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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도 알게 된 4.3의 아픔

by 만년소녀
제주4.3기념관.jpg 제주 봉개동에 있는 4.3 평화공원. 멀리 보이는 건물이 4.3 평화기념관.


"엄마. 우리 별빛반 담임 선생님의 할아버지도 4.3 때 돌아가셨대."

아이가 4.3을 앞두고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럼, 제주도 사람들은 그때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많이 돌아가셨대. 선생님도 할아버님을 그렇게 보내서 많이 슬펐겠다."


육지에선 다 큰 성인도 4.3에 대해 모르는 이가 많은데 제주도에선 이렇게 유치원 때부터 교육을 시켜주고 있었다. 바람직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고, 또 같이 아픔을 느껴야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봉개동에 있는 4.3 평화공원과 4.3 평화기념관도 자주 찾았다. 특히 4.3 평화기념관에서는 해설사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1시간여 동안 정말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4.3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또 당시 근현대사 전후 사정까지 다 풀어서 말씀해 주셨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꼭 무료 투어를 신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4.3 사건 시작은 1947년 3월 1일.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생겼는데 주변 어른들이 그 경찰이 사과도 없이 그냥 가려고 했다고 생각하고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고, 이를 경찰에 대항하는 사건이라고 본 경찰이 군중에 총을 쏘아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대규모로 정부에 대항했고, 정부는 이들은 막연히 '빨갱이'라고 여겨 7년이 넘는 기간 이들과 대치한다. 그 기간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념 따윈 알지도 못하고, 상관없던 사람들에게 ‘빨간색’ 표를 달아서 마구잡이로 총질을 했다. 죽인 사람의 33%는 여자와 노약자였다. 수많은 여자들이, 심지어 어린애까지도 성폭행을 당했고 당하자마자 총살로 죽기 일쑤였다고 한다.


4월이 시작되는 무렵 조천도서관에서도 4.3 관련 어린이 책을 소개하고, 또 저자가 와서 설명하는 북토크 식의 강연도 있었다. 7살 하준이도 가서 초등학생 누나, 형들과 함께 내용을 들었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제주도민의 비극을 마음으로는 체감하고 왔으리라 생각한다.


올레 19코스를 걷다 보면 북촌리에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다. 1948년 12월 16일 이곳 주민 24명이 느닷없이 군인들에게 끌려가 난시빌레에서 집단 총살을 당하는 가하면 다음 해인 1949년 1월 17일에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도 일어났다. 북촌리 학살사건으로, 주민 400명 이상이 한날한시에 희생됐다. 4.3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희생자로 인해 시신 수습도 어려워서 당시 어린아이와 무연고자 등은 임시 매장한 상태로 여전히 남아있는데, 그곳이 바로 너븐숭이 소공원이라고 한다.


제주가 고향인 한 기자 후배가 4.3에 대해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제주도민 한 집 걸러 한 집마다 다 가족 중에 그때 돌아가신 사람이 있다"고. 그만큼 제주도민이라면 대부분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다시는 누구도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이유 없이 학살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귀천1.jpg 제주 4.3 기념관 공원에 있는 작품 <귀천>
귀천2.jpg 위 작품 <귀천>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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