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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3. 2022

고요한 산사 한라산 관음사를 거닐다

관음사, 해월굴, 대웅전, 설문대 할망 소원돌, 우영우 촬영지

제주에는 아침부터 구름이 자욱하더니 주룩주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침대 밖으로 나오기 정말 싫은 날씨였다. 빈둥빈둥 침대에 누워서 늦잠도 자고,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서 게으름을 피우기 싶은 그런 날씨였다. 하지만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난 아들 녀석이 나를 깨웠다. 하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거실로 내려와서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에 오전에는 집안 청소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오후에는 우산을 쓰고 다닐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기로 했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청소기를 돌리며 집 안 여기저기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친 후에는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로 향했다. 맛있는 간식과 반찬거리를 비롯하여 주방세제와 아이 장난감을 구매하고 탐라도서관 근처의  음식점에서 돈가스와 떡볶이, 오므라이스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한라산 관음사'다. 얼마 전 윗세오름을 다녀오다가 잠시 들렸던 곳이 관음사 주차장. 주차장에서 바라본 관음사의 입구가 너무나 예뻤기에 시간에 될 때 한 번 들리기로 계획했던 곳이었다.

비가 그친 관음사 주차장과 산책길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의 잔잔한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책하기에는 전혀 부담이 없을 정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을비 여기저기 곱게 물든 단풍잎이 수북하게 바닥에 떨어져 쌓여있었다. 촉촉한 가을비와 늦가을의 마지막 풍경을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듯 했다.  관음사 입구에는 사찰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적혀 있었다. 관음사는 한라산 650m 기슭에 위치한 조계종의 사찰로, 제주도에 있는 40여 개의 조계종 사찰을 관장하는 사찰이었다. 최초로 고려 문종 시기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숙종시대에 제주 사찰이 완전히 폐사 사라졌다가 1908년 10월에 비구니 해월당 봉려관 스님이 재건했다고 전해진다. 입구의 큰  문을 지나니 사천왕문까지는 아름다운 돌길이 이어졌다. 길고 곧게 뻗은 돌길과 양옆의 돌부처, 노란 국화꽃이 잘 정돈되어 있는 길이었다. 내가 다녀본 산 속 사찰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입구를 가진 전통 사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 모두가 이 길을 지나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음사 입구

조금 더 걸어가니 절로 올라가는 짧은 오르막길이 나왔다. 저 멀리 노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가을비를 맞아서 반쯤 은행 잎들이 떨어져 있었지만, 길가에 쌓인 노란 잎은 마치 가을 비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비오기 전에 이곳을 방문했더라면 더욱 멋진 은행나무를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은행나무는 1911년 심은 나무로, 그 당시 그루를 심었지만, 이제는 한 그루만 남아서 한라산 관음사의 가을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관음사 은행나무

은행나무를 향해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관음사를 창건한 스님의 동상과 작은 토굴 하나가 보였다. 해월굴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굴은 관음사를 창건한 해월당 봉려관 스님이  6년간 수련했다고 장소로, 관음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잠시 해월굴 속에 들어가 보니 1~2명이 수련하기 좋은 구조로, 토굴 안에는 수많은 초로 가득 차 있었다. 촛불의 열기는 굉장히 따뜻했다.

해월굴

해월굴을 지나서 사찰의 중심으로 향했다. 작은 절이라고 생각했는데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절의 중심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었다. 이 대웅전에는 내가 몰랐던 아픈 제주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관음사는 제주 4.3 사건 당시 무장대의 사령부 거점으로 활용이 되었다. 1949년 1월 4일 토벌대가 한라산 공습을 실시했고, 이곳 관음사를 접수한 토벌대는 1949년 2월 12일 대웅전을 비롯한 7채의 모든 전각을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토벌대의 고문으로 주지스님도 병을 얻어 돌아가신 아픈 4.3의 역사가 대웅전에 남아 있었다.

관음사 대웅전과 설문대 할망 소원돌

대응전 옆에는 설문대 할망 소원돌이라는 것이 있다. 설화 속에서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에게 소원을 비는 돌인데, 소원들 빌고 그 돌을 들지 못하거나 미끄러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혹시 관음사를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돌을  들어서 도전해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 아이는 소원을 빌고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가뿐히 그 돌을 들어서 소원 성취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외에도 관음사 안에는 소원을 적어서 탑을 넣는 소원탑을 비롯하여 맑은 한라산 샘물, 그리고 관세음보살상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들이 있었다. 모두 알기 쉬운 설명이 그 주위에 적혀있기에 아이들과 함께 사찰을 이해하며 둘러보기에 좋아 보였다. 절 뒤편에는 금색의 미륵대불상과 함께 수많은 불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치 진시황릉의 토병들처럼 미륵불 주위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불상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사진찍기 좋은 장소였다.

소원돌과 관세음보살상, 그리고 샘물
미륵대불상과 관음굴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기도굴인 관음굴이 절의 오른편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까 둘러본 해월굴보다는 규모가 큰 굴이었는데.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기도를 지내는 공간으로 보였다. 또한 관음사 이곳저곳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라고 안내글이 적혀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드라마에서 황지사 통행료 사건을 다룬 공간이 바로 관음사라는 것이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던 만큼 그 촬영 장소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전언이었다. 오늘도 SNS 채널을 촬영하는 모습을 관음사에서 볼 수 있었다. 관음사를 나서면서 들어올 때 보지 못해던 4.3 사건의 피해 사찰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드라마 촬영지 안내와 4.3 사건 표시

드라마와 4.3 사건. 70여 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참 아이러니한 사건들이다.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관음사를 바라봤다. 온갖 역경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주도의 대표 사찰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드라마 우영우처럼 많은 사랑만 가득하길 기도하며 관음사 정문을 나섰다. 비 오는 하루. 우리 가족은 관음사에서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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