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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9. 2024

인간지능 막대기

죽은 나무와 산나무 9

  

넝쿨 식물을 올리는 망을 걸쳐 놓을 지지 막대가 필요했다. 여기저기 뭐 없나 찾던 중 학교 뒷 담장 아래서 이 막대기를 발견했다. 끝에 구멍이 뚫린 것도 가운데 못자국이 있는 것도 옛날에 궤도 걸이로 썼던 거 같아서 더 정겹다. 이제는 학교 자료실에 궤도 같은 건 없다.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가 시디나 디스켓에서 인터넷으로 갔다. 오래된 썩은 껍질을 깎아 다듬어 주니 멀끔하고 튼튼한 막대기가 되었다.       

  

우리 집으로 온 막대기는 처음엔 넝쿨 올리는 지지대로 쓰다가 실내에서 빨래 말릴 때 건조대에 얹어 힘을 받는 버팀목으로, 손이 안 닿는 뒤베란다 창 밀어서 열고 닫기, 세탁기나 냉장고 뒤, 밑에 떨어진 물건, 팔이 빠져라 끼어서 낑낑대도 못 꺼낼 때 막대기로 밀어 꺼내기, 청소기는 죽었다 깨나도 갈 수 없는 냉장고 밑, 낮은 가구 밑, 틈을 부직포 매서 먼지 청소하기. 양쪽을 걸쳐 무시래기 걸쳐 말리기. 

이 막대는 높은 데, 먼 데, 좁은 데를 갈 수 있고 버티기와 힘주기를 다 할 수 있다.


평소엔 구석 가만히 서 있다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바로 달려 나와 자기 할 일을 척척해내는 쓰는 사람에 따라 쓰이는 곳에 따라 용도변경이 무한 가능한 진심 인간지능 막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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