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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흰 쌀밥 이야기

by 남동휘

나는 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것은 하얀 쌀밥이었다. 그동안 어떤 밥을 먹어야 할지를 고민도 없이 흰 쌀밥을 먹었다. 사실 막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고 기름기가 흐르는 흰 쌀밥은 반찬 없이 김치 한 가지에 먹어도 맛있다. 그동안 쌀의 품종에 따라 오로지 맛이 있는지를 얼마나 따졌는지 모른다. 일반미의 대표라는 경기미는 통일벼와 비교하여 맛 좋은 흰 쌀밥의 대명사였다.

경기도 이천에 여동생이 살고 있다. 몇 년 전 그녀와 함께 먹었던 경기미 한정식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대부분 식당이 반찬을 자랑거리로 삼는데 경기도 이천의 식당들은 경기미로 지은 흰 쌀밥이 자랑거리다. 요즘은 지자체별로 많은 벼 품종들이 개발되어 각각의 밥맛들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껏 나는 입맛만을 생각해 왔지 흰 쌀밥과 건강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보통 하얗고 부드러운 쌀을 먹기 위해 10번 이상 도정을 거친 십 분도 이상의 쌀을 먹고 있다. 쌀의 영양성분이 들어있는 배아를 섭취하려면 최대 5번 정도만 도정 해야 한다. 그러나 10번 정도의 도정을 한 쌀은 씨눈까지 제거되어 별다른 영양이 없고 그저 밥맛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품 가공 기술의 발달은 섬유질을 소화 불가능한 식품 요소나 다른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으로 생각하고 이를 제거해 왔다. 도정과 가공된 곡식은 당뇨병, 고지혈증, 변비, 맹장염,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같은 섬유질 결핍에 의한 질병들을 증가시켰다고 알려졌다.

추수한 벼에서 왕겨를 벗겨낸 쌀이 현미다. 현미의 껍질과 씨눈에는 중요한 영양성분의 95%가 들어있다. 이런 영양성분을 모두 제거하고 흰 쌀밥을 먹으면 보잘것없는 전분질, 녹말가루만 섭취하게 될 뿐이다. 이는 껍질의 섬유질을 제거한 상태에서 너무 빠르게 소화되는 부분만 에너지원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이때 소화하기 쉬운 음식이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혈당 스파이크’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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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배가 고프면 신경질과 짜증이 난다. 특히 아이들은 인체 장기의 미숙과 영양 저장량의 저하로 더 쉽게 배고픔을 호소한다. 이것은 혈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혈당 상태는 뇌의 대사를 불안정하게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왕성하게 한다.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소화되기 쉽고 빠르게 흡수되는 흰 쌀밥이 문제 중 하나이다.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는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씨눈과 현미 껍질이 포함된 통곡물의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생태토양학자인 남편 다니엘과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미수의 『생태 부엌』에 나오는 이야기다.

식이섬유의 하루 권장량은 성인 기준으로 약 25~30g, 통곡물 보리밥으로 3공기 정도다. 매끼 통곡물 보리밥을 먹으면 식이섬유의 결핍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하얀 쌀밥은 21공기를 먹어야 하루 권장량이 채워진다고 한다.

나는 통곡물의 주 영양소인 식이섬유가 주는 효과를 알아봤다. 음식물이 장을 통과하는 시간을 단축하여 지방과 콜레스테롤 흡수를 방해하고, 배설을 촉진하여 체내 지방 축적을 낮춘다. 소장 통과 시간을 단축하여 당 흡수를 낮출 뿐 아니라 혈당 상승 속도를 낮추고,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 대장 운동을 촉진하여 변비를 예방한다. 섬유질은 장내 유익균의 먹이라서 유익균이 증식하여 장을 건강하게 한다.

가끔 아내는 변비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나는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곤 했는데 그동안 알았던 식이섬유는 대부분 반찬의 재료인 채소에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통 잡곡밥에 많이 포함된 식이섬유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임을 알고 나니 경이로웠다.

최근에 지인에게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꽁보리밥을 매일 먹었던 기억 때문에 잡곡밥은 싫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 먹은 우리에게는 흰 쌀밥 먹는 것이 소원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학교에 김치와 꽁보리밥을 점심으로 싸가면 그것이 건강식품인지 모르고 괜히 창피했었다. 흰 쌀밥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해도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나는 탄수화물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5대 영양소인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흰 쌀밥의 섭취로 혈당이 안정치 못해 당뇨병에 걸렸고 스트레스에 약했던 것이 지난날의 내 모습이었다. 예전 스타검사와 청소년 지킴이로 불리던 강지원은 『대한민국 주식혁명』에서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밥을 흰쌀로 짓지 말고 쌀겨와 쌀눈을 도정 하지 않은 통곡물 쌀(통쌀)로 짓자고 한다. 흰 쌀밥은 워낙 부드러워 오래 씹을 수가 없는 탓으로, 포만감이 올 때까지 먹다 보면 필연적으로 과식을 할 수밖에 없다. 과잉의 탄수화물은 지방으로 저장되어 비만을 낳고, 중성지방, 콜레스테롤로 혈관에 침착된다. 이는 곧 만병의 원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집에서 아내가 밥을 짓는 방법이다. 현미, 현미 찹쌀, 통밀, 차조, 수수, 기장, 통보리, 율무, 콩, 팥 중에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구입해 놓는다. 현미와 여러 잡곡 중에 몇 가지를 섞은 통 잡곡밥을 짓는다. 예전에 아주 눈꼽 만큼 흰 쌀이 섞이기도 했다. 이제는 흰 쌀을 거의 섞지 않는다. 잡곡은 구입하는 대로 일정한 비율로 섞어두고 밥을 짓기 전에 현미와 섞어둔 잡곡을 물에 불린다. 불린 통 잡곡을 압력솥을 이용하면 맛있게 익는다. 잡곡은 1~2시간 정도 불리는 것이 좋다.

그동안 영양의 보고인 통 잡곡에 대해 모르고 살아온 것이 크게 후회된다. 잡곡밥은 건강에 도움뿐 아니라 의외로 맛도 있었다.

김미수/『생태 부엌』/콤마/2017

강지원/『대한민국 주식혁명』/교학도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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