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Surry hills 달라도 아름다운 무지개 빛 사랑, 서리힐
40이 되니 아저씨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몸의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 30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쯤 되면 소주 한 잔에 어울리는 인생의 이야깃거리가 하나씩 있다. 사업했다 실패를 했을 수도, 사랑을 했다가 상처를 받았을 수도, 몸이 심하게 아팠었을 수도, 어쩜 벌써 명예퇴직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는 항상 유혹받는 인생의 중반이다. 이제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에서 아픔을 통해 성숙해졌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관심 있게 돌아보기도 하고 드라마의 이야기에 눈물이 나는 시기이다.
나도 40대이다. 40이 되어서야 통기타 소리가 좋은지 알게 되었고, 커피와 와인의 향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림을 보며 맘의 용기와 감동을 받기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소중한지 더욱 깨닫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절에 태어나서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격하게 공감하고 김광석을 추억하는 동시대를 살았던 40대에게 시드니의 가을로 안내한다.
오늘은 가을에 너무 잘 어울리는 동네 서리힐(Surry Hills)로 가보자. 센트럴역(Central Station)에서 차이나타운의 반대방향으로 나와서 Elizabeth st을 따라가지 말고 코너에 있는 울워쓰(Woolworth) 슈퍼마켓을 끼고 Foveaux Street를 따라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이 거리도 10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노란 잎들이 가을 햇살을 머금고 있어서 거리를 황금빛으로 만든다. 이 근처에 패션, 디자인, 마케팅 관련 회사가 많은데 동네 직장인들처럼 그 틈새에 줄을 서서 커피 테이크 아웃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서 천천히 올라가 보자.
오르막길에 있는 건물들은 100여 년 전 빅토리안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집권하던 시대(1837~1901년)에 유행하던 양식이라 불려진 이름인데 복잡한 런던의 도심에 촘촘히 많은 집들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입구는 좁고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G층은 부엌, 응접실이고 1층은 테라스, 침실, 방들이 있는 2층짜리 집이다. 예전에는 정부 공공주택으로 홈리스들에게 제공하기도 했지만 지금 구매하려고 하면 2.5M 이상은 줘야 된다. 환율 800원으로 생각해도 20억 이상 되는 집들이다.
오르막이 끝나갈 무렵 크라운 스트리트(Crown st)를 만날 것이다. 여기가 바로 주류가 아닌 성소수자도, 아웃사이더도, 예술가들도 자기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고 함께 어루어져 살아가고 있는 서리힐(Surry Hill)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시계탑이 보일 테고 모두가 좋아하는 클락 호텔(clock hotel)이다. 시계가 고가이던 시절에는 빌딩의 높은 곳에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시계가 있었다. 배터리 넣는 시계야 동네 문방구에도 팔만큼 저렴해진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 전에 이 호텔이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저 시계가 몇 바퀴나 돌았을까? 그래서인지 호텔 안에는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멈춰버린 시계들도 많이 걸려있다. 넓은 테라스와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백야드도 있다. 점심에는 버거, 치킨 돈가스, 피자 같은 메뉴에 생맥주 한잔하며 입가심으로 구름과자를 먹기에 최적인 장소이다.
클락 호텔 건너편에 공공도서관(Library)도 있는데 나도 종종 책 보고 싶거나 브런치에 이 글을 쓸 때, 골목에는 2P(2시간 무료) 주차할 곳도 많고 해서 이 도서관을 자주 온다. 또 도서관 바로 옆에 쿠쿠 칼레이(Cuckoo Callay) 라고 야외나 1층 테라스에서 크라운 스트리트 (Crown Street) 내려다보며 보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쁜 카페도 있다. 토스트가 주메뉴인데 토스트에 김치와 스크램블 그위에 치즈를 올린 게 있다. 우와 호주 로컬 카페에서 김치를 볶아서 올리다니 기분 좋다. 2003년 호주 처음 유학 와서 도시락으로 싸간 김치 냄새 맡고 반 친구들이 “Yak”라고 했는데, “Yak”가 뭔 뜻인지도 몰랐으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yak는 '역겨운' 이란 뜻이라 아주 화를 내야 되는 상황이다. 영어로 욕을 해도 못 알아듣던 시절이 있었다. 하여튼 이제 김치가 발효 음식이고 몸에 좋다는 것을 호주에서는 잘 알고 이렇게 활용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호주에서 맥주, 커피와 더불어 와인을 빠트릴 수 없다.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와인 역사가 짧지만 자동화 시스템과 천혜의 환경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세계 4번째 규모의 큰 와인 수출국이다. 단일 브랜드로 세계 판매량 1위 제이콥 크릭 (Jacob Creek)를 중심으로 Penford, Lindesman, Yellow tale, wolf blass 가 잘 알려진 브랜드이다. 대중화에 한몫을 한 것이 코르크 마개가 아니고 돌려따는 트위스트 형식이고 또 라벨이 아주 이해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80% 이상 품종을 쓰면 멜롯(melrott), 쉬라즈(shiraz)처럼 품종을 표기할 수 있고 매년 기후변화가 적어서 일반인들은 생산연도 (Vintage) 크게 신경을 안 쓰고 편하게 즐긴다.
주요 품종은 쉬라로 NSW의 헌터벨리에 1824년 제임스 버비스가 프랑스 론 지방의 쉬라를 심은 게 그 시작이었고, 현재 전 세계 쉬라 재배 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 쉬라가 호주에서는 쉬라즈(Shiraz)인데 작은 열매에 두꺼운 껍질을 가진 적포도 품종이다. 전형적으로 블랙베리의 검은 과일 풍미와 검은 후추 향을 띠는데 보통 오크 숙성을 진행해서 타닌을 부드럽게 하고 훈연과 향신료의 풍미를 더하게 한다. 호주에서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곳은 에들레이드가 있는 SA, South Australia 그중에서도 바로사 밸리(Barrosa Valley)인데 엘로우테일, 펜 포즈, 하디스, 울프 블라스 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음식에 매칭 되는 와인을 고르려면 음식 색과 매칭을 시키라는 쉬운 팁이 있다. 식전 음료로는 달달한 모스카토(Moscato)로 시작하여, 스테이크 먹을 때는 레드와인, 품종으로는 쉬라즈(Shiraz), 멜롯(Merrot), 카보넷 멜롯(Carbonet Merrot)을 마시면 좋고, 하얀 음식 시푸드를 먹을 때는 카보넷 쇼비뇽, 샤도네, 피노 누어 를 마셔보자. 레드와인은 상온에 마시고 화이트 와인은 시원하게 아이스 저그에 넣어서 마시면 제대로 그 풍미를 느낄 수가 있다.
서리 힐에 가장 인기 많은 집이 더 와이너리 (The Winery)이다. 실내에도 자리가 있고 야외 정원이 숲처럼 너무 이쁘게 되어있어서 맑은 날 오면 좋다. 워낙 인기가 많은 집이라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면 너무 시끄럽고 복잡할 수도 있으니 평일날 점심이나 오후에 여유롭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커피에 브런치를 하려면 한국에 있는 호주식 브런치 빌즈(Bills)의 본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바스켓 브라더(Basket Brothrer), 파라마운트 커피(Paramount Coffee Project) 프로젝트도 훌륭하다.
서리힐은 특히 2월에는 마디그라스(Mardi Gras) 축제라 하고 하여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LGBTs)들이 아주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퍼레이드를 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성소주자들뿐만 아니라 소방관, 경찰, 바이크, 간호사,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퍼레이드 대열에 합류한다. 호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다문화(Multi-Culture)와 화합(Harmony)을 상징한다. 특히나 성소수자들, 이민자들, 장애들, 노인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는데, 이 마디그라스는 게이축제가 아니라 소수자들을 존중하고 모든 차별로부터 저항하자는 축제이다.
기독교 국가인 호주에서 2017년 11 월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80%의 높은 투표율에 61.6%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을 하였다. 그들에게 특권을 주자는 것이 차별을 하지 말자는 법이다. 소수의 인권을 보호한다면 다수의 인권은 자연스럽게 보장될 것이다. 무지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빨강과 보라색 어느 색이 올바른 색이고 아름다운 색인가? 틀린 색이 아니고 다른 색인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집단 속에서 무관심과 습관으로 다수의 행포를 부리고 있지 않은지 호주에서 소수 이민자로 살면서 더 느끼게 되었다.
우리 이제 40이다. 남들은 불혹이라 부르지만 쉽게 유혹되는 나이이다. 나쁜 것에 유혹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취미도 한 개씩 있어야 자신을 품격 있게 가꿀 수 있게 된다. 이제 느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제 다른 사람의 인생은 그대로 봐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자. 이 동네에 많이 보이는 무지개처럼 일곱 가지 색깔이 모두 각자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무지개는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