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친구의 이모가 서울 청량리에서 통닭과 칼국수를 파는 식당을 운영하셨다. 이제 90세가 넘은 이모의 칼국수 집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먹는다. 닭고기로 만든 육수, 양념에 밀가루 국수 가락과 어우러진 그 맛은 여전히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나는 그 맛에 빠져서 어른이 되면 칼국수 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밀가루 음식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었다. 주말에 아내가 비빔 소면을 만들어 주면 맛있게 먹곤 했다. 밀가루 음식에는 여러 종류의 국수를 비롯하여 짜장면, 피자, 빵, 햄버거, 라면, 파스타 등이 거론된다.
옛날 우리나라 북부지방에는 메밀을 이용한 냉면이 발달했고 남부 지방은 밀가루를 이용한 칼국수나 수제비가 발달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밀을 도정하는 제분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밀가루가 비쌌다. 그래서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결혼식 같은 잔칫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노총각에게 하는 농담으로 ‘너 언제 국수 먹여줄래’ 하는 말들이 있는 이유다. 지금도 분식집이나 재래시장에 이제 귀하지 않은 잔치국수가 남아있기는 하다.
나는 국수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S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한창 크던 때라 보통 라면 3개에 밥을 말아먹었다. 군대 생활 중에 보초 근무 끝나고 끓여 먹는 라면 맛은 정말 끝내줬다. 하루 저녁은 내무반에 들어가니 동기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끓인 라면을 먹으려는데 젓가락이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손가락으로 먹을 수가 없어서 찾아낸 것이 싸리나무 빗자루였다. 빗자루 윗부분을 꺾어 자른 것으로 간신히 라면 두세 젓가락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 빗자루는 화장실 청소용이었다. 어쨌거나 라면은 언제 어떻게 먹어도 맛있었다.
나는 흰 밀가루가 우리 몸에 주는 폐해를 모르고 참 오랜 시간 맛있게 먹고 살아왔다. 예로부터 우리의 주식은 밀이 아니고 쌀이다. 밀은 우리가 주식으로 삼지 않고 기호와 선택으로 어쩌다 먹는 식품이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만들어낸 빵들은 우리나라의 빵처럼 달고 부드럽고 기름지지 않다. 그들의 빵은 통곡을 가루 내어 만들기 때문에 색이 거무튀튀하고 거칠며 달지 않고 기름지지도 않다. 그들의 빵은 아침에 구운 것을 다음날에는 너무나 딱딱해서 먹지 못하는 자연식품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오래 씹으면 침과 섞여서 달콤한 맛이 난다. 우리 주위에 보이는 빵들처럼 온갖 화학 물질과 함께 만들어진 가공식품과는 다르다.
나는 젊어서 한동안 점심으로 짜장면과 우동을 번갈아 매일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우짜(우동, 짜장면), 우짜, 우짜짜를 해도 돈 없고 가난한 직장인에게 한 끼의 음식으로는 아주 좋았다. 그리고 지방에 근무하다가 가끔 서울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점심을 뭐 먹겠냐고 물으면 쉽게 명동칼국수를 말했다. 그 집은 얼마나 유명했는지 요즘도 우리나라 어떤 도시에나 명동칼국수 간판을 단 집이 한두 개씩 보인다. 이제 그 식당은 상호 도용이 싫어선지 M교자로 바꾸었다. 그곳 닭칼국수와 같이 먹는 김치도 정말 맛있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김치의 재료인 마늘을 하루에 트럭 한 차씩 쓴다는 소문도 있었다. 명동칼국수에서 닭칼국수와 만두 한 접시를 먹고 나면 오랜만에 서울 온 보람을 느끼곤 했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건강을 위해 ‘글루텐 프리(글루텐이 들어 있는 주식인 밀을 먹지 않는 생활)’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유는 그동안 건강한 먹거리로 여겨져 온 밀이 내장 지방의 축적을 촉진하고 당뇨병이나 심장병, 치매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글루텐이 체내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단백질로 분해된다. 이 단백질이 면역 기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장점막에 염증을 일으켜 신체 이상을 초래한다. 프로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는 자신의 컨디션 난조가 밀에 의한 글루텐 불내증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경기 중에 쓰러졌다. 검사 결과 그의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밀에 함유된 글루텐으로 밝혀지면서 조코비치는 글루텐을 배제한 식단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그는 만성적인 복통에서 해방되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체중도 자연스레 5Kg이나 줄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강해졌으며 기분까지 상쾌해졌다고 한다. 그 후 조코비치는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글루텐 과민증에 빠지면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염증성 물질의 양이 증가한다. 최근 연구에서 장 염증이 치매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순환기 질환 예방의 권위자 윌리엄 데이비스 박사(William Davis)는 그의 책 『밀가루 똥배』에서 ‘밀에 들어있는 엑소르핀이 뇌에 직접 작용하여 우리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에 중독을 일으킨다. 밀가루 음식을 끊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영양 성분이 제거되고 하얗게 도정되고 정제된 상태에서 온갖 화학 물질이 검출되는 지금의 밀가루 음식은 인체에 영향을 미치고 세포 손상의 위험을 늘린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밀가루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것은 농약과 화학비료, 방부제, 살충제를 비롯한 온갖 표백제와 밀가루 개량제 등이 뒤섞인 식품이다.
동서양의 많은 의사가 우리가 만성 질환에 걸리면 염증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통증과 염증을 치료하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밀가루 음식과 설탕을 끊으라는 것이다. 얼마 전 척추의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지인에게 밀가루 음식과 설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파서 고생하는 지인이 알겠다고는 하는데 쉽게 밀가루와 설탕을 끊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흰 밀가루 음식을 끊어서 지긋지긋한 염증과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던 4백 중 하나인 흰 밀가루 음식을 과감히 식탁에서 치울 수 있었다.
윌리엄 데이비스 /『밀가루 똥배』/ 인윤희 역/ 에코리브르/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