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그녀의 이름은 매우 복잡하다.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기에, 이름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와 나는 하루에 많으면 세 번씩이나 마주치고, 그때마다 반갑고 다정하게 짧은 인사말이나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인도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다. 그녀는 프랑스에 대한 이질감을 드러내며, 나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이야기를 더러 한다. 우리는 동양인이고, 프랑스는 우리가 택한 나라이다. 우리는 딱 이 정도 사이이다.
우리가 항상 만나는 장소는 아이들의 학교 앞이다. 그녀의 아이들과 나의 아이들은 점심 급식을 먹지 않는 대신,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날이 많다. 덕분에 우리는 아침, 점심, 방과 후, 시도 때도 없이 인사를 하며 지나칠 기회가 많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서서 종종 대화를 나눈다. 추위에 민감한 그녀는 항상 나에게 날씨에 대해서 말한다. 그녀는 그날그날의 날씨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꿰고 있다. 그녀에게 날씨는 하루의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 같다.
하늘을 응시하며 날씨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상체가 나에게 살짝 기울어 있다. 마치 자신이 쥐고 있는 비밀의 문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조심히 돌리듯이 손가락을 돌리면, 그녀가 가리키는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친다. 그녀의 눈은 홍채가 너무 짙어서 동공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고 정직하다. 그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 순간 '탈칵'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렸다. 그녀의 입에서 날씨 정보가 줄줄 나오기 시작한다. 날씨는 그녀를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오늘의 날씨는 너무 춥다. 아직 너무 춥거나 따듯해지려면 며칠 더 지나야 한다. 날씨가 따뜻해도 여전히 바람이 차거나, 구름이 끼어서 언제나 '여전히' 아직이다. 그녀가 여름을 기다리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딱히 여름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날씨를 매일같이 확인하지 않고 있었지? 날씨야 어떻거나 말거나 예전만큼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이들이 부쩍 컸구나 자각했다.
나도 매일마다 면밀히 날씨를 챙겼었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프랑스의 날씨 탓도 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이기에 프랑스의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비를 맞으며 논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어린아이들은 수시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아이가 한번 아프면 힘들어 보채는 아이도 고생이고, 밤 새 쪽잠 자며 아이의 막힌 코와 오르락 거리는 열과 함께 보초를 서는 부모도 고생이다. 나에게도 그날의 날씨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정보였다. 아이가 한 번이라도 덜 아프기를 기원하며, 모자부터 외투, 장화 등 모든 것들이 날씨에 맞춰 레고에 끼워 맞추듯 날씨 변화에 따라 아이의 몸에 끼워 맞춘다.
아이들이 컸다. 아침이면 스스로 계절에 맞게 옷을 찾아 입고 각자의 방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조금 춥게 입거나 조금 덥게 입는다고 해서 쉽게 아프거나 걱정해야 할 나이도 이제 지났다. 까먹고 며칠씩 날씨를 챙겨보지 않는 날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
마치 쌀 한주먹을 던져 점괘를 보듯, 해와 구름이 흩뿌려진 일기 예보 화면을 분석하며 하루를 점치던 시절, 나도 인도 여자만큼 주의의 엄마들에게 날씨를 그렇게도 알려주고 다녔었다. 지금의 그녀와 꼭 같이 그때의 나도, '내가 그러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엄마이니까 모두가 나만큼 날씨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스스로를 날씨에 조종당하도록 기꺼이 내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날씨를 말하고 다녔다.
나에게 날씨가 중요했던 것도 맞지만, 나에겐 날씨 말고는 할 얘기가 없던 것도 맞다.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나의 이야기는 너무 개인적이거나, 너무 아이들에 관한 엄마 이야기 이거나였다.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였다.
매일같이 나에게 날씨를 모이 주듯 주는 인도 엄마를 보며, 그녀의 막내 쌍둥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그녀도 날씨가 기준인 세상에서 벗어 나올 수 있겠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전부인 선한 엄마의 세상에서 그녀가 자신의 복잡한 이름을 찾을 날이 곧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그녀의 배가 꽤 불러있어 보였다. 임신 5개월 막바지란다. 날씨와 그녀는 아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하다. 엄마들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다. 엄마들은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연습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