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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24. 2024

공기 한 판,  됐나?

죽은 나무와 산 나무/ 칠엽수 열매  14

집 앞에 공원이랄 것도 없는 버려진 작은 공터에 칠엽수 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가을에 그 나무 밑에 떨어진 열매가 너무 똘똘해서 한가득 주워왔다. 처음엔 신기해서 한 두 개만 주우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열매를 따라가며 자꾸 줍게 되었다. 먹지도 못하는 것 뭐 하려고 그렇게 많이 줍느냐 그만 주워라 잔소리를 들었지만 주머니가 가득 묵직한 게 부자 된 기분이었다.


밤을 닮았지만 밤은 아니고 꿀밤과는 또 다르다. 크기도 딱 밤 만하고 색깔도 모양도 비슷한데 껍질이 초콜릿색으로 반질반질하다. 울퉁불퉁하고 엉덩이는 살짝 까칠하다. 밤이나 꿀밤은 마르면 속 알맹이도 같이 말라서 공간이 생겨서 흔들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고 가벼워지는데 몇 년이 지나도 칠엽수 열매는 껍질과 알맹이가 밀착되어 있고 무게도 큰 차이가 없다.  벌레가 쓸까 걱정을 했는데 희한하게 벌레도 안 먹는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다섯 개 공기는 늘 하기는 했지만 주로 추워서 마당에 못 나가는 겨울, 방에서 많이 했던 놀이다. 손안에 딱 들어오는 작고 예쁜 돌멩이 다섯 개 모아서 주머니나 필통에 넣어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 공기 할래? 그래, 하자 - 바로 공깃돌을 꺼내서 했다. 


대신 여름에는 공깃돌 수십 개를 땅에 펼쳐 놓고 따먹는 공기놀이를 했다. 치마가 무겁도록 그랑 가에서 주워온 공깃돌을 돌멩이를 나무 그늘 밑에 쏟아 적당한 간격으로 깔고 친구랑 마주 앉아 따먹기 했었다. 칠엽수 열매는 서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게 공깃돌을 꼭 닮았다.  


집에 가져온 칠엽수 열매를 주머니에 넣어 매달아 뒀다가 가끔 꺼내 펼쳐 놓고 혼자 공기놀이를 한다. 친구 차례에도 내가 한다. 혼자서 1인 2역을 하며 논다. 

콩, 콩 튀는 것을 잡고, 멀리 있는 것을 끌어 오기, 타-탁 콩 주워 먹기도 해 본다. 아직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혼자 좋아한다. 식구들은 나보고 애 같다고 웃기나 한다. 나 같은 옛날 사람 누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한판 붙어 보고.


좀 푸석해지기는 했는지만 무게와 크기와 탄력은 끄떡 없다. 나도 질 수 없지.

사진 찍는다고 꺼낸 김에 오늘도 공기 한 판,  됐나? 

늙은 손이지만 재미있게 놀아주는 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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