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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흰 조미료

by 남동휘

TV의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음식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여러 명이 음식을 만들다가 맛이 없다고 투덜대는 순간, 한 사람이 숨겨놓았던 뭔가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만들던 맛없던 음식이 갑자기 맛있다는 탄성으로 바뀌어 터져 나왔다. 숨겨놓은 것은 라면 수프였다. 출연자 한 사람이 그것을 넣는 순간 맛있는 음식으로 바뀐 것이다. 라면 수프에 들어있는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가 글루탐산나트륨(MSG)이다. 누구나 맛난 맛을 좋아하는데, 그 맛(감칠맛)의 핵심이 글루탐산이다.


서울대 식품공학자 최낙언의 『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을 보자. 예전 종갓집 음식 맛의 비결은 대부분 까다롭게 발효한 장류에서 나왔다. 그리고 모유에 들어있는 아미노산 중에 가장 풍부한 것이 글루탐산으로 우유의 10배나 된다고 한다.

글루탐산이 조미료로 사용된 시기는 최근 100년 남짓이다. 소금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가 5000년 전이니, MSG 사용의 역사는 아주 짧다. 과거에는 감칠맛이 풍부한 맛있는 음식은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장을 담그기도 어렵고 해물이나 육류를 우려내서 육수를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연료가 필요했다. 굶주림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감칠맛은 ‘그림의 떡’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감칠맛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일본 도쿄대학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 덕분이다. 그는 감칠맛을 발견하고 1909년 일본에 아지노모도라는 회사를 세워 감칠맛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는 1956년 대상그룹 임대홍 회장이 일본에서 글루탐산 제조법을 배운 뒤 ‘미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많은 조미료가 있지만 예전에 나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MSG를 미원 또는 아지노모도라며 가게에서 샀던 기억이 있다.


미생물의 효소로 단백질을 분해하여 감칠맛의 재료로 만드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유의 단백질을 분해한 치즈, 콩의 단백질을 분해한 된장과 간장, 생선의 단백질을 분해한 젓갈이나 어간장이 대표적인 감칠맛이다. 예전 종갓집 음식 맛의 비결은 대부분 까다롭게 발효한 장류에서 나왔다.

세상 대부분의 맛있는 요리에서 핵심인 국물 우려내기 과정을 살펴보자. 감칠맛의 재료를 한 가지 쓸 때보다 궁합이 맞는 다른 재료와 같이 쓰면 감칠맛이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 자체로 별로 맛이 없는 버섯이 온갖 국물 요리에 자주 쓰이는 이유이다. 일본에서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같이 쓰고 우리나라는 다시마에 멸치를 넣고, 중국은 닭 뼈와 야채를 사용해서 그 상승효과를 이용해 왔다. 실제 MSG만을 먹어보면 그 자체로는 좋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다른 맛과 어울리면 전체적인 풍미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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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감한 사람은 MSG를 먹으면 몸이 느낀다고 한다. MSG가 화학적 합성품이라 그런 것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1968년 미국의 로버트 호만곽(Robrt Homan Kwok)이라는 의사는 뉴욕에 있는 어느 중국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난 뒤, 목과 등 그리고 팔이 저리고 마비되는 듯하며 갑자기 심장이 뛰고 노곤해지는 증세를 경험했다. 그는 이 증세의 원인으로 간장, 포도주, 지나치게 많은 소금, MSG를 꼽았다.’

이러한 경험담이 기사화되자 중국식당 증후군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요즘에도 식당에서 음식에 사용하는 MSG에 민감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약사인 김수현은 흰 조미료(MSG)의 위해성은 대사 되는 과정 중에 비타민 B6와 미네랄을 소모하고 인체의 기능을 불필요하게 혹사시킨다고 이야기한다.

글루탐산은 주로 사탕무나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당밀로 만든다. 공정에서 회수되어 결정화된 글루탐산은 거의 물에 녹지 않아 맛으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글루탐산이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첨가하여 MSG를 만든다. 순수하게 클루탐산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 원료나 미생물은 천연이라고 할 수 있으나, 나트륨을 첨가하면서 화학적 합성품으로 분류된 것이다. 일명 된장 박사 손찬락의 『우리 몸은 자연을 원한다』에서 조미료에 많이 들어있는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다량 섭취하면 두통이나 무력감, 간경변, 지방간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미각 제국』에서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비싼 중멸치에 장 다시마로 제대로 맛을 낸 육수와 싸구려 대멸치에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으로 맛을 낸 육수를 소비자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싸구려 식자재로 음식을 내도 버티는 것은 다 화학조미료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음식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집에선 음식을 만들 때 MSG 사용하는 것을 못 본 지 오래되었다. 아내가 화학조미료 대신에 천일염, 콩가루, 들깨, 버섯, 미역, 황태, 멸치 등을 음식에 맞게 육수를 내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MSG를 공부하다가 보니 원료가 천연이라 다행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MSG가 우리 몸에서 대사 되려면 필요한 비타민 B6의 소모를 가져온다고 하니 나는 계속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외식을 할 때 먹을 수밖에 없는 MSG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최낙언/『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뿌리와 이파리/2019

황교익/『미각 제국』/따비/2010

손찬락/『우리 몸은 자연을 원한다』/그린홈/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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