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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온통 고사리

by 만년소녀
우리 부부가 올레길 걷다가 처음으로 발견한 고사리


제주에 와서 고사리와의 인연이 깊어졌다. 육지에 살 때 고사리는 비빔밥 재료 거나 명절이나 누군가의 생일에 구색 맞추기 용으로 내놓은 3색 나물 중 하나였다.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러나 제주에서 고사리육개장을 먹으며 고사리를 사랑하게 됐다. 제주 전통 음식인 고사리육개장은 얇고 길게 실처럼 찢은 고기와 고사리가 한데 엉켜있는 음식이다. 갈색의 끈적끈적해 보이는 그 음식은 보기엔 조금 예쁘진 않지만 한 입 떠 넣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고 짭짤한 맛에 반하게 된다. 고사리육개장으로 가장 유명한 식당은 제주시 서사로에 있는 우진해장국인데 식사시간에 그곳을 찾으면 1시간 이상은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인기 맛집이다.


4월은 제주에서는 고사리를 꺾는 계절이다. 제주도 맘카페에서도 당근마켓에서도 고사리 글이 많다. 한적한 길가에서는 도민들이 차를 세워두고 있으면 고사리를 꺾고 있다는 말이 있어서 가끔 차가 줄줄이 서 있으면 우리도 차를 세우고 비닐봉지를 꺼내 고사리를 찾아다니곤 했다. 다른 사람의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고사리 스폿이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고사리가 많이 나는 장소는 며느리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올레길 14-1 코스를 걷다가 처음 고사리를 발견해 조금씩 따기 시작했다. 올레길에서 고사리를 처음 발견하고 나선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조건 길가 고사리만 눈으로 찾아다닌 기억이 난다. 4월 한 달 동안은 고사리에 눈이 뒤집힌 상태가 됐다.

고사리는 새벽에 꺾으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의 경우, 9시쯤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한 이후 꺾으려고 했는데 그땐 이미 꺾기 미안한 어린 고사리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새벽잠이 없는 동네 할머니들이 이미 4~5시경에 다 꺾어버린다는 것이 맘카페 사람들의 말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의 유일한 벌이수단이 되기도 해서 4월 한 달간 당근마켓에는 직접 꺾은 생고사리나 팔팔 끓인 후 하루이틀 말린 고사리를 파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고사리축제장에서 하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열심히 꺾었다

고사리 스폿을 정말 모르는데 꼭 꺾어보고 싶다면 고사리축제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지난해 4월 13~14일 서귀포 남원읍에서 열린 ‘제주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에 놀러 갔다가 고사리 한 봉지 가량을 꺾어왔다. 1인당 1000원을 내면 고사리가 많이 나 있는 산중턱에서 마음껏 꺾을 수 있다. 1000원을 참가비로 내도 호루라기와 앞치마를 줘서 아깝지 않았다. 이날 다양한 방송국에서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데 우리도 제주 MBC와 인터뷰하고 방송을 찾아보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 나이로 7살이었던 하준이도 고사리 손으로 고사리를 잘 꺾었다. 경쟁심을 자극했더니 정말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냈다. 어린이도 즐거워하는 노동착취(?)였고, 직접 꺾은 고사리로 고사리나물을 해주니 평소 먹지던 않던 고사리를 조금 먹어주기도 했다. 고사리 먹지 않는 어린이에겐 함께 고사리 꺾어보기를 추천한다.


우리 가족이 꺾은 고사리. 이것이 3인 3000원을 내고 꺾은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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