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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아이와 함께 걸은 추자도 올레길

by 만년소녀 Mar 12. 2025
아름다운 추자도 올레길 풍경


아이가 어려서 올레길을 같이 걷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올레길 완주를 위해선 추자도에 있는 2개 코스를 걸어야 하는데(최근 추자도를 오가는 배가 줄면서 추자도 코스는 건너뛰어도 완주한 것으로 인정해 주도록 바뀌었으나 우리는 그전에 걸었다) 무조건 숙박을 해야 하는 일정이어서다. 걷기 위해 숙박을 하려면 아이를 데리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추자도 코스 2개 코스는 10km 전후로, 19km에 달하는 코스도 많은 기존 올레 코스에 비해 짧았다. 원래 19km짜리 한 개 코스였으나 2개로 나뉘면서 10km가량 2개 코스로 돼서였다.


2024년 4월. 추자도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미리 당부의 얘기를 많이 했다. 특히 동기부여 쪽으로. 이번 올레길 2개 코스를 잘 걸으면 한라산 등산도 엄마 아빠와 같이 할 수 있다고. 한라산은 어른들도 오르기 힘든 산이니만큼 7살인 네가 갔다 오면 다들 대단하다고 할 거라고. 그런 얘기를 들으니 아이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절대 엄마 아빠는 안아주거나 업어주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날 추자도 올레코스를 걷는 사람들 중 아이는 하준 혼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길 가던 사람들이 사탕이나 과자를 하준이에게 많이 주는가 하면, 애가 지쳐 보이면 '파이팅!'도 많이들 외쳐주셨다. 코스 중간중간 하준이를 다시 만날 때면 반갑다고 해주시거나, 걷다가 본 사람들을 숙소에서 만나면 더욱 반가워해주시곤 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에 우리 부부의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아이도 세상을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겠지. 

첫날 걸었던 18-2코스 보다 18-1코스를 하준이가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물론 18-2코스도 7살짜리를 데리고 쉽지 않긴 했다. 산을 넘는 와중이라 화장실이 지도상 없는데 계속 응가 마렵다고 징징대서 우리는 난처해하기도 했다. 산속이라 인적이 드문 곳에서 쪼그려 앉혀 뉘어볼까도 생각했는데 7살 평생을 의자식 변기에만 앉아본 하준이는 쪼그려 앉아서 일보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서 결국 산을 뛰어내려 가며 화장실을 찾았다.      

산도, 바다도 다 예뻤던 추자도 올레길.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도 올레길 전체 코스 중 추자도 코스가 톱 3에 들만큼 아름다웠던 것 같다. 올레 트레일 홈페이지에서도 많은 완주자들이 추자도가 가장 예뻤다고 답하는 것을 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높은 곳에 올라서면 보이는 주변 섬 풍경과 경치도 기가 막혔고, 이밖에도 소박한 마을 분위기, 아기자기한 모자이크 벽화까지 어디 모자랄 것이 없었다.     


다만 멋진 풍경이 기존에 우리가 알던 제주도와는 사뭇 달랐다.  추자도는 과거 행정구역상 전라도에 속해있다가 1914년에서야 제주도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에 흔히 보이는 현무암 돌담길이나 에메랄드 빛 바다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리적으로도 제주도와 멀어서(배로 1시간~1시간 반 거리) 전라도 어느 섬에 놀러 온 느낌이랄까. 심지어 제주 편의점에서는 항상 보이는 핑크색 제주 막걸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독도막걸리나 서울막걸리만 볼 수 있었다.      


또 추자도 올레길은 천주교 성지순례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황경한의 묘가 있기도 해서다. 황경한은 정난주의 아들로, 2살 때 어머니와 헤어졌다. 어머니 정난주는 정약현의 딸이자 도산 정약용의 조카다. 또 정난주의 고모부가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다. 일찍 장원급제한 황사영과 결혼했으나 신유박해(천주교 박해사건)로 남편은 능지처참 당하고, 본인은 제주도에, 2살 아들은 추자도에 유배 보내졌다. 정난주는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걱정돼 추자도 예조리 갯바위 위에 올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아들이 죽어서 수장했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이후 황사영은 어부 오씨에 의해 길러졌고, 그 후손들은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서귀포 대정읍에 있는 어머니 정난주의 묘는 올레 11코스를 걸으며 볼 수 있었다. 모자가 평생 떨어져 산 데다 묘도 서로 다른 섬에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추자도에서는 숙박은 가장 많이들 가는 민박집에서 묵었다. 특이한 이름의 민박집인데 알고 보니 여자 사장님 이름이었다. 다른 집 보다도 유독 이 집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가서야 알았다. 모든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장님 부부 덕분이었다. 남편분은 화가이시고, 사장님은 음식 솜씨가 좋으시면서도, 음식도 듬뿍듬뿍 주실 만큼 손도 크셨는데, 머무르는 동안 우리 아이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 추자도에 갓 이사 와서는 추자초 병설유치원 방과 후 교사로도 일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음에는 올레길이 아니라 그냥 둘러보는 여행으로 가보고 싶은데 그때도 같은 민박집에서 묵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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