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년 더 공부를 해서 수능시험을 치기로 했다
고등학교 에피소드 일곱, 언제 끝나냐 고3
가지 않을 것 같았던 길고 긴 초등학교, 중학교 학업기간이 지나서 입시의 종착역인 수능을 위한 마지막 학창시절인 고3이 되었다. 마치 내가 겪은 교육은 입시를 위해서 15년을 공부한 느낌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 대학교는 왜 가야하는지 꿈이란 무엇인지 들은 적이 없다. 꿈이라는 것은 가수들이 드림 콘서트 때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물론, 우리나라 환경이 전쟁 후 단기간에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게 되면서 그런 교육이 필요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괴로웠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부모님 세대는 ‘잘 살아보세’의 세대였고, 교육이란 것이 보편화 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힘들었다. 어른이 돼서 깨닫고 보니 이유도 모르고 공부했다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어른이 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다 깨닫고 공부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구조는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세계의 어린이들은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대신 물을 길러 가거나 철을 줍기 위해 가야하거나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계속적인 교육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라의 현실이었지만, 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K 너는 고3 때 어떻게 보냈어?”
“나는 음악과에 가려고 본격적으로 준비 했어.”
“네가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나도 그 점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해. 물론 나도 어릴 때 아프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 바람에 음악이 내 친구가 되었고, 꿈을 꾸게 되었으니까.”
“그래, 나도 지금은 괜찮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어, 진지모드 켜는 건가?”
“원래 내가 좀 생각이 깊은 사람이잖아.”
“몰랐는데.”
“뭐라고?”
K와 언제나처럼 서로를 안 봐주는 무진지 대화 마무리를 짓고 보니, 교실 안 고3 시절의 친구들과 내가 보인다. 정말 대학교 가야 된다고 해서 어른들이 알려 준 대로 하기 싫지만, 공부를 했다. 물론, 공부가 손에 안 잡힐 때는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의도적인 이야기 시간을 만들어서 대화를 했다.
고3 때는 같은 반 혜진이가 제일 친한 친구였다.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같이 이과를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문과나 예체능 쪽이 맞는데 이과를 가게 되었다. 물론 결국엔 문과와 관련된 학과를 나오게 되지만!
“야, 이제 100일 남았다.”
“진짜가? 맞네. 칠판에 D-day 적혀 있었제.”
“그래도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고.”
“100일 뒤에 끝나잖아.”
“내 말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지.”
“조금만 참아라. 끝난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우리의 침샘을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햄버거랑 콜라가 도착한 것이었다. 우리 반 친구 어머니께서 그 날 보내주신 것이다. 그 때는 야자시간을 응원해 주신다고 어머니들이 이런 걸 보내주시곤 했다.
“우아~~~~”
환호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저녁은 먹었지만, 이것은 간식이니 환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다들 즐겁게 햄버거 타임을 즐기며 잠시나마 기쁨의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친구들과의 대화와 간간히 느끼는 간식타임이 고3 시간을 지나가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능의 날이 다가왔다. 그 때까지도 나는 어떤 학과를 갈지 어떤 대학을 갈지 정하지 않았다. 미리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었다. 그저 높은 점수가 나오면 좋은 대학에 가야된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어서 그렇게 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끝났다...’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내 마음이 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 날의 내 기분을 기억한다. 참 허무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마킹을 한 줄 미루어 써서 점수가 확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생각보다 잘 나왔다는 애들도 있고 다양했다.
어쨌든 그렇게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고3의 마지막이 지나가고, 그렇게 2월이 되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에 대한 깊은 물음도 그리고 답도 알지 못했다. 그것을 떠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K의 연주가 운동장 한 편에서 울리고 있고 친구들은 그 주변으로 모인다.
K의 연주선곡에 웃음이 났다. 오늘 졸업식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하긴 어떻게 보면 밝아서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바로 미션 임파서블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땅땅따라 땅땅따라 땅땅따라 땅땅따라 땅땅따라~ 잘하기는 잘 하네.
“드디어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그러게 K.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네.”
“너네 탓만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어른들도 그 방법밖에는 몰랐던 것 같아.”
“맞아. 그런데 그 날 수능 시험일에 허무했던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쓸쓸하단 말야.”
“평상시에도 그래?”
“아니야. 생각 해 보니 그렇다는 말이지.”
K와 나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밤에 예쁜 불빛이 왠지 쓸쓸 해 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쁜 불빛이 가득한 도시의 길 위로 돌아왔다.
“K, 내일 오후 7시에 네일 작업실에서 손님들에게 네일도 해 드리고, 음악도 들려드리고 할 거야. 미리 예약하신 분들이 오는데, 서로의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져. K도 좀 이야기 해 주면 안 될까? 괜찮으면 기타 실력도 좀 발휘 해 주고.”
“내일이라? 내일 공연이 있기는 한데 5시정도에 하니까 마치고 바로 오면 참여할 수 있겠다.”
“좋아, 콜! 그리고 이번 수익금은 무료급식소에 보내거든. 좋은 일에 쓸 것이니까 기분 좋게 참여 해 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아저씨와 협상 잘 하고”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 행사에 오기로 예약한 손님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K의 연주와 함께 해 주기로 한 다른 분들의 공연도 진행 되었다. 동생 미아도 와서 도와주고 있다. 나는 네일 해 드리며, 다른 분들은 음악을 즐긴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들 네일아트도 다 끝나셨는데요. 오늘 수익금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무료급식소에 전달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행사는 아주 따뜻하게 잘 진행되고 마무리 되었다. 함께 해 주신 분들과 뒷풀이를 하고 모두 헤어졌다. 덕분에 훈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내일은 건물 주인 아저씨와 다시 가게세에 대해서 협상하는 시간이다. 잘 될 수 있기를!
달은 떨어지고, 해가 오늘의 시간을 알린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네일 작업실 문을 열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내 귀에 들리기로는 270mm정도의 구두를 신은 중년의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였다. 바로 알았겠지만, 주인 아저씨였다.
“아저씨 오셨어요?”
“어제 뭐 했나? 지나가다 보니까 사람들이 많던데.”
“아, 별 것 안했어요. 참, 생각 해 보셨어요?”
“뭘 말인가?”
“에이, 왜 이러세요. 가게세요.”
“아 그거?”
건물주인 아저씨가 뭐라고 할지 굉장히 두근거린다. 올려버린다고 하는 순간 나는 작업실도 일도 끝이고, 다른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대학 등록금을 낼 수가 있다.
“그냥 가게세 1년 동안 그대로 두기로 했네.”
“네, 뭐라구요?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주세요.”
“그냥 안 올리기로 했다고.”
“정말이세요?”
“속고만 살았나?”
“우아,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어제 지나가다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가까이 왔었어. 그리고 왜 여기서 네일작업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내년이면 대학졸업이니 그 때는 올릴 거야.”
“네네 물론이죠. 그 때는 괜찮아요. 야호.”
“나 이제 갈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정말 반전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 이렇게 인생은 때로는 선물과도 같은 일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다. 좀 가벼운 마음으로 K와 함께 대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냐면...”
“잘 안 됐구나?”
“그게... 완전 잘 됐어. 안 올리신데.”
“정말이야? 잘 됐다.”
“그러니까! 죽으라는 법은 없나봐.”
“그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학교 시절로 가 보자.”
“오케이.”
그 때 4. 대학교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소녀 두 명이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다. 어딘가 가려고 하는 것 같다. 한 명은 바로 중학교 친구 윤미이다. 우리가 가는 곳은 대학교가 아니다. 우리는 학원에 가기 위해서 만난 것이다. 무슨 학원이냐고? 바로 재수학원이다. 그렇다. 우리는 1년 더 공부를 해서 수능시험을 치기로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속에서 재미있게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기억은 지금도 좋은 추억이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배울 수 없다. 책에서 봤는데,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일만 하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굳이 책을 통해서 보지 않더라도 지금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대학교 에피소드 하나, 대학가기 전 1년의 공부
이른 아침 이번 한 해는 변함없이 윤미와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난다. 나는 학원에서 멀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이 한 번 터지면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너무 지친 날에는 그러지 못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격 좋은 윤미와 함께 즐겁게 보냈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놀면서 걷다보니 학원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재수 했었구나?"
"응, 1년 더 공부하기로 결심했지."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덜 심심 했겠네?"
"재밌는 친구야. 그래서 재수기간을 또 이겨낸 것 같아."
"역시 사람은 같이 하면 좋아."
재수학원에도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키가 크고, 머리카락도 살짝 곱슬머리신지라 선생님 마이콜 닮지 않았냐고 둘이서 그랬던 것 같다. 상담도 해주시고, 겉은 무뚝뚝한 듯 말을 뱉으셨지만, 속 정이 깊으셨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시간은 국어 시간이다. 서울대학교 출신의 선생님으로 공부 이외에 사회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주신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꼭 존댓말을 쓰셨다. 분필을 잡은 선생님의 손은 칠판을 향해 가다가 수강생들을 보신다.
"연예인 많이 부러워하죠?"
"..."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도 다 꾸미고 조명 받으면 그렇게 나옵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정말 그런 것인가? 아마도 연예인을 부러워하는 애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한다. 알겠지만, 미용실에 사진을 들고 연예인이 머리를 똑같이 해달라고 똑같지가 않다. 이런 느낌을 내고 싶은 것이지 똑같이 될 수 없다. 나조차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이 누군지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저 사람이 잘나보여서 한 번 저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이야기일 것 같기도 했다.
"K, 20살때는 뭐했어?"
"나는 음악학과에 들어갔어."
"잘했네."
"너도 힘든 결정했다!"
"그러니까. 1년 늦으면 난 나이도 1살 많은데. 그래도 하기로 했어."
어느덧 학원의 수업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학원 지하에는 매점이 있었다. TV도 있어서 간식을 간단하게 사 먹으면서 볼 수도 있었는데, 축구시합이 방송되던 날에는 다들 응원한다고 공부하는 것도 잠시 잊고 흥분하기도 했다.
"윤미야, 나중에 뭐 할 건데?"
"나는 카페 할 건데."
윤미는 노트정리를 정말 예쁘게 잘했다.
"너무 아기자기하게 적은 것 아니가?"
"내가 좀 잘 적잖아."
우리에게 겸손이란 없다. 칭찬 해 주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웃겨서 서로를 보면서 또 웃었다. 그렇게 윤미는 자신만의 컨셉을 가지고 카페를 하는 꿈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나는 재수 초반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중국이 앞으로 뜰 것이니 중문학과를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동양어문학부를 지원하게 된다. 내가 중국어를 전공할 당시는 중국의 경제발전도 한창이었으나 한류가 한창이었다.
1년간의 재수기간은 윤미가 있어서 시간이 금방 잘 지나갔다. 그리고 수능시험을 보게 되었고, 첫 번째 수능을 치고 채점을 했던 그 날보다는 점수가 높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게 나는 동양어문학부를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