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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매너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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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Apr 11. 2023

대화의 패턴 2

내가 공허한 만큼 그들도 공허하다.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흥미롭지 않다. 사적인 만남은 대게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난다. 서로 말을 하기 위해서 약속을 잡는다.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또 얘기를 나눈다. 전화 통화를 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상대의 말이 나에게 흥미롭게 여겨지지 않는 만큼, 나의 말도 상대에게 흥미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의 별 것 없는 일상과 하찮은 생각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아...... 상대가 나의 수다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눈치챘더라면......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소릴 한 거지 싶다. 만남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더 크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식의 대화에 진절머리 난다. 더 이상 이런 류의 만남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류의 수다를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상대의 수준을 의심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나를 조금 더 고차원 적인 자리에 앉혀 놓는다. 그러다 다시 상대를 찾고 여전히 후에 닥칠 공허함을 잊은 척하며 또다시 자신의 소리를 서로에게 퍼붓는다.


나는 안다. 상대방이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지만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꺼내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주저하다가도 결국엔 꺼내본다. 남이 함부로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문제들을 말이다.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연한 기대를 걸어 본다. 내가 그들의 문제를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과, 그들이 나의 문제를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문제라는 착각에 빠진다. 내가 내뱉는 소리들이 결국엔 덫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물꼬가 터진 대화가 어디론가 치닫는다. 상대는 내가 건 기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나의 얘기를 하고, 그는 그의 얘기를 한다.


때마침, 상대의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소리는 상대를 구제해 주기도 했지만, 나의 정신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상대를 바라본다. 나는 드디어 평정을 찾는다. 나는 왜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게 만든 나의 문제를 이렇게 좌판에 깔듯 수다거리로 펼쳐 놓았던 걸까. 통화가 끝나고 나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다행히도 통화를 마친 상대도 방금 함께 핸드폰 너머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과 그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운 대화거리로 던진다. 나의 이야기는, 나의 문제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문제는 그냥 그렇고 그런 남얘기에 불과했다. 나의 전화벨은 언제 울리나.


해도 해도 할 말이 끝이 없는 것은 우리의 대화가 패턴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해도 빈 껍질 같은 이유는 대화의 방식이 패턴 속에서만 맴돌기 때문이다. 수다가 난자했던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공허한 이유는 그 어느 누구도 그 패턴을 깨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패턴은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만, 나는 나의 패턴 속에 강렬하게 머물고 싶다. 그것은 나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패턴은 반복되기를 원한다. 반복이 없는 패턴은 더 이상 패턴이 아니다. 나는 그 패턴 속에 생각을 가두고, 생각은 패턴화 되어 언어로 흘러나온다.


상대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을 때 나의 마음은 더 크게 열린다. 결국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분 못하고 다 한다. 이상하게도 상대가 내 말을 반박할 때면 더더욱 침을 튀기며 나의 치부 까지도 드러내 버리고 만다. 비밀은 사라지고, 승자만 남는다. 더 많은 말을 한 사람이 승자인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은 자가 승자인가. 비밀을 밝힌 자는 승자일 수 없지만, 약점을 잡히면서까지 우리는 우월해야 한다. 대화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세로토닌의 노예가 된다. 내가 공허한 만큼 상대도 공허하다. 관계의 가벼움을 탓하지만 결국,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들었고, 나는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당신과 마친가지로 나 또한,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까발려졌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화의 패턴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패턴은 욕구를 따라 움직이는데, 사람의 욕구의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구를 읽으면 패턴 속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상대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 따위로 나와 상대를 전락시키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의 패턴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으면, 한바탕 하고 끝나버린 수다의 시간이 공허함으로 가득 채워지지는 않는다. 공허함에 사로잡힐 만큼 나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기꺼이 우월해지지 않기로 자청했으니까. 그리고 상대에게 나의 지루한 패턴 속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패턴에 빠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수다의 의지가 사라진다. 패턴에 빠진 상대의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까 한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욕구는 스멀스멀 올라와 우리를 지배하고, 그때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패턴이 자리를 잡는다. 대게의 사람들은 패턴 속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 것처럼 그렇게 패턴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각자의 패턴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의 패턴을 인정해 준다. 내가 나의 패턴에 휘말리는 만큼 상대에게도 휘말릴 기회를 준다. 나의 욕구를 해소하는 만큼 상대의 욕구받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수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공허함이 우리의 관계를 의심할 정도로 내달리게 놔두지는 않는다. 패턴 뒤에 가려진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귀를 조금 기울인다. 결핍과 과잉, 무지와 혼란이 만들어 낸 수다의 난을 치르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준다. 거품이 빠지고 먼지가 가라앉은 것처럼 그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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