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문 터진 물건 3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나는 말인데 왜 제주에 있지 않고 이 복잡한 서울에 있는지 늘 불만이다.
차들은 너무 빨리 달리고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알아야 하고 뛰어다닐 넓은 들판도 없었서 답답하다.
그렇다고 제주로 갈 수도 없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 역을 피해서 제주도의 바람을 상상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빠르게 마주 오던 따릉이가 서울말을 확 치고 갔다.
아악 !! 서울말은 꽈당 넘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
머리가 엄청 아프다. 넘어진거 까지 기억이 난다.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응?
앞에 흰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이 부셨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기는 어디지?
앞에 서있는 말은 다리가 짧은 게 제주도 조랑말 같다. 풀 냄새가 확 났다. 풀밭에 누워 있는 건가?
그럼 여기가 제주도 인가? -
서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좀 더 침착하게 보니 말의 흰 갈기에 제주 올레라는 글씨가 있다.
제주도가 맞구나. 드디어 내가 제주도에 왔구나.
기쁜 나머지 서울 말은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이렇게 멋진 제주 말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니.
가슴이 설렜다.
제주말은 핑크색 꽃무늬에 화려한 레이스 갈기를 달았지만 도시 생활에 지친 듯한 빈약한 몸의 쓰러진 서울 말을 본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정신이 들도록 살짝 얼굴을 갖다 대본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
아, 이제 깨어나네.
갈 데가 없어 보인다.
자신의 풀밭으로 데려가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같이 갈래요? 물었는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앞장서서 걷는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제주말도 가슴이 뛴다.
길고 붉은 꼬리가 바짝 선 아주 건강한 엉덩이다.
몸을 장식한 붉은색 선은 세련되고 뭉툭한 입하며 빨간 눈이 매력적이다.
뒤 따라 걸어가며 제주 말의 냄새를 맡는다.
싱싱하고 건강한 냄새다.
서울에서는 한번 도 느껴 보지 못한 심장의 떨림이 느껴진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제주 말의 멋진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 듯하다.
이 일을 어쩌지?
제주말은 걸으며 생각한다.
말해야겠지? 고민이 된다.
말하면 나를 떠나겠지. 다들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속일 수는 없는 거지.
제주말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는 이렇게 멀쩡해 보이지만 바느질 마녀의 마법에 걸려 두 다리가 붙어서 태어났어.
걸을 수는 있지만 달릴 수 없는 말이 되었어.
마음껏 제주도의 들판을 달리고 싶은데 평생 이렇게 걸을 수밖에 없어."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보니 두 다리가 붙어 있다.
놀랐지만 담담한 척 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릴 수 없다는 건 감옥과 같은 거야.
저렇게 당당하고 멋진데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걸어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달리지 않으면 어때.
둘이 같이 있으면 나쁘지 않을 거야
서울 말은 갈등한다.
" 달리지 못하는 것이야 뭐 별것 아니야.
서울에서는 달릴 수 있어도 그냥 걸어 다녀야 하는 걸 뭐.
그리고 꼭 달려야 하나, 걸어 다녀도 되는 거야.
그 대신 너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잖아.
나는 납작하게 태어나서 비쩍 말라서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데 네가 나를 구해줬잖아.
너는 친절하고 좋은 말이야"
서울 말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줄줄 나와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제주말은 서울말의 말에 울컥했다.
가슴이 벅차고 용기가 생겼다.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말이구나.
나의 친구가 되어 줘."
제주말이 서울 말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으악!! 이게 무슨 일이지?
제주말의 그 희고 은은하던 몸이 붉은 꽃무늬가 가득한 나이가 든 할머니 말이 되고 말았다.
"으으 뭐야, 안돼! 안돼" 제주말이 놀라서 소리쳤다.
"마법은 내 다리만 묶어 놓은 게 아니야.
내가 사랑에 빠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이거였어."
서울말은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된 제주말 옆으로 다가가 갔다.
악!! -- 순간 몸에 이상한 느낌이 화르륵 오르며
분홍색의 아름답던 자신의 몸이
갈색의 남자 말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나이 든 늙은 할아버지 말이 되고 말았다.
제주말은 예쁜 서울말 대신 서있는 늙은 말을 보았다.
정신이 아뜩했다.
제주말은 할아버지 말에게 돌아서며 소리쳤다.
"너에게 까지 왜 이런 저주가 내게 내린 거야 "
어? 헉!! 그런데 이게 뭐지?
돌아서자 말자 다시 원래의 희고 젊은 말로 돌아온 것이다.
히히힝!!
정신을 차리고 서로 이쪽저쪽으로 돌아서 보았다.
"마주 보면 안 되는구나! "
하나 둘 셋 같이 돌아 서보니 둘 다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왼쪽으로 보면 안 돼!! 오른쪽으로만 봐야 하는구나"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
"그럼 마주 보지 않고 오른쪽으로만 보면 우리 모습 그대야."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기뻤다.
하지만 서로 두 눈을 마주 보며 얼굴을 보면서 목을 부비고 깃털을 핥아주고 콧김을 서로 주고받을 수가 없다.
두 다리를 꿰맨 실을 풀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볼 수 없는 마법도 풀 수가 없어 답답하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제주 말과 서울말은 서로 속으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러다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한쪽으로만 보고 살아도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문제는 이겨낼 수 있어!! "
늘 옆만 보고 사는 건 힘들었다.
벌써 가자미 눈이 될 판이었다.
너무 속상하다. 나도 모르게 돌아 서게 된다.
제주 말에게 안기고 비빈다.
너무 행복하다. 제주 말아 눈을 뜨면 안 돼.
꼭 감고 뜨지 마.
옆얼굴만 봐와서 몰랐던 멋진 이마와 눈과 촉촉한 콧등이 너무 좋았다.
눈을 감아야 한다.
서울말의 냄새라고 상상하자.
좀 이상한 냄새가 나지만 향기롭다고 생각하자.
거칠지 않아. 눈을 뜨면 안 돼.
우리에게 이건 너무 가혹하다.
힘들수록 서로 볼 수 없는 반쪽의 모습을 상상하며 둘의 사랑은 더 깊어가고 애틋했다.
어느 날 제주 말이 소리쳤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내 등에 타봐 - 서울 말을 업어 주었다. 너무 행복했다.
튼튼한 두 다리로 가볍게 서울 말을 업고 걸었다.
서울말은 높이 제주말의 등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너무나 행복했다.
마주 볼 수 없으면 어때 -
이렇게 옆으로 서서 오른쪽으로만 계속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가는 게 얼마나 이상적이야.
그리고 서로 배를 대고 서로 부비며 걸을 수도 있어.
좀 천천히 가!! 떨어지기 없기 -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마주 못 보면 어때 내가 너 뒤를 따라가면 되잖아.
너 똥꾸 냄새 너무 좋다.
제주말이 서울말 엉덩이에 코를 대고 장난을 친다
서울 말이 도망을 가고 제주말이 따라간다.
초원을 달리지는 못해도 둘은 다정히 걸어 다니며 풀도 뜯고 물도 마시고 행복했다.
서로 앞모습을 보고 싶은,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은 숨기고서.
어느 날 밤 제주말이 서울 말에게 말한다.
우리 누워서 자자.
말이 어떻게 누워서 잘 수 있어- 서서 자야지.
말은 아파야 눕는 거야 -
우리도 마음이 아프잖아.
서울말이 초원에 누웠다.
제주말이 서울말의 반대쪽을 눕는다.
서로 마주 얼굴이 보인다.
늘 보면서도 다 보지 못했던
그리운 그 얼굴이다.
서로의 코가 닿았다.
숨을 들이켜 냄새를 주고받았다.
턱을 코와 볼과 정수리를 핥아주었다.
오래 그렇게 서로 마주 누워 있다.
풀냄새가 가득한 바람이 낮게 불어온다.
귀를 간지럽히고 지나간다.
밤이 깊어지자 서울 말은 따뜻한 제주말의 배 위에 눕는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멀리 파도 소리가 들린다.
오름으로, 바다로 별똥별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