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극 배우 머틀 고든은 중년의 여인을 연기한다. <오프닝 나이트> 도입부에서 그녀가 능숙하게 연기하는 버지니아는 하루하루 늙어가는 운명 앞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머틀의 나레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17살의 나는 감정표현이 쉬웠는데, 지금은 감정을 잡아두는 게 어렵다고. 그것 때문인지 머틀은 공연 직전에 버번을 마신다. 버지니아처럼 머틀 역시 나이를 먹는 처지라 술에 의존해야만 어린 시절의 호소력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머틀을 좋아하는 17살 소녀 낸시가 그녀 앞에서 흐느낀다. 그녀에게 사인을 받았음에도 낸시는 그녀가 탄 차의 유리창에 대고 애정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머틀의 차가 떠나자마자 낸시는 다른 차에 치여 숨을 거둔다. 머틀은 이에 죄책감을 느낀다. 또 한편으론 자신이 맡은 버지니아라는 인물에 회의감을 느낀다. 버지니아라는, 노년의 극작가 사라(Sarah)가 만든 인물과 머틀 자신을 일치시킬 수가 없다. 머틀은 배우로서의 자아가 강한 인물이다. 늙어감에 순응하는 인물을 연기한다면 머틀은 나이 먹는 여자 배우로 이미지가 제한될 것이다. 머틀은 이것을 경계한다. 이것 때문에 그녀는 사라와 싸우고 연출가와 싸우고 같이 배우로 일하는 남편과 싸운다.
머틀과 낸시 "나는 이 죽은 소녀를 가지고 있죠. ...그 애는 아주 개방적이고, 그 애는 정말, 감정적으로 모든 것의 위에 있었어요." 머틀은 낸시의 환영을 보게 된다. 낸시의 환영을 처음 본 머틀은 환한 미소로 그녀를 반긴다. 그때부터 그녀는 술을 먹지 않고 맨정신으로 무대에 오른다. 의존하던 알코올이 아닌 낸시의 호소력만이 자기 내면에 탑재되길 원한다. 낸시의 환영은 머틀 고든의 뮤즈가 된 것이다.
머틀은 버지니아가 나이에 구속받지 않는, 보다 인간 전체를 대변하는 실존적인 인물로 구현되길 원한다. 그러니 죽은 낸시를 소환해 짙은 호소력을 지닌 그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낸시의 감수성이라면 사라가 창조해낸 딱딱한 버지니아보다 한 층 더 활기 있는 여인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서 사라의 대본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버지니아를 연기한다. 그때마다 상대 배우는 당황하고 연출가와 사라는 고개를 숙인다. 대부분의 관객은 (머틀의 즉흥이 십분 발휘된 줄도 모르는) 이 연극을 비판적으로 본다.
자신에게 낸시의 환영을 불러낼 힘이 생겼다고 믿은 머틀은 자신의 초현실적인 능력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은 저 미친 여자 배우를 안타깝게 본다. 리허설 때나 연극 때나 낸시의 환영을 보고 횡설수설하던 머틀을 진심으로 걱정한 사라는 그녀를 데리고 심령술사에게 간다. 처음엔 그녀의 제안을 거부했던 머틀은 그녀를 따라 두 번이나 심령술사를 찾는다. 두 번째로 방문한 심령술사의 집에서 머틀은 낸시의 환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어느새 낸시는 이빨을 드러낸다. "난 당신 괴롭힌 적 없다고. 날 죽이고 싶어하잖아."낸시라는 환영이 머틀을 잠식시키려 한다. 이 결투가 벌어지는 곳은 심령술사의 자택이다. 그녀를 불러낸 이는 심령술사가 아닌 머틀 자신이다(심령술사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녀가 말한 대로 낸시는 머틀의 소유지만 낸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고 의식을 치르지도 않았다. 언제 어디서라도 낸시는 머틀 앞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위의 대사처럼 낸시는 머틀을 괴롭힌 적이 없다. 오히려 머틀이 낸시라고 불리는 정신에 가닿기 위해 애썼다. 머틀은 그런 낸시에게 공포를 느낀다. 이 기현상을 퇴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심령술사가 아닌 머틀 자신에게 있었다.
그녀는 낸시를 죽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되찾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머틀은 깨달았을 것이다. 나이로 인한 고민은 고민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 대신에 또 한 번 술을 (평소보다 더) 마시면서 나이에 의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아무리 방황하면서 고민해도 그녀에게 선택지는 술 밖에 없다. 낸시를 죽인 이후 영화는 머틀의 방황 대신 공연 직전에 사라진 그녀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동료들을 찍는다. 영화는 머틀의 방황(혹은 고민)을 더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연출가에 의해 발견된 그녀는 만취한 상태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무대에 선다. 공연에서도 그녀는 (사라가 쓴) 고민이 아닌 (자신의 즉흥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늙어가는 자신을 비관하기보다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우렁차게 연기한다. 연극 속의 자신과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로하는 대사들의 향연. 마침내 버지니아는 나이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는 활기 있는 여자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