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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꿈의 섬 '프레이저'

자연이 준 소소한 선물

by Wynn

꿈의 섬 '프레이저 아일랜드'를 향해!

프레이저 아일랜드 지도

새벽 5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 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여행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Fraser Island Adventure Tours'의 1일 투어(AU$190)를 예약한 상태였다. 메일을 확인해 보니 나의 숙소 앞으로 5시 45분 픽업을 해준다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Thursday, 05 April 2018, 1 Day Nature Tour from the Sunshine Coast, 5.45 am at Anchor Motel Noosa -223 Weyba Road Noosaville'

간단히 가방을 챙겨서 숙소 앞 큰길로 나가보았다.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는 어느덧 그쳐있었다. 픽업 차량은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늦은 5시 50분에 숙소 앞에 도착을 했다. 내 이름을 확인한 후에 투어를 위해 개조된 특별한 4륜 구동 차량에 오를 수 있었다. 오늘에서야 꿈에 그리던 '프레이저 아일랜드'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기대가 가득했다. 누사에서는 여기저기 숙소를 돌면서 투어 신청자들을 픽업했다. 노부부부터 젊은 연인들, 그리고 가족까지 여러 그룹이 차에 올랐다. 혼자 여행온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누사(Noosa)에서 투어 멤버들을 태우고 차량은 레인보우 비치(Rainbow Beach)로 1시간 30분을 달렸다. 레인보우 비치의 휴게소에 잠시 들러 마지막 가족 1팀을 태웠다. 오전 9시 드디어 프레이저 아일랜드로 투어 차량은 이동했다.


76마일 비치와 비밀의 호수

바닷가 근처 작은 모래 해변에서 투어 차량은 빠르게 이동선에 올라탔다. 마치 바지선에 오른 것처럼 페리는 우리 차량을 태우고 15분 정도 바닷길을 건너갔다. 어제의 폭우 때문인지, 프레이저 섬의 모래사장은 여기저기 떠내려온 나무들로 가득했다. 페리는 차량이 운행하기 좋은 곳을 찾아 우리를 내려놓았다. 바다를 건넌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차량은 모래사장을 달렸다. 그 유명한 76마일 비치였다. 비행기가 착륙이 가능할 만큼 단단하게 다져진 모래해변. 총길이가 123km나 되는 어마어마한 모래 도로를 달렸다. 오른편에는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었지만 모래해변은 10차로 고속도로처럼 넓었기에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투어 차량과 4륜 구동 차량들이 경주하듯 우리 앞 뒤로 달리고 있었다. 바닷물에 잠겨 있는 지역이 나오면 해안의 작은 돌들이 이어진 공간을 이용하여 도로로 활용하고, 오고 가는 차량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자연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생전 처음 하는 경험에 짜릿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1시간여를 달려서 프레이저섬 중심부에 위치한 숙소 지역인 유롱 (Eurong) 리조트를 지났다. 여기부터는 해변에서 다시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섬 안쪽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열대우림이 모래 언덕 위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 안쪽에는 빗물이 만들어낸 거대한 호수들이 있었고 우리의 젓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프레이저 섬은 모래와 나무만이 존재한다. 때문에 포장된 길은 전혀 없었다. 단단히 굳어진 좁고 좁은 모래 도로 뿐이었다. 4륜 구동의 특별히 개조된 차량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었다. 강력한 출력의 4륜 구동 차량들도 가끔씩 모래 구덩이에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길을 우리 차량은 시속 20~40km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좁은 언덕길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을 만나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고난도의 후진이 이어졌고, 아찔한 곡선 드라이브 장면을 이어가며, 섬 중앙의 호수로 이동했다. 11시 정도가 되어서 꿈에 그리던 호수에 도착했다.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이기에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몰린 맥켄지 호수 (Lake McKenzie) 대신 조용한 비라빈 호수(Lake Birrabeen)로 우리는 이동했다. 가이드는 맥킨지 호수보다도 더 아름다운 호수라며 우리 일행들만 특별한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레는 마음에 호수 입구로 향했다. 하얀 모래와 투명한 호수의 물. 그리고 살포시 낀 안개까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너무나 고요했다. 역시 우리 일행 말고는 호수에는 아무도 없었다. 흐린 하늘이 아쉽기는 했지만, 호수 자체만으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게 행복일까. 멍하니 호수만 바라보고만 있어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정말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사색에 빠져 있을 때 즈음. 갑자기 한 두 명씩 호수에 뛰어들기 시작하더니... 모든 사람들이 발을 담그거나 수영을 하며 호수 속으로 향했다.


민물장어의 꿈

우리만의 비나빈 호수 물놀이. 그 고요한 호수에서 1시간 정도를 보내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시간이 12시가 넘었기에 우리는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프레이저 섬의 중앙 우림 (Central Station/Rainforest)이었다. 맑은 호수에서 내려온 개울이 흐리고 열대 우림이 가득한 지역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폭우는 아니었지만 주룩주룩 열대 우림 속에 내리는 비는 불편함보다는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비를 맞으며 열대우림 걷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었다. 우리 일행은 열대우림을 산책하고 차량 기사는 식사 장소에서 바비큐 요리를 하며 관광객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열대우림을 걸으면서 우연히 개울 속의 민물장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실제 자연 속에서 민물장어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하류를 향해 내려가는 모습. 문뜩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프레이저 섬에서 만난 민물장어

-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히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마왕 신해철 님이 떠난 지 4년. 고등학생 시절 NEXT부터 그를 좋아했던 나에게 이 노래 가사는 가슴 깊숙이 다가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난 휴직. 열정 가득 했던 젊은이는 이제 마흔이 훌쩍 넘어 버린 중년 직장인이 되었고 지금은 몸도 마음도 살짝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쉼표? 아니 마침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제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한다. 민물장어처럼 나도 이번 여행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다시 고민해 봐야 할 듯 했다. 삶이란 나를 찾아나가는 시간.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내게 지금 이 시간이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었다.


난파선, 그리고 Eli Creek을 만나다.

점심 식사 후에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은 다시 동쪽 해안가로 이동했다. 프레이저 섬의 뷰 포인트인 난파선(Shipwreck)과 특별한 개울(Eli Creek) 체험을 위해서였다. 약 30~40분 울퉁불퉁한 모래 도로를 빠져나와서,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조금씩 맑은 하늘이 나타나고 있었다. 모래 해변에서는 몇몇이 낚시하는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잡히는 고기들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40~50cm 크기의 물고기도 나오고, 가끔 상어까지 해변에 출현한다고 한다. 왼편에는 호주의 들개인 ' 딩고' 몇 마리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들개들이 가끔씩 사람들도 공격한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거대한 난파선 잔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단순히 난파선 같아 보였지만, 이 동네의 핫스팟이라고 한다. 또 하나 장점은 여기 먼 바다에서는 고래가 있어서 가끔씩 난파선 넘어로 보인다고도 했다. 나도 열심히 고개늘 돌려 고래를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그날 내 눈에는 고래가 보이지 않았다.

난파선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꼭 물놀이 하고 싶었던 Eli Creek으로 향했다. 이 섬의 안쪽에서 내려온 물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 만들어진 개울. 개울을 흐르는 물이 너무나 맑고 깊이도 얕기 때문에 아이들 물놀이와 어른들 산책 코스로 최고였다. 맥켄지 호수와 함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프레이저 섬의 명소이기도 하다. 바다와 접해있지만 완벽한 민물이기에 먹어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한 마디로 순수! 그 자체였다. 보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 속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가보니 딩고 한 마리가 내려와서 물을 마실려고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Eli Creek
호주 야생 들개 '딩고'


딩고를 마지막으로 프레이저 섬 투어는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차량은 다시 해변을 달려서 페리를 탔고, 선샤인 코스트를 경우하여 누사에 오후 6시 경에 도착했다. 12시간이 넘는 빡빡한 하루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누사의 숙소로 들어와서 민물장어의 꿈 노래를 들으며 맥주 한 잔을 하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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