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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매너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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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Apr 24. 2023

내 기억 속 선생님들.

"미선이 이리로 와봐."


점심시간, 문틀에 기대서서 등을 문지르며 혼자 생각에 빠져있는 나를 부르셨다.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좁은 폭의 치마 정장을 주로 입으셨던 키가 아주 작은 담임 선생님이시다. 보폭이 좁은 걸음으로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어떻게 한숨에 내가 서 있 교실 뒷문까지 행차를 하신 건지 홀연히 다가오셔서는 내 어깨를 살짝 밀어서 등을 문틀에서 떼게 하셨다. 하얀 얼굴에, 까만 아이라인이 마치 눈에 밑줄을 그어 놓은 것처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매서운 눈빛을 하신 분이다. 키만 한 몽둥이를 하루가 멀다 하고 휘두르던 그 손이 나를 향해 다가왔고, 이번엔 하나가 아닌 두 팔을 어깨까지 끌어올려서 나의 목 뒷덜미 쪽 옷을 뒤집어 까셨다.


"이 옷 어디 건지 좀 보자."


아이들을 단체로 세우고, 뉘이고, 앉히고, 젖히고, 별에 별 자세로 모양을 만들어 놓고, 시답잖은 회초리 대신,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시던 분이었다. 하얀 피부, 작은 체구에서 어찌 그런 에너지를 주체하시질 못해서 몽둥이를 뻗쳐야만 하셨는지 공포는 선생님이 펼치는 그물이었다.


그런 선생님은 내 새 옷의 메이커 이름을 궁금해하셨다. 당신의 딸도 내 또래였는데, 그 아이를 사 입히시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이런 사람도 엄마였구나. 




"우리 반 반장이에요, 선생님들. 너무 예쁘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반장 선거도 하지 않고 나는 반장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왜 반장이 되었는지 영문도 모르고 쫄래쫄래 따라나선 나를 교무실로 이끄셨다. 마치 홈쇼핑 호스트처럼 카랑카랑한 톤으로, 모여 앉아 계시던 여선생님들께 내 자랑을 하셨다. 난생처음 보는 나의 어디를 보고 이렇게까지 자랑을 하시는 건지, 포장만 번드르르한 상품이 된 기분이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이었다. 전교 9등으로 입학을 했다는 이유로 9반 반장이 되었다. 우리 반 부반장은 전교 10등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그 아이와 나는 둘 다 내성적이었고, 어느 단체의 장으로 어울릴만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우리 둘은 반장과 부반장이 하기 싫다며 잔뜩 졸아서는 울먹거리며 함께 집에 가곤 했다.


중학교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른 후 선생님은 나를 꼴도 보기 싫어하셨다. 왜냐면 전교 9등으로 들어와서는 전교 81등으로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팔자에도 없는 반장 노릇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해서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입학시험 직전 긴 겨울 방학 동안 별생각 없이 어쩌다가 문제집을 13권 풀었는데, 그게 얼떨결에 공부가 되었나 보다. 전교 9 등이 전교 81 등으로 제자리를 찾아간 성적표를 보면서 나는 자동으로 '구, 구, 팔십일'을 되뇌었다. 9반까지 있는 학교에서,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9등쯤 하던 내가, 하필 전교 9등을 해서, 난생처음 반장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이 아이러니한 숫자 9가 다시 9를 만나서 '9x9=81'이 된 게 재미있는 노릇이었다.


그날은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두 남아서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을 꾸며야 했다. 당시에는 게시판을 얼마나 어떻게 잘 꾸몄는지 심사를 해서 상을 주는 그런 행사가 학교마다 있었다. 뭐든 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영어 발음도 똑 부러지셨던 담임 선생님은 게시판 장식도 우리 반이 제일 잘해서 1등을 거머쥐어야 했다.


나보고 색칠을 하라고 하셔서 손바닥 만한 그림 색을 칠하기 시작했는데 대뜸 경멸하는 말투로 언성을 높이셨다. 홈쇼핑 쇼 호스트는 친절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상품이 그렇게 미워서 째려보면 누가 물건을 살까?


"얘, 넌 장래에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애가, 색칠을 그 수준으로 밖에 못하니? 촌스럽게 그렇게 꼭꼭 눌러서 칠하면 어떻게 해!"




아빠가 담임 선생님을 두 번째로 만나고 돌아오셨다. 초등학생 때 전국을 휘날리던 치맛바람도 중학생이 되어서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덩달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평생 더 이상 마주칠 일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나의 담임 선생님을 아빠는 두 번이나 찾아 나셨다. 아빠는 선생님께서 오늘은 아주 친절하셨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


전학 문제로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러 학교에 간 날, 선생님은 아빠 형식적 인사를 하셨고, 마치 창구에 요금 납부나 하러 온 손님을 맞듯 용건만 간단히 처리하시고 돌려보내셨나 보다. 예상치 못한 냉랭한 대접을 받고 오신 아빠는 내심 나의 학교 생활이 궁금해지셨고, 걱정이 되었다고 하셨다. 전학 서류 때문에 두 번째로 다시 담임 선생님을 찾은 날, 선생님은 아빠께 첫 번째 때와는 사뭇 다르게 매우 친절하셨다고 하셨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미소가 온화하고 말씨가 부드러운 분이셨는데,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그 미소를 이번에는 아빠께도 기꺼이 보여주셨나 보다. 왜 지난번에는 아끼셨을까?


"저는 미선이가 그 미선이인 줄 모르고......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다른 미선이 아버님 이신줄 알았어요!"


우리 반에는 나와 이름이 같은 아이가 하나 더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전학을 가는 아이가 그 아이인 줄 아셨다고 했다.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고, 같은 반 친구지만 언니 같은 인상을 풍기는 아이였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너그러운 그 아이의 말투와 편안함이 상대를 안심하게 하곤 했다. 나는 그 아이처럼 성숙하진 않았지만, 얌전하고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한 아이였다. 그 아이도 미선이고 나도 미선이 인 것처럼, 이름처럼 똑같은 교복을 입은 우리는 멀리서 보면 성숙하거나 말거나 차이와 다름이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는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고, 나는 잘하는 축이었는데, 이 점이 굳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그 아이는 남아 있을 아이고, 나는 곧 떠날 사람이었다. 어차피 며칠 후면 떠나버리는 아이가, 반 평균 성적을 올려주던 아이 었던 것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선생님은 불친절했던 자신의 첫 대면을 변명까지 하시며 학부형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하셨어야만 했을까.




입시가 다가올수록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정석' 문제집이 바이블이었던 때였다. 인생에 한 번쯤 읽고는 싶지만 이상하게 손에 쥐어지지 않는 베스트셀러. 그 문제집을 취미처럼 푸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에게 수학은 에베레스트 산이었다.


수능이 코 앞에 놓여 발 등에 불이 떨어진 학년은 아직 아니었고, 수학은 언제나 어려웠고, 날은 점점 풀려서 따듯해져 갔다. 봄바람이 마음을 살랑이게 할수록 수학 시간은 더더욱 지루해져 갔다. 아이들 중 소곤대며 잡담을 나누는 아이들이 생겨났지만, 선생님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셨다. 중년 여성에게 어울리는 묘사는 아닐 테지만, 흰 피부에 긴 머리, 그리고 예쁘장한 미모에 표정이 차가운 여자 수학 선생님이셨다.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중무장을 하신 분이셨다. 선생님의 무반응은 아이들에게는 잡담을 허락하는 무언의 허가와도 같았다. 소소한 잡담이 도떼기시장처럼 요란한 소음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갈수록 교실 분위기는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중무장을 한 선생님은 우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표정은 평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돼먹은 학생들의 태도에 맞불을 붙일 정도로 열불이 끌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엎드려 자거나 커피숍에 온 마냥 수다를 떨었다. 떠들거나 말거나, 들리거나 말거나, 아이들만큼이나 조금의 배려도 없었던 선생님의 음성은 한결같이 나지막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침이건 오후건 춘곤증을 불러왔고,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수학에 대한 마지막 의지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셨지만 항상 칠판과 학생들 쪽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존댓말로 끊임없이 설명을 하셨다. 선생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허물어지는 모래성을 계속해서 쌓아 올리시다가 종이 울리면, 교과서를 옆에 끼고 인형처럼 유유히 나가셨다. 어느 날은 목이 아프셨는지, 아니면 말을 해도 아이들 귀에 들리지 않을 테니 목소리가 의미 없다고 느끼신 건지, 말씀도 없이 칠판만 몇 번 가득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하시다가 나가셨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은 열심히 하셨지만, 배우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선생님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화를 내실 때가 몇 번 있으시긴 했는데, 표정은 무표정 그대로였다. 매일같이 로봇처럼 학교에 출근을 해서, 칠판 가득 예쁜 글씨와 숫자를 가득 썼다가 지웠다가 나가시는 삶을 반복하는 선생님을 수없이 바라보았다. 신념도 열정도, 그리고 재미도 없어 보이는 그 수학 선생님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것이 참 허무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해서 선생님 반 학부형들이 돈을 모아서 소형 자동차를 선물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나 된 아이들이니 아예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진실이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나? 그럼 콧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실소가 터지기도 하지 않나? 여전히 똑같은 무표정으로 로봇처럼 움직이는 선생님은, 차를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고. 주거나 말거나, 떠들거나 말거나.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같이 보였다. 헛소문이었나?




나는 미대생이었다. 때로는 학생들이 직접 교수실에 찾아가서 개인 면담을 하기도 했다. J 교수님은 유명하셨다. 표정이 온화하고, 행동과 말투가 느긋하셨다. 교수님 중 가장 젊으셨기에 우리끼리 더러 막내 교수님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 느린 모습에 막내라는 타이틀을 오버랩해서 몇몇의 아이들은 그가 귀엽다고 했었다.


"너네 그거 알지? J 교수님 교수실 엄청 따듯하잖아. 면담 가서 작품 설명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눈이 반쯤 감기셔서 졸고 계시는 거 너무 귀엽지 않니?"


교수님은 이렇게 유명하셨다.




교직에 평생 몸 담으시며 선생님들이 만나는 아이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선생님들이 기억하시는 아이들은 그중 일부이지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만난 선생님의 대부분을 기억한다. 선생님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어렴풋이 기억하시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에 선생님은 생각보다 자세하다. 선생님은 한 반에 수십 명의 아이들을 앉혀 놓고 시선을 쪼개어 나누어 주셨지만, 그동안 우리는 오로지 선생님만 바라보았다. 우리는 때론 관찰자가 되어 선생님이란 사람을 한 인간으로서 응시했다. 학생이었던 그들은 모두 이제 어른이 되었다. 학부형이 된 나는 나의 아이들의 선생님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때처럼 악의 없는 눈과 마음을 더 이상 지니지 않은 성인인 우리는 내 자식들의 선생님들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선생과 학생 그리고 학부형 사이에 놓은 불신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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