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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까마귀와 눈사람

 온몸이 검은 깃털로 뒤덮인 까마귀! 밤은 달과 별이라도 있지만, 까마귀는 눈동자마저 검어 진정한 어둠의 새라 말할 수 있었다. 동물들은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많이 먹어 검게 변했다고 믿었다. 그렇다 보니 까마귀에 대한 나쁜 소문도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소문이 진실을 이기자 동물들은 까마귀를 멀리하게 되었다.

 동물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까마귀들은 하나둘 숲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젊은 까마귀마저 숲을 떠나자, 저녁 하늘을 구슬프게 울렸던 까마귀 소리가 숲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젊은 까마귀는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북쪽 땅, 그곳에는 자기를 반겨줄 친구가 있을 거라 믿었다. 북쪽 땅은 남쪽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험했다. 거칠고 황량한 뾰족 산들이 까마귀의 비행을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까마귀 앞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높은 바위산이 나타났다. 젊은 까마귀에게도 그 산을 넘는다는 것은 너무나 벅차고 힘든 일이었다. 날개 끝까지 남아 있던 힘을 전부 쓰고 나서야 까마귀는 간신히 바위산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른 까마귀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뜨거운 불 위에 매달린 하얀 솜사탕처럼 까마귀의 몸은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았다. 곧 까마귀는 희망과 절망도 느끼지 못한 채 땅을 향해 떨어졌다.

 푹!

 까마귀는 바위산 정상을 뒤덮고 있는 눈 속으로 떨어졌다. 수백, 수천 년간 쌓여 있던 눈 속으로.


 ‘쓱싹! 쓱싹!’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빗자루로 까마귀를 덮고 있던 눈을 쓸어냈다. 빗자루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눈사람이었다. 정신을 잃었던 까마귀는 눈사람 덕분에 조금씩 의식을 회복했다. 

 까마귀가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상상 속에서도 그려본 적 없었던 그 하얀 곳을 까마귀의 동그랗고 새까만 눈동자가 분주하게 돌려보았다.

 “몸은 좀 어때? 괜찮은 거야? 다행이다!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줄 알았거든!”

 눈사람의 목소리는 친절하고 맑았다.

 “와, 하얗다!”

 까마귀의 첫마디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을 만큼 까마귀의 눈엔 눈사람의 하얀 피부만 보였다.

 “나도 너처럼 하얗다면 얼마나 좋을까?”

 까마귀의 목소리에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내가 부럽다고? 나는 너처럼 자유롭게 날 수도 없어. 또 아무리 추워도 북쪽 땅을 벗어날 수도 없고. 태양이 내 몸을 녹게 만들 테니까. 그런데도 내가 부럽니?”

 눈사람은 동근 머리를 기우뚱하며 말했다.

 “응, 정말 네가 부러워. 너처럼 하얬다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그럼 숲을 떠나는 일도 없었을 거고…….”

 까마귀의 말이 힘없이 끊겼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사람은 까마귀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까마귀는 진심으로 눈사람을 부러워했다. 눈사람은 그런 까마귀를 불쌍하게 여겼다. 눈사람은 까마귀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까마귀야,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마법으로 너를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거든.”

 까마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 너처럼 하얘질 수 있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까마귀는 진심으로 하얗게 되고 싶었다.

 “까마귀야, 그전에 한 가지 약속해 줄 수 있어?”

 “그게 뭔데? 어떤 약속이든 지킬게!”

 “만약 네가 소원을 이루게 된다면, 이곳에 남아 줘. 친구처럼 이곳에 살면서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상 얘기를 들려주는 거야. 어때?”

 친구 없이 오랫동안 외롭게 지내 온 눈사람이었다. 친구가 절실했을 때 까마귀가 찾아온 거였다.

 “좋아! 사실은 나도 친구를 찾아 떠돌고 있었거든. 하하하”

 까마귀도 눈사람의 약속에 흔쾌히 동의했다.

 눈사람은 곧 자신의 몸에서 눈을 떼어냈다. 눈사람은 그 눈을 까마귀의 머리 위로 날려 보냈다. 곧 하얀 눈가루들이 까마귀를 소복소복 감싸기 시작했다. 뒤이어 눈가루들이 소용돌이처럼 까마귀 주위를 돌았다. 얼마 후 그 속에서 하얗게 변한 까마귀가 나타났다.

 까마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총총 뛰어 보기도 하고, 날개도 푸드덕거렸다. 하늘로 붕 떠올라 몇 바퀴 돌았다. 힘주어 날갯짓해도 몸에 붙은 눈은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온전한 피부처럼 느껴졌다.

 “믿을 수 없어! 내가 하얘졌어. 눈사람아 정말 고마워! 이제부터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야! 친구라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까마귀는 눈사람을 꼭 껴안았다. 눈사람은 까마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까마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까마귀야, 눈물은 조심해야 해. 우리를 녹일 수 있거든.”

 눈사람의 농담 섞인 얘기에 까마귀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둘은 곧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을 웃었다. 이후, 눈사람과 까마귀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둘은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바위산에도 시간이 흘렀다. 까마귀는 눈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지루하게 느껴졌다. 바위산 꼭대기에서 온종일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까마귀의 마음 한쪽에는 하얗게 변한 자신을 다른 동물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있었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한번 자리를 잡게 되자, 그 바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자꾸만 떠날 변명 거리만 떠올랐다.

 “눈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날 이해해 줄 거야. 사실 그동안 충분히 눈사람에게 친구 노릇을 했고 말이지. 그리고 가끔 눈사람을 보러 오면 되잖아.”

 이런저런 변명 거리가 마침내 까마귀를 설득하자, 까마귀는 눈사람과의 약속을 어기고 어느 새벽에 바위산을 떠났다. 눈사람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까마귀는 남쪽으로 계속 비행했다. 고향 숲에 도착한 까마귀는 벅찬 기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까마귀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외쳤다.

 “내가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하얀 새가 돌아왔다!”

 까마귀는 큰 원을 만들며 계속 말했다. 지상의 동물들이 차례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때 지상에 있던 여우가 말했다.

 “까마귀다! 까마귀가 나타났다!”

 여우의 대답에 까마귀는 어리둥절해졌다.

 “뭐지? 내가 까마귀인 걸 어떻게 알았지? 내 하얀 날개를 보지 못했나?”

 까마귀는 다시 한번 숲을 돌며 말했다.

 “나를 잘 보라고? 이렇게 멋진 하얀 날개를 말이야?”

 까마귀는 더욱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날갯짓했다. 하지만 동물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각자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동물들의 냉담한 반응에 까마귀는 선뜻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하늘만 빙빙 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물 위엔 새까만 까마귀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사실 까마귀를 감싸고 있던 하얀 눈이 남쪽으로 돌아오는 동안 태양에 모두 녹아버렸던 거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까마귀! 까마귀는 눈사람과의 약속을 어긴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이후, 까마귀는 눈사람에게도 돌아가지 못했고, 숲에도 머물지 못한 채 계속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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