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요즘 화가 많다. 원래도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필자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화를 잘 쌓아두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엄청 잘 웃는다. 늘 미소가 뗘진 표정이 기본값이다. 오죽하면 훈련소에서 웃음기를 머금었다고 조교한테 혼난 적도 있다. 자대 배치를 받은 후에도 7개월 선임이 “너는 항상 웃고 있네 뭐가 그렇게 웃겨?”라며 혼낸 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웃는 표정은 이미지 사진을 찍을 때나 단체사진을 찍을 때 이제 너무 익숙하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언제나 밝은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익숙함의 시작은 자본주의 미소였다. 20살부터 서비스업 종사직에 계속 종사해왔던 필자는 손님 응대라는 명목 하에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미소를 습득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그 시작이었고 스튜디오 촬영 보조, 편의점, 프랜차이즈 식당 등 밝은 표정 짓기는 이렇게 체득되어갔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점이 꽤 생겼다. 늘 웃는 인상이 되어 있었고 입꼬리도 살짝 w모양이 되었다. (이 점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 지금 애인과 더불어 전 애인들 모두 다 잘생기고 못 생기고를 떠나 ‘상견례 프리패스 상’이라고 했었다. 대부분이 진심에서 나온 미소가 아닌 인위적인 느낌의 미소라는 것이 맘이 아프지만.
갑자기 왜 미소 이야기를 했냐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은 한국 사회에서는 잘 통용되지 않는 것 같아서다. 경비원의 수기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콜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현재까지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공기업에 다니던 저자가 퇴직 후에 여러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쓴 생생한 수기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로 버스 배차요원부터 아파트 경비원, 고층 빌딩 경비원을 겸업했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노인이 되었음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경제적 여건과 살인적인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문체 자체는 수기 형식이라 쉽게 읽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이다. 단순 에세이처럼 보였으나 그 안에는 노후 문제, 비정규직, 공동체 내의 권위주의 등 여러 가지 병폐들이 담겨 있다. 특히 소수의 ‘웃는 얼굴에 침 뱉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류애를 상실시키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아파트를 떠나서 다세대 주택에 산 지 10여 년이 넘었고 그렇기에 청소년기 때의 경비원에 대한 기억뿐이 없다. 등·하교할 때 인사하고 지냈던 기억 외엔 잘 없는 것 같다.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옆에 있던 경비원 초소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있다. 아마 화장실이 옆에 바로 붙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10년도 더 지났는데 2020년의 경비원들의 노동환경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초소는 물론이고 마음 것 쉬거나 씻을 수도 없다. 가장 화가 났던 대목은 경비원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이다. 저자는 열에 일곱 정도는 관심이 없고 한 명 정도는 호의적이고 나머지 둘 정도가 그렇게 괴롭힌다고 했다. 경비원들끼리 서로 알고 있는 ‘갑질’ 전문 주민들의 존재다. 경비원이 쉬고 있는 걸 보기 싫어서 관리 소장에게 일거수일투족을 제보하고 반말은 기본이며 무시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사람들.
최근에 일어난 아파트 경비원분의 안타까운 죽음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 때문이었다. 그들은 경비원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분제가 없어진 지 몇 세기가 지났는데 그들은 아파트에 노예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과 소수 주민들의 갑질에도 경비원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다. 비정규직인 그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다. 대부분은 노인들이고 경제적 취약계층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나이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OECD 노인 빈곤율 1위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들은 구조적으로 인간다움을 보장받기 어렵다. 저자가 쓴 경비원 고용에 대한 취업 규칙에는 비인간적인 조항들이 빼곡했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들여다보면 참 영악한 것들이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해고할 수 있는 조항들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책임을 묻는 소재들에 있어서 경비원이 그 책임을 다 떠맡아야 했다. 관리소장은 입주민 공동체 사이에 중간 관리자 역할이지만 그 역시 주민들의 입김 하에서는 경비원들을 악조건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경비원들의 악조건 개선은 제도적인 보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표를 행사하는 입주민들은 정치인들의 당선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있었고 지역 정치인들은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 정책으로는 인기를 끌지 못한다. 한국 정치인들의 의제 중 늘 스테디셀러는 집값 상승과 같은 것이지 ‘경비원들의 처우개선’ 등과 같은 의제가 아니었다. 또한, 대다수의 아파트 입주민들은 그 정책에 반대한다기보다는 거의 관심이 없다. 게다가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경비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필자는 제도적 정치적 과정에서 경비원들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노인들이 주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영역에 대한 관심과 개선은 필수다. 필자는 제도적 관점보다도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된다고 본다. 서비스직의 성격을 가진 노동 영역의 노동자들이 왜 ‘갑질’의 피해자가 되는지. 서비스직이 가진 ‘친절한 미소, 응대’가 업무 매뉴얼에 적혀있을 정도로 필수적일 필요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주거 공동체라는 소규모 공동체의 상하관계 문제와 같은 미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필자가 아파트 공동체에 거주하지 않아서 경비원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비겁한 변명일 것이다. 필자의 집 앞에도 폐지를 모으며 필자에게도 버릴 것 있으면 갖다 달라는 이웃 할머니가 계신다. 그러니 필자도 노인과 노동 세계, 노인들의 노후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사람 1이었던 것이다. 노인 빈곤율, 자살률이 왜 높은지 기사를 굉장히 많이 접했음에도, 지워진 것에 대해 쓰자고 했으면서도, 실천은 잘하지 못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고 속으로 또 되뇌고 있다.
2020. 0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