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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Nov 26. 2022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세 가지 색 : 레드>.1994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인간 세계 속에서 정립된 가치 체계가 무용해지는 순간을 찍는다. 판사라는 인간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죄인을 처벌할 자격이 있는가. 그 법체계는 붕괴될 염려가 없는 완전한 짜임새를 갖추었는가. 인간은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길 수 있는가. 국기에 그려진 고유의 가치들을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예외도 없이 지키고 있나. 키에슬로프스키는 이념의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우연과 예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인간을 찍는다. 그 붕괴 앞에서 주인공은 영원한 죽음을 맞거나 깨진 조각들을 발판 삼아 일어나기도 한다.  


<세 가지 색> 연작물에서 파랑은 자유를, 하양은 평등을, 빨강은 박애를 상징한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자유와 평등은 개인의 실천보다 헌법에 기초를 둔다. 인간세계에서 자유는 때로 박탈당하고 평등은 자주 등한시된다. 박애와 달리 자유와 평등의 이익 대상은 보통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돕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기에 내 몸이 편할 수 있다. 누구를 돕지 않아 그가 불행해지면 똑같이 불행한 나와 같은 신세이기 때문에 이건 평등하다. 박애는 나의 희생과 너의 희생이 동등하게 필요한 실천적 가치다. 어쩌면 자유와 평등은 박애를 실천함으로써 따라오는 이념이다. 이는 긍정에서 비롯되는 실천이기에 보다 이상적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발렌틴의 남자친구 미셸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카메라는 전화에 연결된 다량의 전화선들을 따라간다. 여기서 들리는 수많은 목소리는 다른 이와 전화를 주고받는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미셸과 직접적인 연은 없어도 통신매체로는 서로가 알게모르게 이어진 현대 사회에서 박애는 진정 부르짖을 가치가 있는가. 다른 이와의 은밀하고 추잡한 만남의 매개체가 된 전화. 이것은 훗날 저열한 욕망과 문장이 범람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된다. 오프닝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이곳에서 우리가 빠져나왔을 때 어떤 미래와 당면하게 될 지 묻는다.

  발렌틴은 대학생이자 광고 모델이다. <언제 어디서나 삶의 숨결을>을 문구로 한 풍선껌의 광고 모델로 발탁 된 그녀는 화보를 찍는다. 빨강색 배경에 어딘가를 놀란 얼굴로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은 도로 한복판에 입간판으로 걸린다. 하지만 그것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멋들어진 광고 문구는 팔아야 할 수천 통의 풍선껌을 장식해주는 작은 도구일 뿐이다.

  그녀는 조용한 삶을 살고 싶지만 수많은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주고, 노인이 보내온 거액의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돈을 돌려준다. 남의 통화를 도청하는 재미로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을 때 그녀는 자책감에 빠져 다시 그를 찾아간다.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인물은 노인이다. 어떻게 보면 <세 가지 색 : 레드>(이하 <레드>)에서 질이 나쁜 축에 속하는 이 폐쇄적인 인물에게 발렌틴은 흥미를 느낀다. 한 여자에게 배신을 당한 그는 일찍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져버렸다. 후에는 자신이 판사로 일하면서 윤리적인 회의를 느껴 일찍 그만둔다. 그리고 사람들의 전화를 도청하면서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식어버린다. 현 시대에 인간에 대한 기대를 빨리 접고 싶다면 이 노인을 따라하면 된다.

  발렌틴은 "나쁜 사람은 없다"고, "때때로 약해질 뿐"이라고 말한다. 기대를 접지 않는 발렌틴에게 노인은 그녀의 통화 역시 도청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그녀의 신념을 무너뜨리려 한다. 하지만 그는 발렌틴의 박애적 성향 앞에서 마음을 바꾼다. 지금껏 남의 통화를 도청하고 살았음을 경찰에 자수한다. 이후 발렌틴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발렌틴 역시 특유의 다정함으로 그와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얼마 후에 그녀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영국으로 배를 탄다. 그들은 서로 웃으면서 이별한다. 기상청은 발렌틴이 배를 타는 날에 하늘이 맑을 것이라 예보한다.

<레드>에는 노인의 과거와 똑같은 현재를 사는 남자가 있다. 오귀스트라는, 시험에서 합격한 뒤 법관이 된 남자는 언제부턴가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친구의 집을 몰래 찾아간다. 사랑의 결핍 때문에 오귀스트는 몸을 움직인다. 높은 층에 사는 그녀의 집을 훔쳐보기 위해 쓰레기통 위에 올라간다. 거기서 일면식도 없는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여자친구를 보고 오귀스트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는 법을 다스리며 여자친구의 내연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과거의 노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오프닝에서의 전화선. 현 시대를 사는 젊은이 오귀스트는 이 지점을 건너고 있다. 과거 같은 상황에서 독거를 선택한 노인의 뒤를 그 역시도 따라갈까.

마지막 장면

발렌틴이 배를 타고 가는 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배는 침몰된다. 노인은 이 사실을 뉴스 생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생존자는 단 일곱 명 뿐인 대참사 속에서 앵커가 생존자의 이름을 부른다. 그중에 발렌틴이 있다. <레드>의 마지막 장면은 발렌틴이 찍은 풍선껌의 화보와 비슷한 구도다. 화면 밖 왼쪽을 보고 입을 살짝 벌린 그녀. 이 시퀀스 사이에는 도로 한복판에 걸린 그녀의 화보가 철거되는 장면이 끼워져 있다. 직원들은 간판을 떼고 벽에는 철근만 남는다. 돈을 목적으로 외치는 삶의 숨결은 허물어질 문구다. 대신 그에게 다시 한 번 삶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 발렌틴을 노인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모든 이를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 전체를 구원하진 못해도 한 사람을 구원해줄 수는 있다고 믿는다. 저열하고 더러운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박애는 가능하리라 말한다. 단, 그것은 인터넷 속 가상이 아닌 서로가 마주 보는 현실에서다. 아픔과 상실과 결핍이 노인과 발렌틴과 오귀스트를 움직이게 했다. 그것들로 이루어진 감정은 사람을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들고 서로를 만나며 어루만지게 한다. 인간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 때문에 이 장면은 관객 모두가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오귀스트가 노인처럼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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