채 우리를 기다렸다. 남자 둘은 백인이고 여자는 아랍계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은 단정하게 승무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온 우리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할 때 경식이는 그들을 향해 영어로 말했다.

“오늘도 잘 좀 부탁드립시다. 오늘은 내 친구가 동승할 겁니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향해 다시 눈인사를 하며 미소 지었고, 그 중 한 남자는 경식이가 끌고 온 내 트렁크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경식이를 따라 최고급 시설로 꽉 들어찬 작고 꿈결 같은 기내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 후에 건장한 체격의 서양인 세 사람이 비행기로 올라왔다. 검은 안경을 낀 그들은 뚝 떨어진 앞 쪽으로 앉았다. 


저게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야


4

“그건 우연한 일이었어. 내가 판교 그 작은 회사에서 딥 러닝 알고리즘을 파고 들 때, 자꾸 실패하다가 얻은 우연이었거든. 그 우연은 정말 내가 생각지도 못한 거였어.”

내가 바닷가재 파스타를 먹는 동안 경식이는 이탈리아식 죽 요리인 폴렌타를 먹었는데, 그나마 반도 안 먹고는 옆으로 밀어 놨다. 경식이는 90년산 이탈리아의 최고급 빈티지라는 베네토 화이트와인도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식이는 하늘을 날아가는 동안 벌써 두 시간 째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나와 함께 했던 12년의 학교생활을 통틀어도 경식이가 한 말 수는 그 보다 적을 것이다. 

“하도 답답해서 아직 미완성이라고 생각한 그 프로그래밍 신경망을 원래 있던 머신 러닝에 얹어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거야. 그나마 조그만 회사에서 도대체 밥값도 못하고 있으니 너무 창피해서 주위에 말도 못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집에 가져와서 두 달 동안 이것저것 데이터 소스를 넣어서 학습시켜봤어. 그랬더니 얘가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데,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어. 아무튼 데이터에 대한 결과 값을 내지 못하는 걸로 보였으니까.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신경망의 성능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 쓰임새의 확장성을 불러오려면 역시 인간의 영감이 필요한 건데, 난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알고리즘의 정체를 파악하지도 못한데다가 그걸 운용해볼만한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거든. 그저 머릿속엔 남들처럼 평범한 사고방식 밖에 없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난 천재가 아니잖아. 그래서 난 애초 생각대로 얘가 실패작이라고 끝내 결론을 내렸어. 그래서 결국 포기하려는데, 가만 보니 얘가 내 놓은 엉망진창으로 보였던 결과 값에 나름의 어떤 패턴이 보이는 거야. 말하자면 평범한 정답은 아니었던 거지. 그런데 내가 대학교 때 교양물리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 그 때 강의하던 교수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

그 교수는 우리 인간이 생각지도 못한 패턴이 우주에 존재한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그걸 눈치 채게 된 건 양자역학이라는 기괴한 학문이 태동하고부터였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그걸 몰랐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부처나 노자 같은 이들은 벌써 그 패턴을 인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양자역학의  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의 개념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부처나 노자가 직면했던 인식론적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경식이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알고리즘이 뱉어내는 결과 값을 분석하는 또 다른 프로그래밍 신경망을 고안해냈다고 했다. 거기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방법에서부터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의 순서까지 차근차근 밝혀내는 그 기간이 불과 석 달도 안 걸렸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세상을 구성하는 은밀한 패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역시 가야 할 길이 눈에 들어오니 경식이는 그 가는 길에 초인의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당장 회사에 사직서를 냈어. 도저히 난 안되겠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사장이 상당히 반가워하는 눈치더라고. 그동안 월급만 축내던 인간이 그만둔다고 하니 아마 사장도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을 거야. 난 집에 앉아서 내가 만든 알고리즘으로 미래 예측에 대한 여러 가지 데이터 분석을 실험해봤어. 그랬더니 역시 만족할 만한 분석 값을 내 놓더라고. 그 다음 부턴 직접 뛰어들었지.”

경식이가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경식이 눈은 내가 본 그 어떤 눈보다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식이 얼굴이 차갑도록 하얗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엔 남들이 가지 않던 자신만의 세계를 뜻하지 않게 가게 된 개척자로서의 희열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처음 몇 번의 실험기간을 거친 다음에 난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투자방법을 동원했어. 그랬더니 1년도 안 돼서 열한 단위 숫자로 불어나더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질문을 받고는 경식이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우리 돈으로 백억 단위가 되더라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러는 내 행동을 내 자신이 인식한 건 아니었다. 내 인식세계는 하늘을 날고 있던 그 순간처럼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경식이의 자가용 제트기를 탄 채 날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비현실이었다. 그런데도 경식이 하얀 얼굴엔 전혀 미동이 없었고, 목소리 톤 역시 두 시간 전과 다르지 않게 일정했다. 경식이는 그 후에 본격적인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그 본부를 지중해의 섬에 두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한 투자이기 때문에 영혼 없는 투자회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가용 비행기를 운용한다면 세계 여러 대륙의 중심에 있는 곳이 지중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몰타공화국은 한국정부와 조세조약을 맺은 나라로서 이중과세의 위험성이 없다고 경식이는 말했다. 

“몰타라는 나라는 두 개의 큰 섬하고 내가 사는 그 사이 아주 작은 또 하나 섬이 있어. 그래봐야 전체 국토 넓이가 우리나라 강화도 정도고 인구도 45만 밖에 안 되는 참 작은 나라긴 해. 그 나라 핵심 관리들과 친해지는 데 그리 어려움이 없었거든.”

그러더니 경식이가 피곤을 느끼는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우리가 아시아대륙과 북아프리카를 횡단하려면 아직도 열여덟 시간을 더 날아가야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정말 궁금했던 말을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날 찾아온 거지?”

경식이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왜 있잖아. 갑자기 누군가 보고 싶어지는 거.”

“근데 그게 왜 하필 나야? 넌 나하고 별로 말도 섞지 않았잖아. 하긴 다른 애들하고도 그랬긴 했지만.”

“그랬지.”

경식이 웃음이 좀 더 짙어졌다. 경식이가 내 빈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그의 행동은 말투처럼 여유롭고 느렸다. 그건 단순히 자신만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나는 왠지 그 동작에서 주의 깊은 사려감이 느껴졌다. 마치 대화하면서 상대의 옷에 묻은 머리카락을 얌전히 떼어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하지만 네 말은 틀렸어.”

경식이 얼굴에 어른거렸던 엷은 웃음이 사라졌다.

“난 친구들한테 말을 섞진 않았지만 너를 바라보는 내 눈은 다른 친구들과는 달랐거든. 넌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말이야.”

내가 웃었다. 아무리 자기의 마음세계를 혼자서 색칠만 하고 있으면 뭐하나. 상대가 그 색깔을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더구나 나는 경식이 집을 다녀온 후로 한동안 그의 곁을 맴돌았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경식이를 보고난 뒤 자꾸만 그 친구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랬어도 경식이는 그 어떤 잔잔한 눈길을 나한테 보낸 적이 없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후 나도 경식이를 향한 마음을 포기했다. 경식이를 놔 주는 게 오히려 그 친구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식이는 그냥 혼자가 편한 친구니까. 그런데 경식이가 전혀 의외의 말을 했다.

“어떻게든 내 곁에 얼씬 거리려는 네가 정말 고마웠거든.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이후로도 너 같은 친구는 내게 없었어. 너 그거 알아? 원래 난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가게 될 뻔 했었어. 하지만 내 부탁으로 어머니가 중학교 졸업 전에 담임선생한테 가서 사정한 거야. 그래서 너랑 같은 학교를 가게 된 거지.”

내가 경식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너무도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랬으면서도 어째서 나한테까지 거리를 두었을까. 경식이도 마주보며 웃었다. 그래도 경식이 웃음은 엷은 미소정도 이상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웃음의 진짜 의미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저 앞자리에 앉은 세 사람과, 지난 번 고향에서 내 뒤를 따라왔던 벤츠마이바흐의 정체 말이다. 그들은 경식이 경호원이었던 것이다.


5

모로코 출장을 다녀온 6개월 후에 내가 일을 맡긴 모로코 변호사가 결과를 알려왔다.

“재판에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판사는 그의 병에 대한 원인을 전에 일했던 환경에서 비롯된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당연한 판단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모로코 공장의 소요는 그렇게 잠재웠지만, 그렇더라도 병을 얻은 사람에겐 적절한 보상을 해주었다. 공장의 다른 모로코 기술자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일은 깨끗하게 해결 되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얼마 후 모로코 언론에서 우리 일을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한국인 사장이 산업재해로 중병을 얻은 모로코인 노동자들을 외면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졸지에 그 나라에 공장을 세워 모로코 노동자들을 지독하게 착취한 악덕기업주로 몰렸다. 뿐만 아니라 모로코인들에게 한국 이미지가 실추되어가는 것을 우리 언론도 두고 보지 않았다. 양국 언론이 한 목소리로 나를 두들겨댔다. 평생에 기자라는 사람들을 직접 만난 적도 없는 나는 어느 사이 기자들에게 휩싸여 사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들은 내게 많은 질문을 퍼부었고, 그들이 묻는 말은 무엇 하나 피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했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는 그들에게 모로코 법원의 판결문을 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사 내용은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 바람에 어린아이들까지 모로코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 있으며, 그 유명한 카사블랑카라는 도시가 모로코에 있는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이 일은 양국의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 될 조짐이 보였다. 나는 처음부터 복잡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내가 결정할 일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모로코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해 그들이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로코 공장의 폐쇄를 의미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1년쯤 후에 모로코 공장은 기어이 문을 닫고 말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건 그 후였다. 나한테 투자를 해 준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언론에서 나를 생매장 할 듯이 몰아붙일 때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나는 그를 소개해주었던 팀장을 만나 사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 사람 잘 모르는 사람이야.”

어디 적당한 투자처를 찾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아내가 명함을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 명함을 아내 친구가 주더래. 혹시 내가 제대로 사업할 생각이 있으면 좋은 투자자가 될 사람이라면서 말이야. 하지만 알다시피 난 사업 같은 거 생각 안하는 사람이잖아. 마침 자네가 사업을 구상한다기에 연결시켜 준 거지.”

의문을 안은 채 몇 개월이 더 흘렀지만 그는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어도 그건 평범한 원점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이 실패한 첫 사업의 경험에서 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운 빠진 채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오기를 되살려 재기를 노리느냐의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도 기운 빠진 채 살아가는 건 질색이었다. 그렇다면 사업을 재기하는 길이 내가 갈 유일한 길인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거래처 상인들이라는 현실적 자산이 아직 내겐 남아있었다. 그렇게 사업을 다시 일으키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에 경식이가 연락을 해왔다.

“너..... 나한테 좀..... 와.”

경식이 목소리가 힘없이 떨렸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경식이는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와. 비행기를.... 보낼 테니까......내일..... 당장.”

나는 놀랐다. 미약한 목소리로 내가 오기를 재촉하는 경식이는 지금 아픈 것 같았다. 일 년 여 전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피로감을 보였던 경식이가 생각났다. 그 때 경식이는 뭐든 조금 먹었고, 그나마 음식이라고는 죽 요리가 전부였다. 그는 나와 함께 드넓은 아시아 대륙을 건너갈 때부터 이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인가. 현실세상은 어쩌면 꿈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경식이는 나를 따라 같은 고등학교를 지원했다면서도 이후 지속적으로 소원하게 지낸 것은 물론,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지난 10년간 나와 전혀 교류가 없었다. 그러던 경식이가 지난 해 갑자기 나타나 자기 소유의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이룬 자신의 성과를 담담하게 말했다. 그 땐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은자처럼 굴던 경식이를 바라보며 나는 현실 속에 비친 지독한 비현실성에 놀랐었다. 이젠 다 스러져가는 그 목소리가 또 다시 그 비현실적인 까마득한 동굴 속으로 나를 처박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경식이의 성과가 어떤 규모인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몰타라는 그 먼 곳에서 하늘거리는 그의 병 든 목소리 때문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몰타라는 그 먼 곳에서 하늘거리는 그의 병 든 목소리 때문이었다.


6

비행기에서 내리니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지안니 데 산치스라고 하는 알렉스 강의 고문변호사입니다. 이탈리아인이죠.”

그의 가슴에 왕관 밑의 검은색 망토로 휘장을 친 붉은 바탕의 흰 십자가 방패 문양의 배지가 눈에 띠었다. 성 요한기사단, 이름 하여 몰타기사단의 문장이었다. 그 배지에 눈이 가 있는 내게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기사단원이기도 합니다. 몰타기사단을 아십니까?”

“십자군 전쟁 때 구호기사단으로 출발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구한 역사가 말해주듯, 수많은 시련 속에서 아직도 건재 하는 기사단이죠. 그렇기에 우리 기사단원들은 상당한 명예감을 갖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는 나를 안내해 소형비행기 격납고를 나와 활주로의 구석 끝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중형헬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걸 타고 몰타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몰타 섬과 고조 섬 사이의 작은 섬인 코미노 섬으로 갔다. 주민이 겨우 세 명 밖에 없다는 그 섬 한 쪽에 이탈리아산 흰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경식이 집은 둘레가 바위절벽으로 둘러 싼 요새나 다름없었다. 경식이가 어느 새 이런 집을 지었나 생각했지만, 어느 부호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거의 두 배 값으로 구입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경식이는 그 건물 깊숙이 자리한 침실에 누워있었다. 그 침실엔 중환자를 위한 완벽한 시설이 갖추어졌고, 의사와 간호사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몰타기사단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7

경식이는 의료기기에 의지해 호흡을 버티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호흡기 속에서 작게 들썩이는 입으로 어렵게 말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일찍 가셨는지.....이유를....이제야...... 알았어. 나도......그 분.....그 분처럼.....”

경식이는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이라는 췌장암 진단을 작년에 받았다고 했다. 그것은 아버지를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몰고 간 병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내가 몰타로 왔을 때....너에 대해....알아봤어. 네가.....세상을....어떤....방식으로.....살고 있는지.”

마침 내가 회사를 퇴사하려던 시점이었다.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팀장과 회사동료들로부터 나에 대한 평판을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름대로...인심은......안 잃었더라고.....너.”

경식이는 교묘한 방법으로 내 사업자금을 대주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토록 쉽게 사업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내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어도 어째서 투자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는지 이제야 그 수수께끼가 풀렸을 뿐이었다.

“병을...... 처음...... 알게 된 작년에...... 먼저.....먼저.....너를 찾아본 거야. 나를.....알리고....싶었어......내가....어떻게.......살고......있는지. 그래야.......마지막....순간에.....나를.....봐도.....놀라지....않을 거.....아냐.”

경식이는 병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나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자기의 이 사업을 누군가 지속해주기를 바랬고, 경식이가 원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경식이는 변호사를 불러 서류를 가져오게 했고, 나더러 거기 사인하라고 말했다.

“내 모든...... 사업권과.......재산을.....위임......하는.....서류야.”

차후에 모든 일은 변호사와 상의하면 된다고 경식이는 말했다. 경식이는 몰타에 오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몰타기사단에 대한 거액의 기부도 그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자기사업을 도와줄 나름의 군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경식이는 스스로 만든 알고리즘 체계와 그 설명, 그리고 자기가 벌이고 있는 투자사업들 등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는 컴퓨터를 가리키며, 그 키워드가 적힌 이색적인 재질로 만든 작은 수첩을 건넸다. 나는 친구에게 받은 그 수첩을 보면서 또 다시 현실이 부정 되는 새로운 세계를 실감했다. 

“어머니.......우리 어머니를......부탁해.”

경식이 어머니는 시골의 그 집에 여전히 산다고 했다. 아들이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는 줄 알고 있는 친구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운 건 이제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남들처럼 적당히 살면서 삶을 즐길 수 없게 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식이의 고통스러운 마지막 모습 앞에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없었다. 

경식이는 결국 85억 7천만 달러를 남기고 끝내 눈을 감았다. 32년 6개월 17일을 살고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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