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문 터진 물건 9
내가 여기로 온 것은 벌써 10년도 더 된 것 같아. 기억도 가물가물해
대나무 소쿠리와 박달나무 도마와 같이 백화점에 있었어.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이고 예뻐라 하고 만져 보다가 가격을 보고는 빗자루가 뭐가 이래 비싸냐 하고는 바로 내려놓고 말았지. 청소기 있는데 빗자루 쓸 일이 뭐 별로 있어야지 - 이러면서.
그렇게 며칠을 이리저리 손만 타고 약간 포기 상태였을 때 "어머, 빗자루가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색동빗자루네 " 단번에 내 이름을 부르고는 가격을 보고 살짝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건 비싼 것이 아니라며 기분 좋게 나를 집으로 데리고 왔어.
나를 들고 여기저기 쓸어 보고는 부드럽게 잘 쓸린다며, 단단하고 꽉 찬 나의 갈대 잎을 칭찬했어.
그런데 내가 닳을 까봐 아끼는 건지. 예쁜 장식품으로 생각한 건지 모르지만 청소는 청소기가 다하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였어. 가끔 기억이 난 듯 빗자루 질을 하고는 여전히 나를 만지고 이리보고 저리 보고 예쁘다고 했지. 그러니까 난 이 집에 빗자루로 왔지만 일은 하나도 안 해도 되는 거의 공주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작고 예쁜 아기 빗자루 하나가 집으로 온 거야. 딱 봐도 좀 남루한 싸구려 빗자루야.
그런데 그걸 옆에 두고 지우개 가루며 먼지를 쓰는 데 괜히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났어.
그런 내 맘도 모르고 그 아기 빗자루를 다 쓰고 나면 항상 내 위에 포개 놓는 거야.
어쩌다 보니 내가 애를 안고 있는 엄마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어. 처음엔 엄청 불쾌했어. 그런데 매일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나 봐. 없으면 허전하고 찾게 되었어. 센 갈댓잎에다 엉성하고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다정하고 귀엽고 앙증맞았어.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친해져 갔어.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조용한 오후였어. 그냥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 아주 오래전 나를 만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용조용하기 시작했어.
"할아버지는 평생 빗자루를 만들어 파셨는데 요즘은 청소기를 쓰는 데다 플라스틱 빗자루에 중국에서 너처럼 싼 플라스틱 빗자루가 들어오면서 팔 곳이 없어졌다고 했거든.
그래도 갈대가 올라오면 뽑아서 찌고 말리고 빗자루를 엮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지. 어쩌면 지금쯤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중국에서 온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미안할 필요는 없어."
"할아버지가 갓 결혼을 했을 때 너무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살았대. 거기는 강변이라 갈대가 많았는데 아내를 위해 빗자루를 만들어서 선물해야지 맘먹었대. 갈대를 뽑을 때부터 오색 실로 빗자루를 엮을 때까지 고운 각시와 귀여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 색동 빗자루라고 했어. 그 빗자루를 받고 아내가 너무 기뻐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셨어. 사람들이 그 빗자루를 보고 감탄하며 너도 나도 주문을 했대. 그렇게 평생 빗자루를 엮어서 파는 일을 하시게 되었대. 지금도 색동 빗자루를 엮으면 언제나 그때 기뻐하던 아내를 떠 올린다고 하셨어. 나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기 빗자루가 이야기를 시작했어.
"저는 중국에서 빗자루 만드는 공장에서 만들어졌어요. 큰 박스에 담겨서 배에 실린 저는 가족들과 친구들이랑 함께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내리자 말자 우리는 여기저기 가게로 흩어져 갔는데 그때 엄마 아빠와 헤어지게 되었어요. 친구들이 있었지만 너무 무서웠어요. 밤이면 더 겁이 나서 울었는데 시끄럽다고 옆에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가 그만 좀 울어라고 그럴 거면 중국으로 가라고 했어요. 어느 날 ' 어머 너무 귀여운 빗자루야. 왜 이렇게 싸냐. 색동빗자루 대신 쓰면 되겠다' 하고는 어떤 부인이 이리저리 보더니 사서는 집으로 온 거예요."
아기 빗자루를 그동안 괜히 질투하고 좀 싫어했던 게 미안했어.
아기 빗자루는 약간 울먹이며 꼭꼭 숨기고 있던 엄마 아빠와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줬어.
긴 대나무 손잡이를 꽂아서 만든 잘 생기고 힘이 세어 보이는 아빠마당 빗자루와 갈대 잎이 치마폭처럼 풍성하게 펼쳐진 엄마, 그 사이에 귀여운 아기 빗자루가 나란히 있는 행복한 사진이었어.
조금 마음이 아팠어. 그냥 아기 빗자루를 꼭 안으며 말했어.
" 엄마 아빠도 어느 집 마당이나 넓은 방에서 쓱쓱 먼지와 쓰레기를 쓸면서 행복하게 지내실 거야. "
"나를 잊지는 않겠지요?"
"그럼 너를 잊지 않지. 네가 엄마 아빠를 잊지 않고 있는 것처럼"
"너도 여기서 씩씩하게 잘 살아야 엄마 아빠가 안심하실 거야. 이제는 우리가 한 가족이야. 너는 귀여운 막내, 아기 빗자루야."
아기 빗자루의 두 손을 잡았지.
" 자자 - 우리도 가족이 되었으니 같이 가족사진 한 장 찍자. 쓰레받기야 너도 와 - "
"어머 나도 끼워 주는 거야? 아까는 울더니 뭐야 엄청 이쁜 척하네 - "
놀리는 쓰레받기의 말에 아기 빗자루가 웃었어.
찰칵!!
요즘 난 말이 좀 많아졌고 참 행복해. 가족이 생겼잖아. ㅋㅋ 혼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고마운 아기빗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