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Strathfield 호주 속에 한국 같은 스트라스필드
처음 가는 도시로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유명한 관광명소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지만 더불어 한국 교민촌이 어디인지도 확인한다. 라면, 김치를 어디서 살 수 있을지 여행하다 피곤한 날은 한식당 가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싶어질 수도 있고 일일 투어나 혹시라도 뭔 일이 생기면 한국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군대를 읊으면 한 다리 건너면 어찌 되었든 연결고리가 생기는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패키지여행 온 손님들도 교민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데 사람 사는 것 별거 있겠나 싶기도 하겠지만 호주에 사는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 얘기해보련다.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 WAP)를 알 텐데 '백호주의'란 호주는 백인의 나라이니 아시안과 원주민들에게는 선거권도 주지 않고 합법적으로 차별을 하는 법이다. 1800년대 중반 호주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되었고, 유럽 사람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금을 위해 호주로 들어오게 되자 저임금의 아시아 노동자들이 백인들의 일자리까지 뺏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계의 이민을 제한하고 나아가 유색 인종의 이민을 제한하며 1901년 백호주의라는 법으로 제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인구가 급감하고 아시아 국가들과 무역을 통한 경제활성화와 인구증가 라라는 이유로 결국 1973년에 법이 폐지되었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하에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30만 명의 군인 -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를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74년부터 전쟁터에서 호주의 건설붐으로 일자리가 많다는 소식을 들은 참전군인 1,000여 명 정도가 관광비자로 호주에 들어온 것이 최초의 한국 이민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1973년에 완공 이후에 도시에는 건설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용접, 타일, 페인팅처럼 비교적 영어는 필요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았다. 호주야 흔히 막일, 건설 노동자들에 대한 시급과 대우가 좋은 나라이다.
물론 관광비자로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관광 비자가 만료되어도 귀국하지 않고 불법 체류하며 노동일을 계속하다가 1976년 존 말콤 프레이저 총리(자유당)가 음지에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일정기간 호주에 체류한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사면령이 을 발표한다. 그래서 불법 체류 신분이던 교민들이 영주권을 받고 합법적으로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되었다.
그래서 1976년 1,450명이던 한인들이 가족들을 데려오기 시작했고 10년 뒤인 1986년에는 9,285명으로 증가하였고, 또 10년 뒤 1997년 IMF로 추웠던 겨울엔 기술을 가진 젊은 엔지니어, 대졸자들을 중심으로 이민이 계속 늘었고 이어서 유학생, 워킹홀리데이 같은 학생들이 이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2020년 현재 호주 전역에 15만 명의 한국 교민이 있는데 그중 10만 명 정도는 시드니에 거주를 하고 있다.
교민들의 직업별로 보면 이민 1세대들은 80년대에는 기술 중심으로 타일, 용접, 페이팅, 청소 용역들이 주로 이루었고 이민 1세대의 자녀들, 즉 2세대들은 호주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대졸자, 유학생들이 많이 오면서 회계사, 간호사, 의사 등 전문직종으로도 다양하게 되었다. 지금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 간호사, IT 등 호주의 부족 직업군에 대해서는 기술이민이라 하여 나이, 경력, 영어 등을 점수화하여 신청할 수도 있고, 사람이 부족한 지방으로 거주하면 가산점을 주는 지방 기술이민정책도 있다. 물론 요즘 호주도 경기가 좋지 않아 내가 영주권, 시민권을 받던 2000년대 초만큼 쉽지는 않다.
이민 1세대들은 캠시(Campsie)에 모여 살기 시작해서 이제는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 이스트우드(Eastwood), 채스우드(Chatswood) 같은 동네에 한인들이 많이 산다. 비단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은 동포들이 모여 살아야 식당, 식품점에 쉽게 갈 수 있고 혹 일자리 구할 때, 친구 만나기도 쉬어 자연스레 모여 살게 된다. 그래서 중국은 버우드(Burwood), 베트남은 뱅크타운(Bankstown), 인도는 파라마타(Parramatta), 이탈리아는 라이카트(Leichardt), 중동은 어번(Auburn)처럼 동네마다 민 족색이 있어서, 월남국수 먹으려면 뱅크타운, 할랄푸드는 어번, 파스타 먹으러는 라이카트 가면 된다. 이제는 백호주의는 잊고 재미있는 다민화국가가 되었다.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는 호주 속의 작은 한국이다. 시티에서도 10Km이니 차로 20분 거리이고, 많은 트레인(Train)이 지나는 역세권이다. 거리에는 코리안 BBQ, 식료품 가게, 미용실, 짜장면, 분식, 여행사, 회계사, 변호사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곳다. 게다가 학군도 좋아서 한국 교민들이 비즈니스도 하고 부동산 가치로도 아주 상승한 지역이어서 부자가 된 교민분들도 많이 살고 있다.
처음 2003년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외국인 친구들 앞에 김치를 꺼내면 신기해하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보다도 낮았다. 그러나 특히 2012년 싸이(Psy)의 강남스타일부터 K-POP뿐만 아니라 삼성, LG, 현대차 같은 한국 제품과 한국의 브팬드파워가 아주 높아졌다. 지금은 한류의 영향과 4대 교역국으로서 한국을 좋아한다. 그래서 호주에 사는 한국인으로 자랑스럽다. 한국 안에서는 한때 헬조선 같은 말을 하며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도 있는데 정말 객관적으로 한국은 아주 역동적이고 안전하고 문화가 있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내다 보면 과장되기는 했지만 "호주를 재미없는 천국,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으로 표현한 심정이 이해가 될 것이다.
옛날엔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만 조심하면 된다’고 하던 얘기가 있었다. 그때는 영어도 잘못하고 현지 정보도 없고 하니 먼지 쌓인 졸업 앨범 펼쳐가면서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의 팔촌까지 찾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현지 물정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사기를 치고 그래도 말통 하는 한국사람들이라고 믿었다가 당했다는 애기들은 아직도 종종 어르신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지금은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에 많은 정보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또 우리의 경제 수준도 시민의식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전을 하였다. 정말 호텔값을 아끼기 위해 어색한 지인 집에 잠을 자던 것처럼 옛날 얘기가 되었다.
외국에 교민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위급한 상황에 처해지면 알게 된다. 최근의 COVID-19 사태에 한국식당 주인들은 일자리가 없어져 더욱더 힘들어진 어린 학생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하고, 교민사회가 두터우니 대한항공, 아시아나 전세기가 떠서 귀국을 돕기도 했다. 또 호주 사회에서 한인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인회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펼치기도 하니 한국 커뮤니티가 있어서 감사하다. 또 한인 교회가 크게 한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종교가 크리스천이어서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서 한국분들을 만나서 정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가 있는 집은 한글교실이나 또래 집단이 만들어지는 이웃이 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나 역시도 2003년 골드코스트에 유학생으로 왔을 때는, 영어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국 사람들을 멀리 했었다. 한 일 년은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인교회를 갔더니 예배 끝나고 같이 비빔밥을 해 먹고 남은 김치, 나물, 반찬을 챙겨주시니 얼마나 맛있고 고맙던지 그때부터 교회 오빠가 되었다. 교인 30명 정도 작은 교회라 주일엔 교회 봉고차를 운전해서 어르신들 픽업도 하고, 찬양 인도할 때 노래도 부르고, 키보드 반주도 하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랑 교회 청소도 하고 멀티플레어가 안될 수가 없다. 또 뭘 해도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에서 교회에 재미를 부치고 성경공부를 하고 서리집사가 되고 주일이면 교회 친구들과 예배하고 집으로 초대해 월남쌈 해 먹고 하다가 다들 외국 나와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 한 곳만이 아니라 리드컴, 올림픽파크, 이스트우드, 시티 곳곳에 한국인들이 레스토랑, 슈퍼도 하고 다양한 직종에 일하면서 살고 있다. 한인교회만도 200여 개가 된다. 그래서 특히 한국음식이 그립고 한국 물건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나의 어릴 적 친구, 가족 그리고 옛 추억이 그리울 뿐이다.
백호주의가 법적으로 폐지된 것은 이미 50년 전이지만, 제도와 인식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2020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의 열기가 전 세계로 퍼질 때 시드니에서 흑인의 숫자보다 많은 원주민, 이민자들이 피켓을 들고 사회의 차별을 고발하였다. 여전히 존재하는 이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용기를 내어 계속 싸우는 중이다. 호주인들이 영어로 큰소리 치면 영어가 한마디도 안 나오고 쏘리 쏘리만 연발하며 내 변명, 자기변호를 못하던 서러움을 한 번씩 겪었을 것 같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 받은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를 더 잘하게 되었으며 설령 내가 잘 모르더라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친구, 교민사회가 형성이 되어있다. 또 우울한 날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수 있는 스트라스필드가 있어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