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그리고 상하이.
아침 일찍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중국 상해를 거쳐 호주 브리즈번으로 가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13:30분.
동방항공 카운터에 들려서 간단히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 수속 후에 공항 라운지에 향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라운지는 한가했다. 라운지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 책임님, 어디로 출장 가세요?" 깜짝 놀라서 라운지 안쪽을 바라보니 글로벌마케팅팀의 류 00 책임이 앉아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회사 사람을 만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안녕하세요. 책임님. 출장하시나 봐요?"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 네, 미국 출장이 있어서요. 여기 앉으세요." 류 책임의 앞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저는 출장은 아니고, 특별 휴가예요. 몸이 좀 안 좋아져서 두 달간 휴직을 냈어요."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류 책임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스트레스 때문인지 심장약 먹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류 책임은 "에휴. 건강이 최고예요"라고 안타깝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둘은 최근 근황부터 회사 이야기까지 소소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나의 보딩 시각이 다가왔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류 책임에게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를 건넸다. "네. 책임님 여행 잘 다녀오시고, 건강한 몸으로 회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라며 내게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탑승구로 향했다.
16:20분발 동방항공의 상하이행 비행기.
이미 보딩을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서너 명의 보따리 장사들이 마지막 짐을 정리 있었고, 탑승구 쪽에는 30여 명이 줄을 서서 비행기표를 확인받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륙 후 창문 밖을 바라봤다. 구름 아래로 황해 바다가 보였다. 답답한 내 마음처럼 바닷물은 짙은 황색으로 가득했다. 그냥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사이 잠이 들었는지, 귓가에는 상하이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벌써 2시간이 지났다. 1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상하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무표정한 공항 요원들의 얼굴들을 마주 했다. 분위기만으로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환승 게이트를 빠져나오니, 그 앞으로 라운지가 하나 보였다. 라운지에 앉아서 브리즈번행 21:55분 동방 항공 비행기를 기다렸다. 상하이 환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왕이면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를 경유하고 싶었지만, 중국 경유 왕복 항공권 가격이 단돈 55만 원! 다른 항공사의 절반 수준이었기에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여행의 시작이라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21시가 되어서 나는 라운지를 나와 브리즈번행 항공기 게이트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 22시에 비행기는 상하이를 떠나 호주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호주와의 인연
이번 힐링 여행은 나의 5번째 호주 여행이다.
울룰루 (에어즈락) 정상에서 _ 2003년2003년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1년간 케언즈와 애들레이드에서 시간을 보냈고 다음 해 입사하기 전에 1달간의 시간을 내서 애들레이드부터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까지를 여행했다. 2006년에는 휴가차 1주일 동안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내와의 달콤한 신혼여행도 골드코스트와 케언즈를 다녀올 정도였다.
나에게 호주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었다. 젊은 시절, 접시를 닦고 푸드코트에서 서빙을 하면서 고생했던 추억이 있고, 호주의 자연 속으로 여행을 즐기면서 그 속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경험도 있다. 한국과는 달리 답답하고 복잡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나는 호주를 자주 찾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호주였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프레이저섬'. 브리즈번에서 북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모래섬이다. 몇 번을 계획했지만, 결국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나의 버킷 리스트 여행 장소였다. 이제 그곳을 찾아 나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비행기 소음에 빠져 나는 잠이 들었다.
다시 만난 호주
무역풍 지대를 통과하면서 생긴 난기류 때문인지 비행기 고도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잠결에도 느낄 수 있었다. 안전벨트 경고등도 갑자기 들어오고.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행기는 적도를 넘어서 이제는 호주 대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기내식 냄새가 내 코 끝을 유혹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오전 11시 동방항공의 비행기는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 비자부터 음식물까지 호주의 깐깐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호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출구를 나설 때 맑은 날씨를 기대했지만, 구름 낀 호주의 날씨가 나를 반겨주었다.
우선은 렌터카를 찾으러 가야 한다.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서 렌터카에 픽업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 15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하얀색 밴이 갈 것이라고 안내해줬다. 주차장 입구에서 차를 기다렸다. 정확히 15분 후에 픽업 밴이 왔고, 공항 외곽의 렌터카 회사로 이동했다. 하루에 4만 원짜리 소형차를 빌려서 이틀, 정확히 48시간 사용할 계획이었다. 렌터카 키를 받아서 첫 번째 목적지인 유먼디 마켓(Eumundi Market)으로 향했다.
유먼디 마켓은 브리즈번 북쪽 선샤인 코스트의 호주 전통 시장으로, 각종 수공예품과 음식 등이 가득한 재래시장이다. 현지 호주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시장이다. 나는 이곳에 들려서 간단히 점심도 해결하고 호주 전통 시장 구경도 할 겸 유먼디 시장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유먼디 시장에 도착했다. 1시간 거리였지만 중간중간에 공사 구간이 많아서 정체 구간이 상당히 많았다. 유먼디 시장 입구에서 주차를 하려는데, 갑자기 창 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돕지 않는구나'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점심을 먹고 돌아오겠다는 다짐 하나로, 간단히 주차를 하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헐.. 근데 이게 왠 일! 유먼디 시장은 오전에 장을 열리는 재래시장이기에 2~3시면 상점들이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비도 내리기 시작하고, 내가 도착한 2시라는 시각은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북적북적한 시장 분위기를 생각했던 나는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선 점심을 먹지 못했기에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아시아 푸드 가게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먹음직스럽게 그려진 동남아식 볶음밥을 주문했다. 하지만 음식도 기대와는 다르게, 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마지막 음식이라서 그럴까 재료가 뭔가 부족해 보였다. 늦게 도착한 내 잘못이었다. 살포시 실망을 하며 가게를 나서는데 빗방울이 상당히 굵어지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먼디 시장을 나와 숙소인 Anchor Motel Noosa로 향했다.
20분 정도를 더 달려, 누사(Noosa)에 위치한 작은 모텔에 도착했다. 모텔 안쪽에 주차를 하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께서 직접 나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체크인부터 근처 대형마트며 식당까지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려 했지만, 비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쉬는 것이 최고의 선택처럼 보였다. 내일은 비가 그쳐 주기만을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