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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Oct 13. 2024

모두가 잠든 집, 두 마리 도마뱀이 동화를 짓고 있다.

말 문 터진 물건 7

10년째 책장에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던 도마뱀은 이제 책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저녁 무렵 지루하게 살짝 피 쏠림의 어지러움증을 느끼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 저게 뭐야? 야, 너 설마 도마뱀이야? 울긋불긋 옷 입은 거 좀봐. 대단한 녀석이 나타났네 - '

갑자기 콧구멍이 벌렁 거리며 온몸의 기운이 확 살아났다.

뛰는 가슴을 누르며 "저 - 저기 혹시 도마뱀이세요? "  소심하게 물었다.


'청소했으면 제자리에 돌려놔야지 날 여기 두고 가버리면 어떡해.'

겁도 나고 밤은 오고 어쩔 줄 몰라하던 중이었다.

그때 어디서 익숙한 도마뱀 말이 들려와서 깜짝 놀랐다.

'응? 누가 날 부른 것 같은데? '

사방을 둘러보니 저 위쪽에서 검은 바탕에 은빛 무늬가 빛나는 물체가 내려다보고 있다.

엎드린 자세나 발이 책에 붙어 있는 모습이 뭔가 익숙하다.


"너 도마뱀이야? "  떨면서 물었다.   

"응, 나 도마뱀이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도마뱀 말이잖아, 얼마 만에 들어보는 도마뱀 말인지!!

맨날 여우 강아지 비둘기 이런 애들 말만 듣다가 도마뱀 말을 들으니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뭐라고?  진짜야? "

"응, 맞아. 너도 도마뱀이구나! 야 반갑다 내가 내려갈게 기다려- "


몇 년 만에 발가락에 힘을 주고 책장 아래로 내려가는 벽 타기를 시도했지만 여지없이 아래로 곤두박질.

버둥거리다가 딱 도마뱀 위에 떨어져 버렸네.  

인사할 틈도 없이 서로 포옹부터 먼저 하고 말았다.

보들보들 축축한 피부를 느낄 수 있었다.

도마뱀 냄새가 난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리운 냄새를 들이켰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서로 모르고 살았다니, 와 반갑다. 친구야" 저절로 눈물이 났다.

"넌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구엘이야. 스페인에 가면 가우디란 사람이 만든 구엘 공원이 있는데 거기 대단한 우리 엄마가 있어."-

"그럼 넌 스페인에서 왔단 말이야? "

"응.  사람들이 우리 엄마 앞에서 옆에서 사진 찍고 난리 치다가 기념품 가게로 가서 엄마가 낳은 수백 수천 마리 도마뱀 중 한 마리를 사서 자기 집으로 가져가거든. 나도 그렇게 이 집으로 왔어."

"그럼 스페인 말할 줄 알겠네 - 오 대박이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동화뱀이야"

"응?  도마뱀도 아니고 동화뱀이라니?"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집 애가 어릴 때 도마뱀이  동화가 나오는 뱀인 줄 알았다는 거야 하하하. 그래서 내 이름은 동화뱀이야."

"아하, 그래서 넌 책위에 만 있었구나. "

"어어( 그건 아닌데 )ㅡ음  그런 가?  .... 그렇다고 할 수 도 있기는 한데 -"   동화뱀이 어버버 하는 사이  

"너무 멋지다. 책 위에 있는 동화뱀. 난 생각도 못해 봤어. 스페인에서는 날 들었다 놨다 하는 관광객만 보고 살았고 여기 와서는 말 안 통하는 애들과 있기만 했는데 너는 책을 읽고 있다니. "


동화뱀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애라 모르겠다 - 흠흠 !!

"근데 책들이 너무 어려워서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나려 해." 우쭐해서 말해버렸다.

"하하하 그럼 안 읽음 되잖아. "

"그렇지? 그런데 이상하다? 나도 모르게 바쇼의 하이쿠를 읽고 있다니까. "

'헐, 바쇼가 누군지 모르는데 책꽂이에서 제일 멋진 책 같아서 그냥 말해 버렸네. 점점 뻥이 커지고 있는데 어쩌지? 역시 내가 작가가 될 상인가? 개소리 - 얼른 화제를 바꿔야겠다. '

"구엘아 너는 정말 멋진 옷을 입었다 "

" 응? 진짜? 다른 애들은 내 화려한 옷을 보고 뭐 서커스 나가냐고 놀리고 장난을 쳐."

"아닌데. 니 옷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도마뱀의 비늘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아."

"고마워, 색깔 도자기 조각을 붙여 만든, 반짝거리고 화려한 우리 엄마 모습 그대로야.  엄마 보고 싶다."

그리고는 생각을 꺼버리고 바로 명랑하게 말했다.

"근데 나는 발이 너무 큰 게 불만이야. 발가락 다섯 개를 너무 크게 만들었어. 게다가 난 몸이 딱딱해서 움직일 수도 없잖아. 늘 팔굽혀 펴기 자세로 엎드려 고개 들고 있으려니 목이 빠질 것 같이 아프단 말이야. "

구엘이 오랜만에 입이 터져서 아기처럼 징징댔다.   

"아니야 나는 너의 큰 발이 맘에 들어. 나는 발가락이 가짜 별 같아.  별은 꼭지가 5개 있어야 별이잖아. 난 발가락이 4개 거든 그래서 숨기고 싶은데 숨길 수가 없어. 더 문제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벽을 탈 수도 설 수도 없단 거야. 그냥 발이라고 붙어 있을 뿐이지 장식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난 언제나 철퍼덕  퍼져 있어야 해. 내 몸이라고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니야.

몸속에는  좁쌀 같은 게 들어 있거든. 사람들은 조몰락거리며 즐거워 하지만 어떤 땐 발가락이 볼록하게 살이 쪘다가 머리가 터질 듯이 빽빽하다가 또 누가 만지면 머릿속 뇌가 다 빠져나가서 헐거덩 해지고 배가 꽉 차서 방귀가 나오려는 상태로 한 달씩도 있단다. 이런 몸으로 사는 것은 너무 가혹해."

동화뱀은 이때까지 참아왔다는 듯 불만을 줄줄줄 뱉어 냈다.

"그래도 자유롭고 좋은 거 같은데? "

"아니야, 진짜 최악은 꼬리 잡고 빙빙 돌리는 거야.  피가 머리로 다 쏠려서 토할 것 같고 눈알이 빠질 것 같아 미친다니까. 그렇다고 내 의지로 꼬리를 자를 수도 없이 되어 버렸잖아. 꼬리 없는 네가 훨씬 낫다. "

동화뱀이 구엘이의 짧닥막한 꼬리를 보았다.


"지금 나 꼬리 없다고 놀리는 거지? "

"아니야 무슨 소리야 진짜 부러워서 그래 - 긴 꼬리가 얼마나 귀찮은데."

"그래 꼬리가 짧으니 가볍고 좋다고 하자. 하지만 내 엉덩이 좀 봐라. 몽땅하니 진짜 도마뱀으로서 모양 빠지고 볼품없어.  너는 그런 멋진 꼬리를 가지고도 불만이라니.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게 아니고 꼬리가 길면 자를 수 있다야. 나는 자를 꼬리가 없다고."

구엘이 자기 꼬리에 대한 불만을 쏘아 부쳤다.


'하긴 우리에게 꼬리는 엄청난 자랑이지'

 

구엘이를 위로한 답시고 "밟힐 꼬리가 없으니까 더 좋은 거 아니야? "  농담을 했는데 발끈 한 구엘이의 속사포 랩을 들어야 했다.   

"내가 꼬리를 스스로 잘랐으면 자랑스럽지. 그런데 날 만드는 사람이 빨리 만드려고 꼬리를 안 만든 거야 재료비도 덜 든다고 - 처음부터 나는 꼬리가 없었고 나는 꼬리 있는 네가 무지 부럽다. 나는 꼬리 한 번 가져 봤으면 좋겠다. 그 말이지. "

말을 멈추고 잠깐 눈을 굴리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니 옷은 나이트 무대에 서는 트로트 가수 같아."  

"뭐라고?"  

 "ㅋㅋㅋ아니, 멋지다는 말이야. ㅋㅋ"

"야, 뭘 모르시네. 이 옷 그래도 진짜 비싸고 좋은 거야. 배 쪽이 하얀 거 알지. 완전 디테일 쩔잖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엘이가  귀를 막으며

"아아아- 배 이야기 하기 없기." 하더니

"내 배에는 날 만든 회사 이름이 찍혀 있어. 나를 식별하는 낙인 같아서 난 정말 싫어. 그리고 우리의 특기가 벽에 붙기인데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고무를 동그랗게 붙여 놓는 건 치욕이야.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절대 나 뒤집지 마." 구엘이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오호, 그래?  어디 한번 뒤집어 볼까? "동화뱀이 장난을 슬슬 걸기 시작했다.

"야 안돼 - 하하하 히히 크크크크 "

구엘이와 동화뱀은 서로 업고 업히고 간지럽히고 장난치며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

하도 웃어서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 숨이 차도록 딩굴었다. 

힘이 빠져서 둘 다 벌러덩 배를 내놓고 누웠다. 

하얀배도 납작한 배도 긴 꼬리도 몽땅 꼬리도 행복으로 가득 찼다. 

점점 날은 어두워져 깜깜한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장의 책들이 하나씩 나무로 변하더니 초록의 아름다운 숲이 되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타고 이끼 냄새가 났다. 

나무와 풀과 숲에는 이슬이 반짝이며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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