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지나오며

:헤븐 조선까지는 못 가더라도.

by 하누


이 책은 2015년 한국의 청년 사회를 분석한다. 시작은 끝없는 자기 계발의 굴레 속에서 ‘노오력’을 해도 취업난에 시달리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삶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중반에는 근대화 시기 한국에서 ‘개천에 서 용 난다’ 이데올로기는 점점 사라지고 ‘수저 계급론’과 ‘헬조선 담론’이 어디서 등장했는지 분석한다. 더해서, 헬조선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 대안으로 ‘탈조선’을 한 청년들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끝으로는 헬조선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청년들의 삶의 공간, 시간 자원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책 초반에 나오는 학력주의와 자기 계발의 신화 부분, 헬조선 담론의 등장과 탈조선이라는 선택지 등이었다. 사실상 책에 나온 대부분의 내용이 공감 가는 부분들이었고 인상 깊은 부분들이었다.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들,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들은 필자의 삶에서 늘 함께 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 하는 편에 속하진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 필자의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는 ‘학벌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계급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서울에서 중· 하위 소득 계층의 아이들이 주로 진학했던 일반계고의 학생이었던 필자는 교사들에게 학벌 만능주의를 학습했다. 그중에는 한국 교육이나 사회, 학벌주의에 비판적인 소수의 교사들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교사들은 SKY를 몇 명 진학시키고 인 서울은 몇 명이 진학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문과에서 나름 성적이 좋았던 필자에게 ‘호의적이었던’ 영어 선생님 중 한 분이 공부를 안 하는 친구들에게 미래에 대한 폭언과 지금 보면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했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 시대인 줄 아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삼성 같은 멋진 대기업 가는 거야. 그러니까 공부해. 공부 안 하면 후회한다.” 그때는 그게 정답인 줄 믿고 있었다.



그렇게 성실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계층 상승의 하이패스에 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19살의 필자는 첫 수능을 망치고 입시에 ‘실패’한다. 무기 계약직으로 20년 동안 근무하셨던 아버지의 경제력은 연공서열의 혜택을 받는 정규직과는 달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금을 꼈던 부동산 문제는 아파트 전셋집이 단칸방에 가까운 월세 집이 되는 기적(?)을 행했다. 필자는 야간 ‘편돌이’를 하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독학 재수를 해야 했는데 인생 최대의 암흑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때다. 당시엔 돈이 급했다. 상대적으로 편한 ‘편의점 알바’ 이기에 최저임금을 안 받아도 일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감사했었다. 밤낮이 바뀐 채로 독학재수를 하면서 재수학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친구들을 보았다. 부러움과 동시의 의문을 느꼈다. “입시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고 한들 정말 계층 상승이 가능할까?” “아빠는 내가 봐온 누구보다도 성실한 사람인데 왜 경제적으로는 더 힘들어졌지?” 등의 생각들을. 모의고사 성적을 보았을 때 서울 중위권까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했고 더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필자에겐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SKY를 갔다고 책을 내기도 하지만 그건 수많은 사례 중 극소수의 삶이 포장된 것이고 필자는 그런 사람들과 달리 평범했다.



사회학과를 지망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사회 구조가 무엇인지 자본주의는 무엇인지, 왜 누군가에게는 빈곤의 가속이, 누군가에게는 풍요의 지속이 되는지 궁금했다. 운이 좋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입시 결과를 얻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난 4월, 신입생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정치·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났다. 예상했던 대학 생활과 달리 학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염세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 재수까지 해가며 원해서 진학한 학과였는데 취업하기 어려운 과라는 평가는 늘 따라다녔고 비슷한 상황에 있던 문과대학 전공들은 통폐합이 되었다. 더불어 경영학 복수전공은 필수라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15년과 16년 새내기들이 들어올 때가 되자 인터넷에서는 ‘헬조선’ 담론이 장난처럼 시작해서 진지한 논쟁으로 번졌다. 뒤따라서 ‘수저 계급론’이 나오고 필자 또한 그 이론, 담론들이 묘하게 끌렸다.



책이 다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의 삶에 등장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입학 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데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다. 죄 없는 유족들이 ‘돈 밝히는 사람’들로 낙인찍혔고 ‘일베’ 유저들이 광화문 거리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혐오’는 이제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되어 버려서 소수 자성을 낙인찍거나 성별, 계급과, 학력에 따라 서로를 구별 짓도록 만들었다. 대학교 내의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지금까지도 잊을 만하면 혐오 표현들이 게시글로 올라온다. 헬조선 담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들은 헬조선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당시 필자가 활동했던 정치단체의 학기 초 정치포럼 타이틀이 ‘헬조선에서 살아남기’였을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의 기억들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갔다.


노오력의 배신

희망보단 염세적인 생각을 많이 했던 그땐 세상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 진지하게 유학을 가거나 외국계 기업의 취업을 준비하는 탈조선을 고민했었다. 물론 그것도 사회 경제적인 안전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시도가 가능해 보여서 행동에는 못 옮겼다. 꿈도 희망도 안 보이는 헬조선의 대안으로 탈조선을 다룬 파트에서 ‘탈조선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에 공감이 갔다. 경제·사회적 조건 때문에 탈조선을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도 얼마 없을뿐더러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나 ‘불만이 있으니까 나간다!’는 결국 사회적으로는 같은 침묵의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을 필자는 굉장히 늦게 깨달았다. 몇 년 전까지 지인들에게 사회 이야기를 나누면서 탈조선이 답이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녔고 그게 정말 청년들의 현실적·합리적 행위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모순점에 회의를 많이 느꼈을 때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다.



더해서, 작년 논문 쓰기 수업 때 필자의 연구 주제는 ‘진짜 청년 찾기’였다. 기성세대와 주류 언론들이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진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소외된 계층의 청년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고립되어오지 않았는지 등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했었다. 질적 연구방법으로 인터뷰를 해가며 작성했는데 계급적으로 상이한 배경을 가졌으나 학벌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두 명의 청년을 계급적 관점으로 비교 연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생각이 굉장히 비슷한 지점도 있었고 상이한 지점들도 있었다. 놀라운 점은 책의 서문 부분과 비슷하게 한국 청년들이 조용하고 무기력한 존재들이 아니었고 필자가 알고 지내 왔던 지인이었음에도 예상보다 냉정한 현실 분석과 파악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책에서 청년들의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덜 나온 것이 조금은 아쉽다. 작년에 읽은 인상 깊은 청년 관련 책은 ‘청년 현재사: 당신이 말하는 청년은 ’ 우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솔직하게 현 사회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현재 청년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집필했기도 했고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분석보다는 진짜 삶의 순간들이 느껴져서 좋았다. 반면, 이 책은 그 보다는 지식인 학력 계층이 청년을 바라보고 사회학적이고 문화인류학적인 요소들을 녹여내어 분석한 느낌이라서 조금은 관조적인(?)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청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글이나 책을 볼 때 저자들을 꼭 보는 편이다. 필자의 반골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청년’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가지고 사회·경제적 자본을 가진 지식인들이 그럴듯하게 책을 내서 ‘책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책들이 실제 청년들에게 공감과 호응을 얻는 분석을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현실은 전혀 공감가지 않는 내용을 말하는 책이 훨씬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래도 다양한 저자들이, 특히 청년들과 가까이에서 활동하고 글을 쓰는 연구자들이 쓴 것 같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비관적인 점들도 가감 없이 드러냈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다. 책의 끝부분의 대안 부분에서는 기본소득과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호혜적인 세상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분명한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실험적인 것들이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경쟁’과 ‘개인의 책임’이 가장 ‘한국의 합리성(?)’을 대표하는 단어가 된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과거보다 다른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시작은 어수선하고 갈등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긴 시민 사회 경험들의 축적이 청년뿐만 아니라 헬 조선에서 ‘헬’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해 나가는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20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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