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약속 장소까지 차분히 운전해서 가고, 미리 도착해서 나만의 시간을 약간 가질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지면 반갑다. 모두가 아직 곤히 잠을 자는 동안 혼자 거실에 내려와서 차를 마시며 고요에 잠기는 시간이 좋다. 하루 어느 때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한다. 커피 한잔을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나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도, 하물며 잔디도 멈춰있고, 햇살과 새벽빛은 아무리 움직여도 고요하다.
- 오늘 뭐 했어?
- 앉아 있었어.
- 응, 그래서 앉아서 뭐 했어?
- 그냥 앉아 있었어.
- 앉아서 뭔갈 하지 않았을까? 그냥 앉아만 있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내 바로 앞에 빨간 신호등 불이 켜졌다. 운전을 멈추고 파란 불을 기다린다. 평소보다 훌쩍 따듯해진 볕과 아직 시원한 공기가 상쾌한 날이었다. 사방이 막힌 차 안으로 들어온 태양볕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 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린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랜만에 약간 덥다 싶게 느껴졌다. 곧 다가올 후덥지근함을 미리 짐작하며 불쾌감을 느끼려던 참이다.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펼쳐져 있던 횡단보도에 가로 멈춰 섰다.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어도 오토바이는 출발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많은 나는 굳이 클랙션을 누를 일이 없다. 고개를 숙인 채 출발할 줄을 모르는 그의 모습을 보았고, 백미러로 비추이는 뒤차들을 의식했다. 마치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듯 작은 소리의 스타카토 경적을 결국엔 울렸다.
검은색 패딩에 검은색 바지, 검정 운동화 그리고 검은 오토바이. 게다가 검은 머리. 창가에 팔을 걸치고 햇볕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고개를 돌린다. 그는 경적 소리를 듣고도 반사적으로 튕겨나가지 않았다. 여유롭게 고개를 돌리며 매우 커다랗고 부드러운 미소를 담은 인사를 건네어 주었다. 상황은 그를 당황하게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허공에 허둥지둥 흩어져 버리는 대신, 나를 향해 따듯한 눈 맞춤으로 모였다. 눈빛이 부드러웠고, 입은 미소 이상의 것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 여유가 좋다. 단 몇 초의 시간 동안이지만, 그 남자의 여유는 여운이 짙다. 내가 그의 미소를 받은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삶에서 흐르는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