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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Aug 20. 2022

진실은 머리를 들어주세요

<히든>.2005

진실은 머리를 들어주세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61년 10월 파리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알제리인들을 프랑스 군경들이 무자비하게 죽인다. 어른과 아이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사망자들 대부분은 장례도 못 치른 채 강물에 휩쓸려갔다. (조르주네 집 일꾼이었던) 마지드의 부모 또한 시위 현장에서 죽었다. 고아가 된 마지드를 키우기 위해 조르주의 부모는 그를 데려오지만, 안 좋은 소문이 일자 마지드를 고아원으로 보낸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나 조르주는 문학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떨친다. 문학 프로그램 진행자 겸 책임 편집자에 다독(多讀)을 하는 중년 남자는 지식인이라 불려도 손색없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배우신 분'이라 칭찬까지 들으니 조르주는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어떤 기억이 소환되기 전까지는. 그것은 조르주의 마음 속에 웅크려 있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끌어온다. 비디오는 어느날 밤 그의 집을 멀리서 길게 찍는다. 영상은 시종일관 그의 집만 찍다가 끝이 난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그냥 찍힌 것 보단 조르주한테 이 녹화본을 보냈다는 점에서 협박용 감시카메라다. 이 단순하지만 위험한 영상기록물에서 어떤 기억이 딸려나올 수 있을까. 과정은 안 나오지만 조르주는 반추했을 테다. 이런 비디오를 찍어 나한테 보낼 사람이 있나? 뒤집어서, 이런 비디오를 찍어 보낼 만큼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나? 어린 시절 피를 토하던 마지드. 여섯 살의 조르주는 그가 피를 토하고, 닭을 죽여 피범벅이 된 얼굴로 자신을 겁준다며 거짓 소문을 내 집에서 쫓아내려 한다. 온 집안에 전염된 공포감은 어린 마지드의 추방으로 귀결된다.


어린 시절의 마지드

그의 집에 온 여러 개의 비디오테이프엔 각각 다른 영상이 찍혀있다. 낮에 찍은 조르주네 집 외관, 밤에 찍은 조르주네 집 외관, 조르주가 어릴 때 살던 집,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마지드가 사는 집, 조르주를 보내고 혼자 남아 울고 있는 마지드, 비디오 다섯 편은 조르주 가족을 혼돈에 빠트린다. 발신자는 누군가? 당연히 마지드라고 생각한 조르주는 그를 찾아가지만 마지드는 모른다. 다섯 편의 비디오 중 마지막에 온 울고 있는 마지드가 찍힌 테이프는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켜야 할지도 몰라 조르주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가 불안해하는 원인은? 자신이 일구어놓은 가정이 고작 비디오(의 발신자) 때문에 붕괴될 것이 두렵다. 처음 마지드를 찾아가서도 그는 가족들의 평안이 깨진다며 마지드를 비난한다. 기억해두어야할 건 이 시퀀스 이전에 조르주는 이미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 어린 시절과 전혀 관계 없는 (조르주네 주택 외관이 찍힌) 영상을 보고 자기 잘못을 떠올렸다면 두말 할 것 없지만, 그 잘못이 어렸을 때의 무지함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혼란의 책임을 다 큰 마지드에게 떠넘기고 싶어한다. 왜 몇십 년 전 일에 아직도 분개해서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보내느냐. 마지드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기는커녕 들을 생각도 없다.


울고 있는 마지드, 누가 찍었을까?


<히든>에서 자주 보이거나 언급되는 이는 경찰(서)이다. 조르주를 불안에 빠트리고 붕괴 중인 가정을 구출해낼 이는 언제나 경찰이다. 서두에 언급한 파리 대학살 사건을 떠올리면 <히든>에서 공권력이 결코 좋은 의미로 등장할 수는 없다. 이 공권력을 조르주는 자주 이용한다. 마지드와 그의 아들을 협박하거나, 비디오테이프 때문에 잠시 들르거나, 혹은 마지드 부자를 잡아넣기 위해 소환한다. 조르주에게 경찰은 자신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든든한 보호막이다. 자기 아들과 연락이 안 될 때도 그는 경찰을 데리고 마지드 네로 간다.



  마지드의 눈에 경찰은 무슨 존재인가? 왜 마지드는 자신과 자기 아들이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연행된 이후에 조르주가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르나? 알제리 시민들을 향한 공권력의 만행과 조르주의 거짓말로 인해 어린 마지드는 가정과 제2의 가정에서 모두 쫓겨난다. 그는 공부할 기회를 잃었고 이게 한이 되어 자기 아들은 열심히 가르쳤다. 그들의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오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마지드는 그의 아들과 단둘이 가정을 꾸리면서 과거의 아픔을 반복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테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뀐 시대만큼 사람도 바뀌었으니.

  바뀌지 않았다. 그 표본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어렸을 때 만난 조르주부터가 여전히 경찰에 의존해 죄 없는 부자를 잡아넣으려 한다. 거시적인 비극의 역사가 현재에 와서 미시적으로 한 가정을 붕괴시킨다. 마지드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경찰차에 실려간다. 이후 조르주 앞에서 실행한 마지드의 자살은 자신의 결백과 함께 이 나라(프랑스)에서 얻은 절망감의 표출이다. 나에서 끝나야 할 부조리가 대를 이어 행해진다는 절망감.


  

조르주가 한 잘못은 경찰에게 불려갈 만한 일이 아니다. 잡혀갈 만큼 큰 잘못도 아니고, 그의 말마따나 나이도 어렸다. 합리화할 수 있는 다양한 핑계가 있는데도 그를 에워싼 죄의식이 진실을 말하게 한다. 누구 앞에서? 자기 아내 앞에서.

  마지드가 자기 앞에서 목을 잘라 죽었다. 근데 이상한 건, 영화 전반부와는 달리 이번 일은 비디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 마지드를 만나고 안느에게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하다 그는 찍혀버린 비디오를 통해 들켰다. 이번에는 마지드가 목을 잘랐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그걸 증명해줄 비디오가 없다. 어쨌든 안느는 그 말을 믿는다. 조르주 역시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가본 적 없는 그도 안느 앞에서 피의자의 진술마냥 자신의 과거를 술술 털어낸다. 진실이나 거짓을 증명할 비디오가 없지만 그의 행동은 어느 때보다 진솔하다. 비디오보다도 선명하게 상영되는 과거가 그를 향해 덮쳐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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