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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아듀, 뉴질랜드!

힐링 여행의 마지막 여정들

by Wynn
퀸스타운 공항

뉴질랜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텔에서 준비해 준 토스트와 과일 하나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다.

밖으로 나가니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뉴질랜드가 주는 마지막 선물인 듯했다. 나를 찾아 떠나온 힐링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할 하늘 길은 정말로 멀고도 멀었다. 각자 다른 국가를 거쳐서 무려 3번의 공항 환승을 해야했다. 후배는 약 30시간, 나는 2박 3일 동안의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의 귀국 일정은 퀸스타운에서 오클랜드, 다시 호주 골드코스트와 싱가포르를 거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고, 나 또한 퀸스타운에서 오클랜드로, 다시 오클랜드에서 호주의 브리즈번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중국 상해를 거쳐서 인천으로 돌아가야 했다.
긴 여정을 준비해야했기에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1주일간 우리의 발이 되었던 정든 렌터카를 반납하고 근처 쇼핑몰에서 가족들에게 줄 기념품을 구입한 후에 공항 입구로 들어섰다. 퀸스타운 공항은 작고 아늑한 아름다운 공항이었다. 공항 건물과 활주로 모두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위기 있는 공항이었다.

뉴질랜드 최고의 여행지인만큼 오전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공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앉을자리가 전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곧장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쳤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12시 즈음에 후배 먼저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고, 나는 그보다 30분 늦은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로 향했다. 이륙 후에 바라본 퀸스타운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꼭 다시 한번 이곳에 들릴 거야. 그때 만나자. 퀸스타운'

이렇게 인사를 건네며 퀸스타운과의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오클랜드로 향했다. 그리고 2시간 정도가 지나서 비행기는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본 퀸스타운


Oh My God! 비행기를 놓치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니 브리즈번행 항공이 탑승 시각까지 1시간 30분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근데 이게 웬일. 오클랜드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공항이 떨어져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면 금방인데, 그날따라 차들이 밀려 셔틀버스가 옴짝달싹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 기사에게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탈 수 있냐"고 물었다. 교통 체증 때문인지 내게 살짝 짜증을 내면서 충분히 탈 수 있다고 툭하니 답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셔틀버스는 20분 만에 도착해 버린 것이었다. 비행기 줄발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카운터로 달려갔지만, 체크인 대기 줄 길이가 상상을 초월했다. 죄송하다며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카운터까지 갔지만, 수속 담당자는 탑승이 불가능하다고 매정하게 답했다. 짐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있었지만, 짐을 붙어야 하기에 탑승 수속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바로 고객센터로 가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나는 급히 고객 센터로 향했다. 나와 같은 처지로 비행기를 놓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고, 그와 함께 고객센터로 달려갔다. 고객센터 담당자는 항공권을 보여달라며, 비행기를 놓친 사유를 꼼꼼히 물어봤다. 우선은 서두르지 말고 자리에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잠시 후 담당자는 "다음 비행기가 2시간 후에 있다고 했지만 만석으로 탑승이 불가능하고 내일 아침 6시 20분 비행기를 타라"고 답했다. 대신 공항 인근 숙소와 비즈니스석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오늘 미리 예약해 놓은 브리즈번 숙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지만, 그것까지 처리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역시 세상 일은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저런 일이 생길 수도. 바로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이번 휴직도 바로 그런 일 중에 하나라도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모든 일은 운명대로 흘러가고, 언젠가는 순리대로 잘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비행기를 놓치고 이래저래 서류 작성을 끝내고 저녁 7시가 넘어서 공항 인근의 숙소로 향했다. 호텔 카운터에 바우처와 항공권을 보여주니 내일 새벽 4시에 공항 가는 밴을 준비해준다고 했다. 3시 50분까지 나오라고 말과 함께. 뉴질랜드에서의 하룻밤 일정이 이렇게 추가되었다. 오클랜드 공항 인근의 호텔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갑작스럽게 늘어난 뉴질랜드의 또 하루를 보냈다.

오전 3시 50분에 나오니 로비 앞에 작은 밴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고, 3명의 승객들과 함께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5시 50분에 브리즈번 행 항공기에 올랐다. 비즈니스석이었지만, 단순히 우등고속 정도의 좌석이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편안하게 호주로 향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놓치고 다시 받은 비즈니스 좌석표

하이에서의 특별한 추억


호주에서는 약 2시간 정도 공항에서 환승 시간을 거쳤고, 상하이로 오는 동방항공 비행기에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브리즈번에서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아침 9시 비행기였기에 12시간 정도를 공항 라운지에서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다.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환승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무작정 따라갔다. 어느 순간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나와버린 것이었다.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공안이 나를 막아섰다. 항공권을 보여줬지만 오늘은 밤이 늦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중국 공항의 룰이 그런 듯했다. 하는 수 없이 공항 인근 숙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영어를 잘하는 준수한 외모의 중국인 하나가 내게 숙소를 구하냐고 물었다. 인근에 4성급 10만 원짜리 호텔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었다. 살짝 의심이 갔지만 밤도 늦었고 중국 상하이 푸동은 처음이었기에 그냥 그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로 와이탄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잠시 상하이 시내로 들어갔다. 살짝 사진을 찍고 다시 푸동 인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상하이 와이탄

상하이 인근의 도시로 들어갈지 알았지만, 그의 차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공항 인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닌, 작은 모텔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을 하고 키를 받아서 방에 들어가 보니 우리의 여인숙 수준의 허술한 숙소였던 것이었다. 욕실은 아직 공사 중이었고, 시멘트가 굳어가고 있었다. 세면장에는 세숫대야와 바가지가 있었다. 헐.. 이런 인테리어 공사중인 숙소라니. 아주 오래전 시골에 살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아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침대는 그럭저럭 하룻밤은 보낼만했다. 와이탄 구경도 했으니 머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피곤해서일까. 나는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오전 6시 30분. 밖이 분주해졌다. 푸동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에 타야 한다며 카운터로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가 보니 낡은 8인승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근데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10명이 중국 사람들이 짐을 들고 차량에 타고 있는 것이었다. 외국인인 나에게 시장에서 쓰는 플라스틱 좌석 하나 주며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항으로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짐을 꾸역꾸역 싣고, 그 차량에 올랐다.

'중국 현지 사람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냥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사고 없이 나는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국내선 청사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리고 나를 포함한 4명이 국제선 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특별하고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인생의 기억이 될 수도 있었다.

9시 푸동 공항에서 한국으로 오는 첫 비행기를 타고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12일간 힐링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인천에서 상하이와 브리즈번, 프레이저섬, 다시 골드코스트를 거쳐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마운틴 쿡, 마지막으로 퀸스타운과 오클랜드, 다시 상하이와 인천 공항. 대장정의 여행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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