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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매너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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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Apr 26. 2023

대화의 패턴 3

쓰레기통을 찾아서.

열심히 먹고 열심히 싼다. 내 안에 들어온 음식물 찌꺼기는 똥과 오줌이 되어 밖으로 나간다. 입으로 들어오는 것 말고,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입으로 나간다. 그것은 냄새가 나지 않아서 역겨운 줄 모른다. 그것은 음식이 들어가는 곳과 같은 곳으로 나오기에 더러운 줄도 모른다. 또한, 눈에 띄지 않아서 은밀하게 새어 나올 때가 많다. 말이냐 방귀냐는 거기서 나온 말인가. 잠잘 때를 제외하고 우리는 시시 때때로 입으로 똥과 오줌을 싼다. 배변 활동이 좋은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는 여러모로 배변 활동을 잘하고 있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P- 오랜만에 해도 뜨고, 날씨가 너무 좋네요.

N- 그렇지만 아직도 바람이 쌀쌀해요. 환절기엔 더더욱 조심해야 해요.


여전히 쌀쌀하지만, 며칠 째 흐리던 하늘이 걷히고 해가 떴다. 인간이란, 지금 막 뜬 해를 찬양하는 것보다, 며칠 동안 우중충 했던 날씨에 짓눌렸던 힘든 마음을 더욱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걸까. 새로운 것보다, 고통이었더라도 익숙함을 추구하기 때문일까. 단지, 내가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일상 속에 네거티브는 공기처럼 떠다닌다.


사람들의 말속에는 네거티브가 만연하다. 네거티브는 공감을 얻어내고 유대감을 키운다. 포지티브는 친밀해지는데 걸림돌이 된다. 네거티브를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취향이 그만큼 깐깐하고 쉽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지티브는 단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네거티브를 하는 이유는 크리티컬 하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번에 수많은 종교를 믿는다. 포지티브를 쉽게 던지는 것은, 별것 아닌 것에 억지 의미를 붙이는 것처럼 보이거나, 아직 뭣도 모르는 애송이들이나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P-맛있게 잘 먹었네! 막국수는 여기가 참 잘해.

N-근데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 


포지티브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의 기쁨을 표현하지만, 네거티브를 말하는 사람은 순간이 주는 기쁨은 초라한 찰나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네거티브가 나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워낸다. 가슴속에 쌓인 찌꺼기 같은 감정도 비워내야 하고, 아무거나 보고, 아무거나 믿어서 생긴 생각 쓰레기도 치워야 한다. 햄버거에 콜라가 맛있듯, 우리는 안도 밖도 인스턴트 하다. 아무도 자신이 네거티브를 내뱉고 있는지 모르기에 쉴 새 없이 네거티브를 싼다.


입은 생각이 버린 찌꺼기를 뱉어내는 창구이다. 말은 내 마음에 쌓인 결핍과 과잉을 견뎌내는 소리이다. 화장실로 달려가는 대신 마려운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인다. '그 새끼', '저 새끼'가 주어를 대체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못마땅한 얘기를 한다. 긍정은 첫 대면의 인사화 함께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쥐도 새도 모르게 부정이 자리 잡는다. 다 싸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눈과 귀로 들어온 것이 소화가 되면 어디에다가 싸야 되는지 모르는 우리는 상대를 쓰레기통으로 만든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냄새가 나거나 역겨운 모양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아무렇게나 뱉어도 더러운 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가족 그리고 아무개들과 마주할 때면 그들에게 나의 쓰레기통이 되라고 한다. 그리고는 네거티브를 토해낸다. 아 시원하다. 


불만을 얘기해야 하고, 못마땅한 것은 표현해야만 한다. 맘에 안 들었던 것을 맘에 담아놓고 있으면 화병이 생기는 것 같고,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성에 차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열 가지가 좋았어도 한 가지가 싫었으면, 좋았던 아홉 가지가 닳고 닳아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그 한 가지를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친하다면 충고를 꼭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친하기 때문에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잘 먹어지지 않는다. 몸에 건강한 것이 오히려 맛이 없을 때가 많다.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점이 있음이 먼저 보이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너 때문에 슬프다고 한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기보다, 내가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풀이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조금 더 비관론자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감정과 정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버린다, 아무에게나. 내가 소화하지 못하고 감당해 내지 못하겠는 과잉과 결핍은 툭하면 단어에 부정을 씌워서 입으로 퉤퉤 튀어나온다. 배설할 곳이 필요한 우리는 서로를 찾는다. 지나치며 만난 이름 모를 타인에게도 우리는 쉽게 부정을 배설한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 또 다른 물질이 되어 밖으로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의 해독과정을 거친다. 위와 간을 거쳐 해독되지 못하 것은 장과 신장에서 또 한 번의 해독 과정을 거친다. 폐와 피부도 우리 몸에 침투하는 유해 물질을 지속적으로 걸러낸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찌꺼기를 고스란히 모아다가 정해진 곳으로 가서 배출한다. 길거리 아무 곳에나 앉아서 일을 보지는 않는다.


보고, 듣고, 느껴서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독해야 할까? 그 찌꺼기는 어디에다가 버려야 할까? 하루에 몇 번 버리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 어디에다가 버릴 줄을 모르고, 더구나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도 몰라서, 하루 종일 달고 다니며 아무 데나 버리는 이것. 그러다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이 풀리며 쫙쫙 나가는 이것. 나는 이것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네거티브로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단어와 표현보다 부정적인 것을 쓰는 것에 익숙하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자고 항상 다짐하지만, 언어에 티끌만 한 먼지가 자꾸 붙어서 감사의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가십은 끝도 없이 재미있지만, 칭찬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할 수 있다.


입으로 네거티브가 나올 때의 상태는 내가 아무것도 여과하지 않고 있을 때이다. 내가 여과하지 않는 이유는, 여과할 마음의 힘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간이 기능을 잃은 걸까? 넘쳐흐르는 것이 무엇이든 우선 버리고 봐야 할 정도로 포화상태 일 때 그렇다.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가정용 쓰레기, 공업용 쓰레기 등 그런 것을 가려낼 여력이 없을 때 그렇다.


우리는 웃으며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상대의 말에 공감해 주고, 상대가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다.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결국엔 소모되어 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네거티브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마주치며 흘린 대화든, 오랜 시간 마주하고 나눈 대화든, 대화는 네거티브의 릴레이 경주 같다. 누군가 바통을 건넨다. 그만 달리고 싶다. 지친다.


일상의 대화란 매일마다 쌓이는 정신의 찌꺼기를 버려내는 일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이러한 네거티브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더러는 짠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그동안의 아픔을 지금 이렇게 아무 데나 버릴 수밖에 없나 보구나...... 그럴 때면 기꺼이 쓰레기통이 되어 주기도 하는데, 포지티브는 그 역할을 즉흥적으로 잘 해내지 못한다. 쓰레기통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네거티브가 되고 만다. 이러한 만남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 정신을 고갈시켜서 장염에 걸리게 한다.


나는 어느 곳에 나의 감정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가? 내가 내뱉는 내용물 중 무엇이 쓰레기인가? 나는 분리수거를 잘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아침 상쾌한 쾌변을 하고 왔는가? 오늘도 나는 인스턴트로 식사를 때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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