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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씹을수록 고소한 통 현미밥

by 남동휘

TV 프로그램 중에 우리의 주식인 쌀과 건강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설명하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언젠가 우연히 본 내용 중 현미밥이 우리 모두에게 잘 맞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에게는 현미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하면 몸에 좋은 현미밥을 먹을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TV 한 채널에서 수입하는 카무트 쌀에 대해서는 슈퍼식품이라며 우리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다가 채널을 돌리면 옆 쇼핑 채널에서는 영락없이 그 식품을 팔고 있었다. 건강을 이야기하는 의사 패널들은 왜 현미가 가진 영양소나 먹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TV 쇼핑 채널에서는 현미가 잘 팔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현미가 우리 땅에서 나는 슈퍼식품이다. 우리 농산물은 생명이고 건강이라는 ‘신토불이’라는 옛날 노래가 생각난다.


예전에 나도 현미밥을 생각하면 씹기가 힘이 든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일본 의사 신야 히로미의 『병 안 걸리고 사는 법』이란 책이 있다. 저자는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 레이건 대통령 등 유명인의 주치의였다. 세계 최초로 대장내시경을 사용해 개복 수술을 하지 않고 대장의 폴립을 절제한 외과 위장내시경 의사이다.

보통 병원에서 위장 수술환자는 수술 후 ‘죽’을 먹게 한다. 그러나 그는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죽’부터 시작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병원에서 위 수술을 한 환자에게 ‘죽’이 아닌 밥을 꼭꼭 씹어 먹게 했다. 꼭꼭 씹은 밥이 입안의 침과 잘 섞이면 ‘죽’보다 소화가 잘된다는 것이다. 씹으면 침에 있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와 음식물의 분해가 부드럽게 진행되어 소화흡수가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흐물흐물해서 씹을 필요가 없는 ‘죽’은 그대로 삼켜버리게 된다. 부드러운 ‘죽’은 효소가 충분히 섞이지 않아 오히려 소화가 잘 안 되고, 꼭꼭 씹은 밥이 소화가 훨씬 잘된다는 이야기였다.


현미밥은 꼭꼭 오래 씹으면 소화가 잘된다. 물에 불려서 밥을 지으면 씹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떤 소화제보다 탁월하다는 침과 섞이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재미있는 것이 흰쌀밥은 씹을 것이 별로 없는데 달리 현미밥은 씹는 맛이 있다. 백미는 색깔이 새하얗고 부드러우며 단맛이 강해 대부분 사람이 즐겨 먹고 있지만 현미에 비교하면 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거한 죽은 식품이다.

현미는 적당한 온도에서 물에 담가두면 발아한다. 발아할 수 있는 현미는 생명력을 감춘 살아있는 식품이다. 정제하지 않은 현미에는 몸에 좋은 영양소인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그 외에도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 철, 인 등의 미네랄과 같은 미량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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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처럼 도정하지 않은 곡식을 먹으면서 현미 섭취 시의 불쾌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씹는 훈련 기능을 많이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은 씹으면 씹을수록 뇌의 혈류량이 증가하여 뇌의 발달과 치매 예방에 좋다. 현미하고는 다른 이야기지만 수시로 껌을 씹는 것도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가 부실해서 못 씹는 사람들은 우울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음식을 씹지 못하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 치과에서 임플란트 치료 중 음식을 씹지 못해 한동안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씹는 기능이 퇴화되면 치매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하니 아직 잘 씹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특히 입에서 충분히 씹게 되면 전분 질이 분해되어 생기는 포도당 등에 의해 단맛을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곡식의 씨눈과 껍질의 영양은 씹을수록 고소함을 맛보게 한다. 통곡물에 있는 식이섬유는 변의 부피를 형성하여 대장의 연동 운동을 자극하고 장점막에 끼어 있는 노폐물과 함께 배변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변비를 막아주는 식이섬유는 인체의 필수적인 물질이다.

김미수는 『생태 부엌』에서 씹기 힘든 현미를 발아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잡곡을 발아시키려면 밥을 짓기 전에 원하는 양의 잡곡을 뚜껑이 있는 유리병이나 냄비에 넣고 물에 충분히 불린다. 시간이 지나 통곡물에 살짝 싹이 트면 비타민 함량이 높아지고, 식감이 부드러워진다. 조리 시간도 단축된다. 집에서 살짝 발아하여 끓인 통곡물 밥은 씹는 질감과 영양 모두 만족할 만하다.


그동안 나는 흰쌀밥으로 인한 혈당의 불안정한 상태로 쉽게 저혈당 증세를 느끼게 했다. 나는 저혈당이 오면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했다. 이때 급히 당분 섭취를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저혈당 증세가 무서웠다. 저혈당 증세를 느끼면 사탕 등으로 혈당을 높이고 다시 저혈당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었다. 이런 일이 당뇨 전 단계나 당뇨병 환자의 일상이 아닌가? 오후 3~4시쯤이면 찾아오는 저혈당 증세를 환자가 아닌 많은 일반인들도 느낀다. 예전에 나도 달콤한 커피믹스와 사탕, 과자로 저혈당 증세에서 벗어나려 했다. 요즘은 집에서 잘 씹어먹는 통 잡곡밥 덕분인지 저혈당 증세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외식은 식당에서 제공하는 흰쌀밥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문제인 외식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신야 히로미/『병 안 걸리고 사는 법』이근아 역/이아소/2006

*김미수/『생태 부엌』/콤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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