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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8. 2024

진심 토란

죽은 나무와 산 나무  8

 학교 텃밭에 토란을 심었더니 얼마나 무성히 잘 자라는지 텃밭 식물들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넓은 잎과 큰 키로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토란 잎 우산을 쓰기도 하고 은색 물방울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게 신기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내내 교실 창가에는 토란 줄기 말리는 바구니가 널려 있고 토란 말리는 냄새가 났다. 


가을배추를 심으려고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캤다. 무성한 잎만큼 토란알도 크고 많았다. 교실바닥에 널어놓고 겨울방학을 했는데 개학해서 보니 그동안 뭔 일이 있었는지 토란이 몽땅 썩어 있었다. 너무 아까워서 애석해하며 토란 알을 밭에다 버렸다. 싹이 나오려는 듯 단단한 토란 알 하나가 있어 너라도 살아 다행이라고 집으로 가져와 땅에 심으면 죽을 거 같아서 물에 담가 놨다. 물을 좋아하니까 물에서도 자랄 것 같았다.

          

엄지만 한 토란 알에 작고 귀여운 흰 뿌리가 나오고 자라고 그다음엔 더 작고 더 귀여운 토란잎이 떼르르 말린 채 쏙 올라왔다. 너무 예쁘다. 숟가락만 한 잎 하나를 머리에 달고 길고 가는 줄기가 누가 쭉 뽑아 올린 듯 금방 자란다. 그렇게 곧게 한 동안 묘기 부리듯 서있다 옆으로 살짝 기운다. 줄기 안쪽에서 다음 잎이 나오는 것이다. 순서를 알고 새 잎을 위해 비켜주는 것이다.


 속 잎이 곧게 다자라면 밖의 잎은 마른다. 그다음 속잎이 나오고 밖의 잎이 자리를 내주는 일을 반복한다. 작은 흙덩어리 같던 토란 알에서 2월에서 6월 초까지 12번이나 새 잎을 피워 냈다. 놀라운 일이다. 잎이 나올 때마다 너무 예뻐서 사진도 찍어주고 물방울을 얹어 개인기를 뽐내게도 해줬다.      


탈모로 머리카락이 빠지듯 흰 잔뿌리들이 힘을 잃고 썩어 없어지면서 토란 알의 작은 몸도 점점 썩어 갔다. 끝만 남았다. 더 이상은 힘들겠다. 그동안 너무 잘해 줬어. 고마워. 

12개의 잎을 올리며 마지막 까지 자신을 다 소진한 토란, 뭉개진 몸 속에는 나올 준비를 하고 있던 13번째 아기 잎이 쪼그리고 있었다. 토란을 버리고 유리병을 씻는데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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