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문 터진 물건 5
천수를 다하고 죽은 여러 동물들이 컵으로 환생했다.
컵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얼룩말이
나의 얼룩무늬는 어디에 어떻게 갖다 놔도 잘 어울린단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앵무새가 뾰족한 부리로 질세라
" 아이고 그래봤자 컵이네요" 한다.
"너는 컵이 아니고 뭐 양푼이냐"
"더구나 네가 앉은 횟대는 나무도 아니고 그냥 나무 그림인걸 알지? 잘못하면 떨어진다 " ㅋㅋ 고양이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
발끈한 앵무새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야, 고양아, 니 주제나 잘 파악해라. 내가 이 말은 차마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너 꼬리 잘 못 달린 거 알지?"
" 재패니즈 밥테일이라고 턱허니 써놓고 꼬리가 그게 뭐냐 - 원래 걔네들은 꼬리가 몽당해서 귀여워야 하는데 기다란 니 꼬리를 봐라. 잘 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되었네. 아님 어디 근본 없는 잡종 냥이던지." 앵앵앵 틈을 안 주고 쏘아붙였다.
한마디 했다가 근본 없는 냥이가 될 판이다. 화가 나서 가르르 발톱을 새워 냥펀치 날리고 싶어도 컵에 붙은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 야, 이 멍청이 앵그리버드야- 잘난 척 하기는, 너도 똑 같이 그림이야 그냥 그림일 뿐이라고, 옷 색깔 좀 화려하고 인간 말 좀 흉내 낸다고 뭐 다를 줄 알았냐? " 옆에 있던 보스턴 테리어가 냥이 편을 들었다.
"야 이 쪼그만 게 눈땡아리만 방탱아리 만해 가지고 너는 뭐 인간들이 턱시도 신사니 어쩌니 하니까 니가 뭐 왕족이라도 되는 줄 알고 까부는구나. 나보고 멍청이라니 넌 그럼 개멍충이다.왈왈 " 화가 난 앵무새는 기가 꺾이기는커녕 너 잘 걸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보스턴 테리어의 자존심, 곧 흘러내릴것 같이 튀어나온 커다란 눈이 방탱아리가 되다니! 너무 화가 나 말할 기회를 노렸지만 앵무새는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다른 애들 말 못 하도록 안하무인, 지난 생의 앵무새 인생 장기자랑, 사람말 흉내내기를 재빨리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욧, 아아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놋 , 영숙아 핸드폰 그만해라. 학원 갈 시간이다. 영어공부해라. "
얼룩말이 히히이잉 컵컵컵 웃음이 터졌다.
앵무새는 눈을 내리뜨고
"난 너희들과 차원이 달라 너희들은 그저 캥캥 왈왈 짖기 나하고 야옹야옹 갈갈대기나 했지 나처럼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냐고" 화려한 깃털을 쓰다듬으며 기고 만장하다.
" 아, 얼룩말 님은 왜 웃어주고 그래요. 안 그래도 얄미운데"
" 웃기잖아. 히히 히힝 ㅋ크컵"
"어휴 내가 컵만 아니었어도 그냥 - 저것 깃털 날리도록 패 줄 수 있는데"
"새대가리 주제에 말 좀 한다고 진짜 못 봐주겠다" 답답한 냥이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앵무새를 당할 수가 없어진 고양이가 말했다.
"아, 원숭가 있었더라면 긴 팔로 저걸 한방 패줄 텐데 -"
"아니야 걔 팔 못써. 팔을 휙 올려서 손이 컵에 딱 붙어버렸잖아. 손잡이가 되버렸어 "
"원숭이 말도 하지 마라 - 걔는 재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아. 밤마다 뛰어내리고 도망가고 장난치고 끽끽꺄갸 머리 벅벅 긁어대서 시끄러워 죽을 뻔했는데 입양 가서 다행이지."
"아니야 원숭이가 좀 심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엄청 웃겼어. 겁나 빨라서 앵무새를 뒤통수를 치고 도망고 가고 하하하. 열받은 앵무새 날려고 푸덕거리던 거 생각해 봐라"
둘 사이의 대화에 갑자기 앵무새가 낮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근데 걔 혼자 있음 엄청 외로울 거 같아. 보고 싶다." "장난치고 노는게 나랑 잘 맞았는데 "
고개를 내려 꼬는 앵무새를 보고 강아지가 말했다.
"아니야 우리 봐라 여럿이 있으니까 싸움이나 하고 누가 봐주냐 - 걔는 원숭이 띠 주인에게 갔으니 잘 지낼 거다. 사랑받고 이쁨 받으면서." " 잘 된 거지."
"야 좀 똑 바로 서라고 내 엉덩이에 코 닦지 말고 - 아, 진짜 언제까지 똥꼬에 코를 박고 서있어야 하나? 이건 너무 모욕적이야 아무리 컵이라도 - 그러니까 옆으로 살짝씩 비켜서라고 머리를 쓰라고 머리를"
"얼룩말님, 방귀 뀌신 거예요 지금? 와 정말 미치겠다." " 왜 내가 말 뒤인가요, 자리 좀 바꿔 주세요"
"야, 니 똥구 냄새도 장난 아니거든 " 또 시끌시끌 난리다.
"그런데 우린 왜 컵이 되었었을까? "
"우리가 엄청 귀엽고 똑똑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 헐, 자뻑이 심하군. "
'아냐 사실이야" "인정, 나만 빼고"
"아니 얼룩말님은 멋져서." " 맞아"
"어쨋든 고맙다"
"근데 우리가 컵이됐잖아. 끓는 물을 니 속에 부어도 괜찮겠냐? 입천장 다 까진다니까."
"앵무새 털 다 뽑히는 거 아냐?"
"야, 뜨신 물 부어 놓고 우리는 익기 직전인데 자기 뜨겁다고 튀어나온 우리 머리랑 얼굴을 손잡이로 그냥 막 잡는다니까."
"음 아니 아니 - 그렇다고 해도 늘 우리 등과 얼굴을 쓰다듬어 주던 손과 같은 느낌이잖아. 난 부드럽고 좋은거 같아. "
갑자기 모두 조용해졌다.
얼룩말이 히히힝크크ㅡ크컵 헛기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