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Newtown - 시드니에도 신촌이 있다.
나는 한창 연애할 때 홍대역 3번 출구에 내려서 경의선 숲길을 걷고 연남동의 화교들이 하는 양꼬치 집, 연탄 불고기 백반을 파는 기사식당 그리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을 자주 가곤 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같은 크고 화려한 인테리어보다는 가게 사장님의 솜씨와 철학이 묻어나는 듯한 카페를 보면 맘이 포근해지고 나랑 철학이 비슷하다 싶으면 동지애까지 생기게 된다.
뉴타운(Newtown)에 이런 낭만과 힙한 분위기가 많다. 동네 이름도 뉴타운, 홍대나 이화여대가 있는 신촌처럼 시드니대학이 있어서 이름도 격에 맞다. 이 정도 격에는 왕십리라고 불리는 킹스크로스(Kingscross)가 견줄만하다. 여하튼 오늘은 이스탄불의 바자르 같은 터키 가게, 중고서점과 화방들, 레게머리를 땋아주는 아프리카 헤어살롱, 편집샵 그리고 짜투짝 같은 태국 레스토랑, 일본 라멘 가게, 이태리 식당처럼 없는 게 없는 다문화 호주의 축소판 뉴타운이다.
메인도로는 킹 스트리트 (King St)인데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는 말보로 호텔(Marlborough hotel)이 1940년부터 80년간 센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낮에는 치킨 돈가스(Chichen Scnizle)나 수제 버거에 맥주 입가심이 좋고 밤이면 DJ 라이브가 있어서 클럽으로 변신한다. 많은 청춘들의 추억과 사랑이 깃든 곳이다. 과거의 20대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고 그들의 손자들이 현재의 20대가 되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시간이 보이는 곳이다.
말보로 호텔에서 바로 옆에 보이는 캄포스(Campos) 커피는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셜리티(Specialty) 커피이다. 호주 사람들의 커피 부심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해서 커피 르네상스를 만든 이탈리아에 뒤지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이 호주로 이민을 많이 온기도 했고 호주의 선진화된 관광산업 (Tourism), 음식에 대한 전문성(Hospitality)이 폴 바셋(Paul Bassett) 같은 세계적인 바리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커피의 제왕 스타벅스(Starbuck)도 호주에서는 맥을 좀 추린다.
바리스타에게 오늘의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싱글 오리진이라는 다양한 원두를 섞어서 요리한 블랜딩(Blending)이 아닌 하나의 원두 고유한 특성을 맛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는 산미가 좋은 과일향이라고 하며 콜롬비아는 구수한 초콜릿 풍미가 있다. 또 곱게 간(Glinding) 고압의 에스프로서 머신으로 추출할 수도 종이필터에 물을 부어가면서 핸드드립(Hand Drip) 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카페에 가서 주문하는데 부끄럽지는 않은데 "어라, 아메리카노(Americano)가 없다." 2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에 온 미군들은 에스프레소(Espresso)가 너무 써서 항상 물을 태워서 마셨기에 미국인이 먹는 커피라고 해서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호주에서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태웠으니 롱 블랙(Long Black)이라 부른다. 그리고 따뜻한 우유를 넣을 라테(latte), 거품 많은 카푸치노(Cappuchno), 초콜릿 들어간 모카(Mocca)가 있다.
또 하나 플랫화이트 (Flat White) 일단 발음하기가 힘들다. 플랫의 F 발음과 화이트의 "ㅇ"과 "ㅎ" 사이의 공기가 반 들어간 발음이다. 나 호주 처음 왔을 때 플랫화이트 발음을 못해서 라테만 시켜 마셨다. 내가 못한 게 아니라 메뉴 몇 개도 없는데 나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라테이다. 라테와 차이는 플랫화이트는 글라스(glass)가 아니라 (cup)에 주고 거품 없이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우유를 준다.
커피라는 게 참 재미있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이 커피도 원두에 따라 추출방법에 따라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또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구수한 커피 향과 우유를 끓이는 스팀 소리와 경쾌하게 웃으면서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들을 보면 새벽시장의 외국 버전 같다. 친절한 바리스타를 만나면 이름을 물어보고 단골이 되며 항상 웃으며 반길 것이다. 상큼한 과일향이나 부드러운 초코 렛향이 입안에 가득해지면 단돈 $4불로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싶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손에 감싸고 킹 스트리트 따라 편집샵, 디자이너 액세서리샵 또 타투샵 등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벽화들을 보면서 자유로운 공기를 느껴보자. 걷다가 지친다 싶으면 블랙베리 (Blackberry) 카페에 가서 는 수박 케이크로 당을 보충해주자.
어느덧 해가 지가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이 있다. 바로 2대째 내려오는 이탈리안 가정식 백반 느낌의 이탈리안 볼(Italian bowl)이다. 메뉴도 파스타, 피자, 라쟈냐 정도로 간단하다. 내가 연애할 때 잘 썼던 파스타를 색깔별로 구분하는 팁을 공유한다.
다진 소고기, 토마토, 와인을 오랜 시간 푹 삶아 빨간색이 나는 게 볼 로제 (Bolognese) 파스타
바질을 빻아 올리브 오일, 치즈, 잣으로 만든 녹색 나는 페스토(Pesto) 파스타
부드러운 크림소스와 오븐에 바싹 구워진 베이컨을 고명처럼 올린 카보나라(Carbona)는 흰색
마늘, 바질, 올리브 오일로 맛을 낸 투명색에 가까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Aloi E Olio)
이 정도 알면 어느 이탤리 안 레스토랑 가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보일 수 있다. 라자냐(lasagna)는 시루떡처럼 다진 소고기, 토마토소스를 직사각형으로 파스타와 겹겹이 쌓아 만들었고 한국인은 밥심이라면 쌀을 버터에 살짝 뽁은뒤 육수를 붓고 채소, 향신료, 해산물들을 넣고 졸여낸 낚지 볶음밥 같은 리소토 (Rissotto)가 이 집 메뉴의 전부이다.
좀 더 이색적인 것을 원하면 태국 레스토랑 타이 포통(Thai Pothong)으로 가자.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실내가 태국 사원처럼 황금빛으로 블링블링하다. 곧 태국 의상을 입은 직원이 ‘싸와디캅’하며 자리를 안내한다. 태국 현대 예술가의 철과 스테인리스로 만든 로봇들도 볼거리이다. 4년 연속 시드니 최고 태국 레스토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카오샨이 생각나는 즐거운 레스토랑이다. 이미 여자 친구의 얼굴도 부처의 얼굴처럼 온화해질 것이다.
태국요리는 기본적으로 톰얌쿵(Tom Yam Gung)으로 시작한다. 육수에 라임, 레몬그라스, 고수로 향을 입혀 토마토, 버섯에 새우가 들어가면 똠 양 꿍, 닭이면 톰얌 가, 생선은 톰양 푸로 탄생이 된다. 묵은지처럼 톡 쏘는 신맛, 젖 깔 냄새나는 피시소스의 짠맛, 통통한 버섯이나 새우를 씹어 먹으면 사랑이 터진다. 재스민 라이스가 짠맛을 잡아주고 쏨탐이 신맛을 잡아준다. 쏨탐은 그린 파파야를 잘게 채 썰어서 마른 새우, 고추, 땅콩, 라임으로 향을 낸 샐러드이다. 한 개 더 시킨다면, 마스만(Masman) 카레이다. 코코넛 기본으로 해서 향긋하면서도 부드럽고 오랫동안 푹 삶은 소고기 등심 그리고 불맛이 나는데 그 맛이 오뚜기 카레랑은 확실히 다르다.
연애하기 너무 좋은 동네 뉴타운, 신촌에서 이 정도 맛집에 커피 디저트이면 멋진 남자 친구로 충분히 점수를 딸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한 음식, 문화, 종교를 가진 이민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있는 다문화 호주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도 잘 먹고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