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토란

죽은 나무와 산 나무 8

by 신정애

학교 텃밭에 토란을 심었더니 얼마나 무성히 잘 자라는지 텃밭 식물들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넓은 잎과 큰 키로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토란 잎 우산을 쓰기도 하고 은색 물방울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게 신기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내내 교실 창가에는 토란 줄기 말리는 바구니가 널려 있고 토란 말리는 냄새가 났다.

KakaoTalk_20240808_161341042_17.jpg

가을배추를 심으려고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캤다. 무성한 잎만큼 토란알도 크고 많았다. 교실바닥에 널어놓고 겨울방학을 했는데 개학해서 보니 그동안 뭔 일이 있었는지 토란이 몽땅 썩어 있었다. 너무 아까워서 애석해하며 토란 알을 밭에다 버렸다. 싹이 나오려는 듯 단단한 토란 알 하나가 있어 너라도 살아 다행이라고 집으로 가져와 땅에 심으면 죽을 거 같아서 물에 담가 놨다. 물을 좋아하니까 물에서도 자랄 것 같았다.


IMG_4790.JPG

엄지만 한 토란 알에 작고 귀여운 흰 뿌리가 나오고 자라고 그다음엔 더 작고 더 귀여운 토란잎이 떼르르 말린 채 쏙 올라왔다. 너무 예쁘다. 숟가락만 한 잎 하나를 머리에 달고 길고 가는 줄기가 누가 쭉 뽑아 올린 듯 금방 자란다. 그렇게 곧게 한 동안 묘기 부리듯 서있다 옆으로 살짝 기운다. 줄기 안쪽에서 다음 잎이 나오는 것이다. 순서를 알고 새 잎을 위해 비켜주는 것이다.

IMG_4787.JPG

속 잎이 곧게 다자라면 밖의 잎은 마른다. 그다음 속잎이 나오고 밖의 잎이 자리를 내주는 일을 반복한다. 작은 흙덩어리 같던 토란 알에서 2월에서 6월 초까지 12번이나 새 잎을 피워 냈다. 놀라운 일이다. 잎이 나올 때마다 너무 예뻐서 사진도 찍어주고 물방울을 얹어 개인기를 뽐내게도 해줬다.

KakaoTalk_20240809_201017264_01.jpg

탈모로 머리카락이 빠지듯 흰 잔뿌리들이 힘을 잃고 썩어 없어지면서 토란 알의 작은 몸도 점점 썩어 갔다. 끝만 남았다. 더 이상은 힘들겠다. 그동안 너무 잘해 줬어. 고마워.

12개의 잎을 올리며 마지막 까지 자신을 다 소진한 토란, 뭉개진 몸 속에는 나올 준비를 하고 있던 13번째 아기 잎이 쪼그리고 있었다. 토란을 버리고 유리병을 씻는데 마음이 숙연해졌다.

IMG_4816.JPG

청화백자 토란문병 -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