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준 Jun 24. 2024

청한 산 위로 저 부는 바람

광양 백운산(1218m) 포스코연수원~노랭이봉~정상~신선대~한재~논실마을

   

산에는 절대 갈 수 없다고 빼는 후배를 꼬드기고 으르고 달랜 끝에 결국 배낭을 싸게 했다. 녀석에게까지 연락이 닿게 된 건 그저 평일에 산에 같이 갈만한 사람들에게 핸드폰에 기억된 번호대로 무턱대고 전화를 하다 그야말로 ‘딱 걸린’ 것이었는데, 그가 산을 떠나 나타나지 않은 건 2년쯤이나 된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 한, 산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종합해 보니 ‘염치’때문이었다. 

순천만이 코앞인 바닷가 촌에서 나름 ‘신동’ 소리를 들으며 상경해 온 녀석은 몇 해 전까지 서울의 좋은 대학을 다니며 산악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히말라야의 고산 거벽을 몇 번 다녀오기도 하며 그야말로 쓸 만한 젊은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이 바닥에서 선배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던 재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곤 두문불출을 하게 된 것이었다. “공부하러 간다”는 말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기에 그저 취업준비로 바쁜 여느 대학생들처럼 책과 씨름하고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녀석은 지금 순천만 갯벌에서 새벽마다 꼬막배에 오르고, 썰물 때에는 ‘널’을 탄다고 했다. 책을 펴면 인수봉이 떠올랐는지 학교는 학사경고 몇 번 끝에 제적당한 지 꽤 됐고, 이제는 부모를 볼 낯도, 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볼 낯도 없어 그저 뻐근하게 온몸을 부대끼는 것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녀석은 매일 바다를 향해 통음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에게 산에 가자고 꼬드기고 다그쳤던 날들, 바위에서 얼음에서 그것이 마냥 멋진 신세계인양 떠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결국 바닷가 빨랫줄에 아무렇게나 걸린 뻘투성이 ‘가빠’로 남았구나. 죄라면 산을 오른 것뿐이었을 터인데, 녀석은 세상의 모든 정규 탐방로에서 벗어나 조금 샛길을 찾아 나섰을 뿐인데.   


“형님. 마침 꼬막이 들어왔는데 좀 드실랍니까. 산에서 먹게 무침 좀 해놓을랑가요.”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이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도 녀석은 봄바람처럼 은근히 찾아온 산행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한 산이 고고한 삶이 될 순 없는가

며칠 동안 쏟아진 남부지방의 폭우 끝에 이제 비가 개인 지 몇 시간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옅은 황사 속에서도 사뭇 신선했다. 우리는 광양 백운산(1218m)으로 향했다. 그도 나도 처음인 길이었다. 

백운산이란 이름만큼 이 땅에 흔한 것이 없다. 시인 장호는 ‘백운’이라는 산명을 일러 그 수가 단연 한국에서 으뜸갈 것인데,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도 볼 수 없는 경우라며 흰 구름이라는 이름이 산에 가서 붙은 데 대해 풀어냈다. 그는 ‘첩첩 산 주름 안에 갇혀 사는 한국인의 눈에 산 너머로 시원스레 흘러 다니는 흰 구름은 분명히 자유의 표상이었을 것’이라며, ‘(산을 백운이라 부른) 이들은 그 흰 구름처럼 집착에서 벗어나듯 속세간 이해타산에서 떠나 무심으로 이르는 길을 생명의 이상으로 살았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백운산이란 이름은 한국인의 고매하고도 청결한 성품으로서 모든 산에 대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운이라, 어찌 이보다 더 고고할 수 있으랴. 

그러나 마치 저 숲에 참나무가 무성하다고 하나 정작 참나무란 나무는 한그루도 없다는 말처럼, 산정에 산악인의 지표와 삶이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그 ‘백운’과도 같이 흔하디 흔하면서도 실제로 손에 잡히진 않는 무엇이란 결국 장삼이사들의 삶에서 흰 구름이 아닐까.

 

녀석은 순천에서 백운산으로 이동하는 사이 줄곧 뻘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풀어놨다. 아마도 대화가 목말랐을 테지. 그는 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참꼬막과 새꼬막을 구별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지난겨울 몰아친 한파로 얕은 뻘에서만 자라는 참꼬막은 대부분 얼어 죽었으며, 꼬막을 키우는 게 곧 도박과도 같은 것이라고 녀석은 말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진한 남도 사투리가 녀석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올 때마다 짭조름한 뻘내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난 추임새를 넣듯 그의 말을 받아갔다.  

우리는 포스코연수원을 출발해 능선길을 따라 억불봉이 바라보이는 능선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좁은 여관방에서의 한잔보다는 여러 모로 그게 훨씬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법 묵직한 배낭엔 소주 두 병을 끼워 넣었다. 그거면 충분할 터였다.  

어스름이 짙어진다 싶을 무렵 노랭이봉에 닿았다. 바람은 시원하기도 제법 거칠기도 했다. 낮게 깔린 나무와 풀들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부옇게 저물어가는 산마루로 육중하게 꿈틀거리는 능선이 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다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녀석이 물을 뜨러 간 동안 바람을 헤집고 겨우 플라이를 쳐놓았지만 그가 돌아와 드디어 락앤락 통에 담긴 꼬막무침을 까 불과 몇 잔을 주고받는 사이 뺨을 때리듯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렇게나 쓰러져버린 병을 주워왔을 땐 불과 몇 방울의 소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하늘의 별을 세다 겨우 눈을 감아도 이내 나뭇가지를 흔드는 굉음에 정신만 더 또렷해져 갔다.        


바람은 늘 불어대고 억새는 흔들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대부분의 산에서 맞는 아침이 그렇듯 태양은 고요하게 떠올랐다. 우리의 앞으론 대가 푸른 억새 능선이 줄곧 펼쳐져 있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우리는 쉬지도 않고 걸었다. 별 말이 없었고, 말이 나온다면 곧 뻘 이야기로 모아졌다. 산에 안 간지 하도 오래돼 잘 걸을랑가 모르겠다던 녀석은 늘 저만치 앞서 갔고, 바위턱에 올라 뒤를 돌아보며 기다리다간 또 이내 걸음을 옮겼다. 하나 우리는 무엇에 쫓기듯 한 것은 아니었다. 걷는 게 곧 휴식이었고, 그런 침묵이 곧 말보다도 큰 대화라고 난 생각했다.  


정상으로의 길은 바위턱을 따라 나 있었다. 굵은 동아줄이 묶여 있었지만 녀석은 오랜만에 까슬한 바위를 딛고 거길 올라갔다. 뒤돌아 본 능선은 이제 막 봄이 찾아오는 양 싶었다. 푸르지도, 부옇지도 않은 빛깔들이 그래 거시기하게, 여느 평범한 세상의 모든 백운산과 같은 모습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선대를 돌아 이제 한재까지는 줄곧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또아리봉까지 가볼까나, 아니면 참샘이재나 도솔봉쯤까지도 가서 뻐근하게 하루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여느 산꾼들처럼 우리도 걸어볼까 했던 생각은 한재에 다다라 나타난 계곡 앞에 모두 흩어져버렸다. 내려가자. 그리고 첫 번째 나타나는 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시자. 술기운으로 나머지 동곡천을 걸어가던지 주인장에게 말을 잘하면 트럭을 얻어 탈 수도 있을 게야.


집에서 담갔다는 막걸리는 그야말로 걸쭉해 입에서 착착 감겼다. 그저 밥을 달라 했을 뿐인데 반찬은 꼬막이 나왔다. 하나 술 한 동이를 비우고 우린 살살 눈치를 보며 은근한 요행을 바랐지만 돌아온 대답은 버스시간뿐이었다. 결국 요 앞에 오 분만 걸어 나가면 있다는 정거장을 찾아 십 분여를 남겨두고 아쉬운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나, 정거장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았다. 지쳐 머리를 배꼼이 내밀고서야 눈앞에서 유턴해 저만치 멀어져 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보았을 뿐이었다. 사는 게 늘 그렇지. 걱정 마라 버스는 또 온다. 한 두어 시간쯤 후에라도. 저 부는 바람에 색이 있으랴. 녀석과 나는 또 다른 가게를 찾아 조금은 호기롭게 또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information

광양 백운산(1218m)은 호남정맥의 한 줄기이지만, 그보단 지리산에서 떨어져 나온 한 부분인양 예의 부드러운 능선이 펼쳐지는 산이다. 하지만 지리산에 비해 산길에 인공구조물들이 없고, 사람이 많다 하지만 또 그보다는 아니라서 보다 상쾌하고 부담 없는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백운산 능선은 남쪽을 품은 듯 말발굽형으로 펼쳐져 있는데, 때문에 편리하게 원점회귀산행을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길게 잡아 1박 2일까지 다양한 산행을 계획할 수 있다. 취재팀이 산행한 포스코연수원~노랭이봉~정상을 거쳐 한재로 내려오는 코스는 길게 잡아 6시간 거리로 하루 산행으로 적당하며, 주변 조망도 시원한 편이다.       


산길 

노랭이봉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곳을 기점으로 할 수 있다. 동동마을과 포스코연수원이 그곳인데, 그중 가장 짧은 길은 연수원에서 뒤로 난 계곡길을 따라 곧장 노랭이재로 오르는 것이다. 조금 더 돌아가자면 연수원 헬기장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면 된다. 이곳이 계곡보단 조망이 한결 좋기 때문에 능선산행으로는 제격이다. 30여 분을 오르면 나무 계단이 나오고 곧 발 아래로 동곡천 계곡과 함께 동곡리 일대와 멀리 백운산~신선대~또아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계속 능선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노랭이봉 정상이 나오고 마주 보이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노랭이재, 다시 30여분을 올라가면 억불봉과 갈라지는 삼거리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는 널찍한 나무 데크 두 개가 설치돼 있어 비박하기에 그만이다. 또 억불봉 쪽으로 10여분을 가면 샘이 있어 물을 구할 수도 있다.

헬기장에서 백운산까지는 대부분 오르내리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능선이 펼쳐진다. 특히 995봉까지는 억새밭이라 나무가 거의 없어 사방이 트여 보인다. 여름이라도 고도가 높고 바람이 불어 그다지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구간이다. 헬기장에서 백운산까지는 빨리 걸으면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헬기장 두 곳을 지나면 곧 정상이 바로 앞에 솟아있는데, 정상부 약 50m는 바위 구간으로 안전 로프가 설치돼 있지만 초보자라면 주의해야 하는 곳이다. 

백운산 정상은 좁은 바위봉우리이기 때문에 여러 명이 머물 수 없다. 조금 내려온 곳에 넓은 공터가 있으니 이곳에서 쉬는 게 낫다. 역시 바위봉우리인 신선대는 오르지 않고 우회하도록 등산로가 나 있고, 이곳부터는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조망은 가리지만 나무그늘이 뿜어내는 신선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신선대에서 능선과 계곡을 따라 곧장 진틀마을로 하산하는 길도 있으며, 계속 호남정맥 마루금인 주능선을 따라가면 한재에 닿게 된다. 한재에서 산행을 더 이어나가 또아리봉과 도솔봉을 거쳐 원점회귀 하는 코스는 최소한 10시간 이상은 잡아야 할 정도로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2011.6



이전 10화 섧도록 넘는 길에 하얀 술 부어주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