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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Sep 23. 2022

위하여! 위하여?

<셀레브레이션>.1998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의 경사를 축하하러 온 성대한 자리다. 몇십 년을 신뢰하며 지낸 한 지인에게 건배사를 맡긴다. 떠들썩한 장내를 조용하게 만드는 유리잔 울리는 소리. 식탁에서 지인이 잔을 들고 일어난다. 들뜬 마음으로 그의 건배사를 기대하는 당신.

"나를 강간한 저 사람을 위하여!"


크리스티안의 뒷모습

영화는 아버지 헬게의 집에 가는 크리스티안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의 회갑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남동생 마이클은 자신이 초대 받지 못한 손님인 줄도 모른 채 가족들을 끌고 온다. 누나인 헬렌 역시 택시를 타고 온다. 크리스티안의 쌍둥이 린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가족들이 헬게의 집에 찾아온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아버지는 크리스티안에게 건배사와 함께 죽은 누이 린다에 대한 애도를 부탁한다. 가족 전체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 크리스티안은 동생 린다에 관한 얘기를 한다.  

"아버지는 항상 목욕을 했어요. 그러면 나와 린다를 서재로 데려가서 목욕 전에 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버리고 없는 녹색 소파에 우릴 눕히고, 성적으로 학대하고, 강간했죠. 자기 자식들과 섹스를 했어요."

그때 카메라는 크리스티안의 바로 뒤편, 그의 상체만을 보이도록 찍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지금 혼자다.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파티의 분위기만을 신경쓴다.


영화 <셀레브레이션>은 고전이라 불리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다. 소수의견을 가진 한 명이 그에 반대하는 다수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차이점이라면 두 영화의 분위기인데, 후자는 의견을 한 데 모으기 위해 조성된 엄숙함이라면, 전자는 의견 간의 충돌이 일어날 수 없는 떠들썩함과 화목함이다.  그들은 각자의 의견이 아닌 전체의 의식을 위해 모였으니 말이다. 크리스티안은 그 신성한 의식에 균열을 내려 한다. 무엇보다도 화목함이 중요한, 아니 중요하다고 다들 믿어야 하는 자리에, 그는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쏟아내며 추악한 진실과 좋은 가족이라는 허구 사이에 균열을 낸다.  

<셀레브레이션>은 한 명의 트러블메이커와 파티원들 간의 기싸움이 주 플롯을 이룬다. 아버지한테 버림받기 직전인 마이클은 그에게 눈도장을 받고 싶어한다. 때문에 트러블메이커인 자기 형을 내쫓는 데 선두로 나선다. 그는 자기 형에게 주먹질을 하고 나무에 묶어버린다. 같은 시각 파티원들은 노래를 부르고 덕담을 주고받는 등 냉랭했던 분위기를 다시 덥히는 데 힘쓴다.

여기서 크리스티안의 고발이 과연 진실이냐는 의문이 든다. 단순한 억하심정 때문에 그는 심술을 부린 걸까. 물증 없는 심증과 증언 만으로 그의 말은 온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신 오프닝 씬을 보자. 카메라는 헬게의 집에 가는 크리스티안을 익스트림 롱 쇼트로 잡는다.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는 그의 몸집은 좁쌀 만하다. 그가 걷는 길 양옆 모두는 아버지의 땅이다. 땅 사이를 무기력하게 걷고 있는 이 남자가 찍힌 쇼트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다. 아버지의 이면을 고발하고자 결단을 이미 내렸지만 심적으로는 망설이는 크리스티안이 엿보인다.  

또 다른 씬. 집에 도착한 크리스티안이 헬게와 대화를 나눈다. 이때 중간중간 껴드는 인서트는 안절부절 못하는 크리스티안의 손을 보여준다. 종이를 찢고, 왼손과 오른손을 비빈다. 편집 속도도 빨라 그가 아버지 앞에서 느끼는 불안정함이 확연히 드러나는 씬이다.

인종차별 노래를 부르는 파티원들

집에서 내쫓아냈던 크리스티안은 파티장으로 돌아와 이따금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다. 크리스티안과 린다의 아픔 보다도 파티가 중요한 사람들은 헬렌의 흑인 남자친구 앞에서 인종차별 노래를 부르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로의 어깨를 잡고 기차놀이를 한다. 이런 짓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이미 파티 분위기는 난장이 됐다. 파티 막바지엔 파티장에서 헬렌이 린다의 유서를 읽게 된다. 그 안엔 린다 자신과 크리스티안이 헬게한테 당한 일들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조금이나마 흥겨웠던 파티원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침묵에 빠진다.    

<셀레브레이션>은 스스로 자초한 한계(도그마95라는 덴마크 감독들이 만든 영화적 원칙) 내에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뽐낸 영화다. 하지만 이번에 재감상 하면서 그 생각을 재고했다. 영화의 플롯을 보면, 이 영화는 결국 크리스티안의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파티원들은 그를 내쫓는 데 필사적이지 않다. 내쫓겼던 그는 파티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아버지의 강간과 어머니의 방관에 대한 고발을 지속하면 된다. 영화 말미에 갑자기 등장한 린다의 유서는 파티는 물론 영화의 긴장감까지 식혀버린다.  이 영화는 파티원들이 인격적으로 손 한 번 쓰지 못힌 채 크리스티안에게 k.o 패배를 당하고 끝난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크리스티안과 린다의 승리를 위해서 영화의 긴장감을 버렸다. 용의 머리를 가졌지만 뱀의 꼬리로 끝나 아쉬운, 그렇지만 재밌고 슬프고 훌륭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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